투고 25일 간 무응답에 익숙해졌다. 귀한 시간을 내어 정중한 거절 답변을 주신 출간 담당자분들의 메일은 드물었지만 고맙고 감사했다. 몇 개만 소개해본다.
전형적인 거절 메일이지만 나를 배려해 주는 메일은 보통 이렇다.
"ㅇㅇ출판사 출간 담당자입니다. 먼저 저희 출판사에 작가님의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내주신 자료를 꼼꼼히 확인하였고요. 관련 담당자들과 내부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책은 저희 출판사에서 진행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뵙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정말 내가 보낸 원고를 진지하게 읽어주신 느낌을 받게 해준 귀한 거절 메일을 주신 출판사도 계셨다.
"안녕하세요 정승우 님! 작은 출판사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 있는 고백과 도전이 인상적인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처지인지라 더욱 공감이 갑니다. 다만 제가 솔직히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책을 펴낼 용기를 내기까지는 조금 다른, 조금 더 어려운 문제가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쯤 해서 내가 어떻게 투고 메일을 써서 보냈는지 공개한다. 띄어쓰기 없이 쓰니 내용만 참고하시기 바란다. 메일 제목은 "중년남자를 위한 위로와 도전의 달리기 에세이 투고합니다. (정승우)"으로 쓰고 본문에 이렇게 적었다.
"OO출판사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 둘 곳 없던 40대. 5분도 뛰지 못했던 그가 13시간 동안 쉼 없이 100km를 달리기까지, 3년간 자신을 써 내려간 SNS 글로 타인과 연결되기까지,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극히 특별한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해 간 한 남자의 달리기 에세이 투고입니다. 출간기획서와 샘플원고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투고를 시작한 지 25일째 되던 날, 출근길 버스에서 처음 출간에 긍정적인 관심이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열심히 읽다가 '저자부담금'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출간을 할 때 저자가 부담금을 내는 거였나? 잘 모르니 일단 꼼꼼히 읽어보기로 했다.
2024년 4월 1일 (월) 오전. 받은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출판사입니다. 출판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종이책 출판, 전자책 출판이 될 것입니다. 출판 검토 가능 원고는 지금껏 어떤 경로로도 출판(전자출판 포함)되지 않고 타 업체와 출판계약을 맺지 않은 순수한 본인의 미발표 원고여야 합니다.
보내주신 원고에 관하여 반기획 출판 제안드립니다.
1. 저자부담금 : 00만 원 (기본 옵션 기준)
2. 종이책, 전자책 출간
3. 2쇄부터는 저자부담금 없음.
4. 인세 :?% (2쇄부터 인세 지급 가능)
5. 저자증정본 : 10부 (공저의 경우 각 5부씩)
6. 저자 구매 시 00% 할인
* 저자부담금이 저렴하게 책정되어 2쇄부터 인세 지급 가능하며, 저자부담금 상향 시 1쇄부터 인세지급 가능. 본문 컬러시 별도 비용 추가. 신속한 업무를 위해 이메일 상담만 받고 있습니다."
책을 내주겠다는 건지 아닌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기획 출판? 기획팀에서 20년 넘게 일했지만 반기획이 당최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획출간이면 기획출간이지 half 기획? 하프 마라톤도 아니고 출간도 하프가 있는 건지... 저자부담금이 적어서 1쇄는 인세가 없고 2쇄부터 인세 지급 가능? 부담금을 많이 내면 1쇄부터 인세를 지급 가능하다고? 어렵다. 초보 작가지망생에게 이 메일은 암호나 마찬가지였다.
리딩 작가님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는 접한 적 없었다. 반기획, 저자부담금, 인세는 2쇄부터, 컬러가 들어가면 별도 비용 추가라니. 그럼 이게 자기가 인쇄해서 책 내는 것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용 하단에는 업무기밀이라는 글귀를 빼곡히 써놓았다. 나도 기밀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반기획과 저자부담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출근 전 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2024년 4월 1일 (월) 새벽. "원고가 접수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 B출판사에 귀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 검토에는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리며, 채택된 원고에 한해 답장을 드리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편집부 드림."
한 달이나 걸리고 채택된 경우에만 답장을 주신다니 잊고 있어야 답을 받을 수, 아니 채택되는 경우에만 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완곡한 거절처럼 보였다. 그럼 지금까지 받은 건 반기획+저자부담금+기밀준수 출판사 한 곳뿐이다. 궁금한 건 메일로만 나눌 수 있는 1급 기밀. 김 빠진 마음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했다. 한참 일하는데 메일 수신 알림이 뜬다. C출판사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2024년 4월 1일 (월) 오전. "안녕하세요, 정승우 작가님. C출판사입니다. 저희에게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달리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님의 이야기는 많은 독자의 가슴을 울릴 것입니다! 특히 '2010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2022 춘천마라톤 우수 후기 부분'에 글이 선정된 작가님의 필력에 원고가 더욱 기대됩니다.
저희는 많은 신인 작가분들의 도서를 성공적으로 출간한 경험이 무수히 많습니다. 작가님이 오랜 기간 쌓아온 이야기가 저희 출판사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 디렉팅을 만나 보다 많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길 적극 응원합니다! 작가님께서 정성으로 쓰신 원고 <마흔여섯 직장인, 쫓겨난 김에 한번 달려보기로 했습니다>를 소중히 검토해 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원고를 반가운 마음으로 보고 1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검토 의견을 드립니다.
1. 원고 검토 의견
- 달리기를 통해 삶의 변화를 느낀 작가님의 이야기가 아주 생동감 넘치게 담긴 에세이입니다. 특히, 달리기와 번아웃 극복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원고에 녹인 것이 상당히 신선합니다.
- 다만, 기출간된 달리기 관련 에세이가 적지 않아 작가님의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콘셉트 강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달리기를 통한 번아웃 극복'이라는 콘셉트를 적극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 또한 '건강'에 관련된 책은 꾸준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달리기'를 다룬 책은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있습니다.
- 단순히 삶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자서전과 같은 에세이가 아니라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관해 작가님의 삶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원고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님만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 쓸 수 없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닌 이야기입니다.
2. 제목 및 부제에 대한 검토 의견
- 현 제목은 책의 내용과 핵심을 아주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 좋습니다. 특히, '마흔여섯 직장인', '쫓겨난 김에'라는 표현이 책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다만, 제목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길다는 느낌이 있어 핵심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현 제목을 토대로 핵심을 더욱 뚜렷하게 보일 수 있는 제목을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 제목과 부제는 유사 분야 베스트셀러를 참고하는 방법도 효과적입니다.
(제목 예시) 40대 직장인, 쫓겨난 김에 달린다. 나는 마흔여섯, 달리는 직장인입니다. 달리는 것이 따로 있나, 그게 내 삶인 것을
3. 콘셉트 구성 목차에 대한 검토 의견
- 현 목차는 내용, 분량에 적절하게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1~5장의 제목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조금 더 세세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더욱 탄탄한 목차가 될 수 있습니다.
- '장'으로 구분하는 것도 좋지만 책의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해 '바퀴'나 'lap', '트랙'과 같은 걸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 장, 꼭지 제목이 전체적으로 길어 핵심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핵심을 남기고 간략하게 수정해 준다면 더욱 탄탄하고 깔끔한 목차가 될 것입니다. 추가로 개인적인 감상이 아닌 독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목차 예시)
프롤로그 - 새벽 5시, 운동화를 고쳐 신는 이유
1바퀴 : 나는 '100km'를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1. 쌓인 핸드폰 사진 속 진짜 '나'
2. 익명의 삶을 버린 뒤 달라진 삶
3. 빨간 레깅스가 준 깨달음
4. 내용 및 문장 보완 강화에 대한 검토 의견
-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제시한다."라는 콘셉트를 좀 더 살리기 위해 각 꼭지의 시작에 내용과 어울리는 달리기 관련 명언, 속담이면 더욱 강력한 콘셉트 강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사진이나 그림으로 글의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전달력을 높여주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현재 글만 담겨 있는 원고에 어울리는 사진이나 그림을 덧붙여 주면 더욱 풍부한 원고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한 기록, 직접 쓴 감사 일기 등과 같은 사진을 담는 것입니다.
- 맞춤법 오류, 오탈자, 어색한 문장은 점검을 통해 꼼꼼하게 보완한다면 더욱 탄탄한 원고가 될 것입니다."
나는 C출판사의 정성스러운 답장에 감격했다. 25일간의 목마름이 일시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출판사. 드디어 내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제대로 된 출판사를 만난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비행기를 태워주듯 예비 작가의 가려운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정성스러운 글. 누가 이렇게 투고 작가의 출간기획서와 샘플원고를 정성 들여 읽어주고 분석과 조언까지 남겨줄지. 나는 이 메일을 보낸 C출판사에 빠져들었다. 벅찬 마음으로 그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응? 이게 뭔 내용이지?
"작가님들의 책의 브랜딩을 상승시키기 위한, 예약판매 진행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안을 제안드립니다.
1안 : 계약금 00만 원 / 예약판매 00부
예약판매 기간 동안 판매가 약속에 못 미치는 부수는 출간과 동시에 출판사에서 정가에서 0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시면 됩니다.
2안 : 계약금 00만 원 / 예약판매 00부
- 1안과 달리 2안의 진행은 1안의 내용을 모두 포함함과 동시에 좀 더 업그레이드되고 다각화됩니다.
- 좀 더 집중적인 디렉팅과 함께 예약판매 및 신간 소식이 SNS(블로그, 인스타그램)에 게재됩니다. 카드뉴스 혹은 상세페이지를 제작하여 업로드합니다. 예판성과가 좋으면 서평단 의뢰와 함께 지면광고 등 홍보마케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실시합니다.
3안 : 계약금 00만 원 / 예약판매 00부
- 3안에서는 더욱 집중적 디렉팅이 이루어지고 다각화된 홍보 방법이 진행됩니다."
계약금은 출판사에서 앞으로 들어올 인세를 미리 앞당겨서 계약금으로 저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을 말하는데, 예약판매 00부는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저자가 자기 책을 알아서 몇 권까지 팔지 약속하고 못 팔면 조금 할인된 금액으로 저자가 책임지고 구매하라는 말 같은데... 이건 또 뭔가 싶어 고민에 빠질 무렵, 의구심이 생겼을 예비 작가를 위해 친절하게 출판사에서 설명을 덧붙인다.
"이러한 원고 업그레이드 과정과 예약판매를 통한 윈윈의 장치는 '자비출판'과는 다릅니다. 예약판매는 1차적으로 작가님들과 책의 브랜딩과 시장 안착을 위한 것입니다. 저희는 제한된 시간에 일정한 인적 자원을 투입하고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여야 하는 입장이니 상호 윈윈의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저희 출판사는 자비출판을 추구하지도 지향하지도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예약판매는 1차로 시장에 작가님들과 책이 기초적인 포지셔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출간 이후에는 서평단, 기자, 인플루언서, 도서관 등에 책들을 직접 보내시며 2차로 서평단, 인플루언서들에게 SNS 등 비롯한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 3차로 기자, 도서관 등 기관/단체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계약에 대한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예약판매 도전과제에 못 미쳐 구매한 도서는
온라인 브랜딩을 위하여 저희가 서평단을 모집해서 명단을 드리면 저자님들께서 직접 싸인해서 보내드린다든가, 마찬가지로 저희가 명단을 보내드리는 언론사 기자분들에게 직접 싸인해서 보내실 수도 있겠습니다. 말씀드린 방안 중에서 가장 적합한 안으로 선택해 주시고, 혹시 추가 제안하실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더 궁금한 점 있으시면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구름 위로 띄워주신 것까진 좋은데 자동차 옵션처럼 1안, 2안, 3안으로 나눠진 제안과 제안별 저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부수가 마음에 걸린다. 조금 전 받았던 반기획, 저자부담금, 인세는 2쇄부터 A, B출판사와 지금의 저자 예약판매 1, 2, 3안 C출판사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지?
그래도 C출판사는 1쇄부터 인세를 지급해 준다고 했고, 컬러가 들어가면 별도 비용 내라는 이야기가 없고 전화 상담도 가능하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점이었다. 이게 일반적인 투고 출간인지 혼란스럽다. 그래도 귀한 시간 내어 내 투고 글을 분석해 주신 정성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4월의 첫날, 짧은 시간에도 정성스럽게 원고를 읽어주시고, 꼼꼼하게 피드백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분석과 검토해 주신 의견도 처음 출간을 준비하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금만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바로 여쭙겠습니다."
일단 리딩 작가님께 지금까지 받은 메일과 제안내용을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님도 반기획, 저자부담금, 저자가 책임지고 팔아야 하는 예약판매 방식에 대해 생소하다고 하셨다. 일단 더 응답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저녁 무렵 한 통의 메일을 더 받았다.
2024년 4월 1일 (월) 오후. "D출판사입니다. 마흔여섯.... 도서 출간 문의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척 아쉽지만 저희 쪽 여러 제반 사정의 한계상, 보내주신 원고는 오프라인 배본이나 마케팅 등에 주력하는 도서로 진행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다만 저희 쪽 인쇄소와 내부 시스템을 활용하여, 교보 등 온라인 서점에서 고객의 주문이 있을 때마다 종이책을 소량씩 제작·판매하거나, 밀리의 서재 등 플랫폼을 통해 전자책 중심의 유통을 진행하는 형태는 우선 시도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기본적이긴 하나 교정·교열과 본문 편집·디자인도 저희 쪽에서 진행하며, 판매 추이에 따라 향후 재고 보유나 유통 경로, 형태를 조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출판 과정에서 별도로 비용을 부담하시거나 책을 구매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판매 예측이 쉽지 않고 전체적인 출판 시장이 움츠러든 상황에서 큰 부담 없이 우선 출판을 진행해 보는 것이라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주문제작 방식으로 출간하거나 전자책으로 유통하는 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내 돈이 들어갈 일은 없다는 것 정도였지만 종이책 출간을 생각하던 나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이었다.
메일 하나가 또 도착했다. "E출판사입니다. 처음 쓰신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이 준비하시고 쓰신 글인 것 같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1인 출판사라 인세를 많이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뵙기 전 정리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솔직히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저희는 책을 만드는데 작가님에게 돈을 받지도 않지만 처음 책을 만들 때는 인세를 드리기보다는 몇 십 권의 책을 드리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진실되고 정직하게 책을 만들고, 책이 어느 정도 판매가 되면 그 이상부터는 인세를 조금 드립니다.
혹시 인세가 많이 필요하시다면 더 나은 출판사로 이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저희처럼 아예 드러내고 말하지 않고 저울질하는 곳이 있다면 그냥 저희랑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한 작가와 두세 권의 작업을 할 만큼 신뢰가 깊은 관계입니다. 첫출발은 작가와 대표로 만나지만 인생의 동역자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작가님께서 저희와 거래를 하고자 하신다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저는 책을 정말 제 책 그 이상으로 잘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가 낸 책들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또한 작가님께서 저희 출판사에 책을 내신다면 올해 안에 낼 수 있습니다."
가능한 조건을 제시하는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책은 잘 만들어주겠지만 계약이나 인세 같은 것도 없다는 말에 이건 또 무슨 방식인가 고민에 빠졌다. 내 책 몇 십 권을 저자증정으로 받으면 끝이라는 말도 생소했다. 그래도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책은 내주신다는 말은 긍정적이었다. 이렇게 힘든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책을 내야 할까. 이게 최선일까.
지금까지 나온 조건이라면 정리해 보니 반기획, 저자부담금, 저자 예약판매 책임제(1~3안), 인세는 2쇄부터, 컬러는 별도 청구, 인세는 없고 저자부담금 없음 정도이다. 거의 한 달간 애써서 투고하고 기다린 결과가 이 정도라니 허탈했다. 그중에서 저자 예약판매 책임제와 1~3안을 제안한 C출판사의 제안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자꾸 나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승우야. 넌 책을 쓰는 게 꿈이라며? 넌 네 꿈에 그까짓 돈도 못 써? 니 꿈의 가치가 그것밖에 안돼? 몇 백이 없어서 여기서 포기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남들도 다 그렇게 책을 내는 건지도 모르는데, 아직 인지도도 없는 예비 작가 주제에 뭘 가리고 재려고 하니? 그냥 책 만들어준다면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하고 계약해서 일단 내는 게 맞는 거 아냐? 네가 무슨 베스트셀러 작가나 연예인이야? 정신 차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나는 작아지는 것 같았다. 한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고 더 이상 출판사 피드백이 없으면 지금까지 나온 제안 중 가장 나은 차선책을 찾아서 결정하기로 했다. 저자가 돈을 들여서 책을 낸다는 개념도 생소했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당초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게 업계 현실이고 초보작가가 겪는 현실이라면, 이런 기회조차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감지덕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점점 나 자신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얼마나 있었을까. 무심히 휴대폰을 열었다. 메일 한 통이 와있었다. 2024년 4월 1일 (월) 늦은 밤. "안녕하세요. N출판사입니다. 원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출간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너 줄의 짧은 메일. 보통 온갖 미사여구와 각종 조건, 저자부담금, 예약판매를 장황하게 써서 보낸 여느 출판사의 피드백과는 완전히 달랐다. 진짜일까? 무조건 만나러 나갔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들다가도 출간에 관심이 있다는 적극적인 반응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단 내일 연락하신다고 했으니 내일 통화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어쨌든 관심이 있다는 말이니 좋은 징조 아닐까? N출판사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 내일. 바로 내일이다!
※ 이 글은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이며, 특정 개인·단체를 비방하거나 사실을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