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부터 투고할까요?

by 러너인

두 번째 샘플원고는 <남자가 레깅스라니>였다. 첫 번째 샘플원고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당신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가 달리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흉보는 기사도 많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레깅스 같은 옷을 내가 입을 줄 몰랐다가 달리기에 빠져들면서 조금씩 옷이 짧아지고 몸에 달라붙게 되는 이유가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는 효율이 중요하다. 오랜 시간 뛰다 보면 땀으로 피부 마찰이 심해져서 쓸리는 경우가 많았다. 왜 마라톤 하의(쇼츠)가 그렇게 짧고 착 달라붙어있는지 직접 뛰어보니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달리기를 한다고 하니 절대 넌 레깅스 같은 건 입고 뛰지 말라고 극구 말리던 선배의 말로 에피소드를 열었다. 그리곤 결국 남성 레깅스 크루 기수모집에 도전하고 우승상품으로 불같은 열정적인 빨강 레깅스를 받고 대회 때마다 그 레깅스를 입고 달리게 된 이야기를 썼다. 달리기라는 금기에 도전하고,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색상에 도전하고, 레깅스라는 금기에 도전하며 그간 내가 겁내거나 두려워서 해보지 않던 도전에 겁먹지 않고 달려가는 내용을 써서 단톡방에 올리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투고를 진행하기도 전에 벌써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은 동기님도 계셨다. "저는 사실 얼마 전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작가님이랑 주제 잡았던 거 다 뒤집히고 다시 주제를 잡고 기획해서 쓰고 있어요." 그분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몇 날 며칠을 컴퓨터 앉아서 안 쓰여서 시간만 보내다가 '쓰레기'를 뱉어내자, 쓰레기라도 뱉어내자라는 마음으로 하는 게 저는 도움이 되었어서 나누어 보아요."
모두가 쉽지 않았다. 출간 제안을 받았든 지금 막 시작하는 단계든 책을 쓴다는 건 글을 쓰는 것과 결이 다르고, 누구나 초고는 쓰레기처럼 느낀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가셨다.

나도 샘플원고를 쓰는 과정을 사람들과 단톡방에서 나눴다. "저도 오늘 시간이 나서 스마트폰 사진 이야기로 1 꼭지(a4 3장) 써봤어요. 처음에 쓴 내용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엄청 고쳤어요. 새벽에 눈떠서 노트에 30분간 어떤 스토리로 이어갈지 끄적이고 나서, 나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새벽에 적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면 다시 출력해서 소리 내서 읽으면서 이상한 곳 수정 표시하고, 다시 반복해서 수정하니 조금 나은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샘플원고 2개 썼어요. 머리가 아프네요."

3월 초 예정된 서울마라톤 풀코스 준비도 막바지였다. 매주 런클럽에서 모여서 30km 이상 장거리 모의고사 훈련으로 뜨거웠다. 마라톤 완주를 위한 훈련을 하며 시간을 쪼개서 샘플원고를 쓰고, 일하고 강의를 듣고 다시 쓰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다. 단톡방에 러닝기록과 응원을 올렸다. "아침에 30km 뛰고 왔어요. 3월에 동아마라톤 풀코스 나가서 주말마다 장거리 훈련하거든요. 할 때마다 달리기는 고통을 넘어야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마라톤 완주 순간에 찍힌 사진들이 좋아요. 사람이 짓는 표정이 참 아름답거든요. 우리 다 함께 힘내요."

무조건 작가 되기 프로젝트 시작 1달 반이 지났다. 2024년 2월 17일, 마지막 네 번째 강의소식이 떴다. "저희 이번 목요일, 내일모레는 중요한 강의가 있습니다. 출간기획서 작성법을 전달드리고, 투고 전 궁금한 사항들과 미리 체크해야 할 부분들을 점검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다들 꼭 참여해 주세요."

출간 기획서 강의가 시작되었다.
“원고가 아무리 좋아도 기획서가 별로면 출판사에서 관심조차 안 둡니다. 책을 내고 싶다는 사람이 한둘일까요? 편집자는 매주 수십 개 기획서를 받습니다. 그중 단 세 장짜리 기획서가 편집자의 마음을 단 3분 만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강사님 말대로였다. 그 짧은 문서 안에 책의 정체성, 시장성, 차별성이 다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제목·부제·콘셉트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잡느냐가 초반 승부라고 했다. 계약 현실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초판 발행 부수는 보통 1천 부. 종이책 인세는 8~10%, 전자책 인세는 종이책보다 20~30% 높다고 했다. 계약금은 대부분 100만 원 정도이고, 인세는 보통 1년에 두 번, 상반기·하반기 정산 형태로 들어오지만 출판사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했다.

편집자가 선호하는 기획서는 타깃 독자가 또렷하게 그려지는 책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모두를 위한 책”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페르소나를 설정하라고 했다. 가상의 독자 한 명을 만들어 이름·나이·직업·고민·관심사까지 적어보라고 했다. 책이 팔리려면 방금 정한 그 독자가 필요를 느끼고 손에 집어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서에 빠지지 말아야 할 항목도 짚어주셨다. 책 제목과 부제, 기획 의도와 핵심 타깃, 경쟁 도서 분석과 차별 포인트, 예상 마케팅 포인트와 카피 문구, 목차와 샘플 원고, 저자 소개까지. 저자 소개는 숫자를 활용하라고 했다. “강의 100회 진행”, “20년간 3,000명 상담”처럼 눈에 딱 들어오는 성취가 필요하다고 했다. 막연히 “10년 뒤 리더” 같은 미래형 문장은 힘이 없다고도 했다.

계약 이후의 과정도 현실적으로 알려주셨다. 초고 1·2·3교를 거쳐 최종 원고가 완성되고, 표지와 제목을 확정한 뒤 제작·출간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이때 저자 증정본 수량, 초판 부수, 마케팅 방식도 미리 협의된다고 했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가슴에 남았다.
“책 쓰기 초반에는 누구나 자신감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기획서와 원고를 끝까지 완성해 낸 사람만이 출판사 문을 두드릴 수 있어요. 책 한 권의 출간은 끝이 아니라 더 많은 기회의 시작입니다.”

드디어 출간기획서라니! 투고가 눈앞이라는 생각에 눈을 빛내며 강의를 들었다. 밤 12시, 줌 너머로 작가님의 응원이 도착했다. "늦은 밤까지 다들 고생하셨어요. 이 노력이 모여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거라고 믿어요. 출간기획서 빈 양식을 공유해 드립니다. 맨 아래 구성안(가안) 칸에 제가 기획서강의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책에 대한 구성을 어떻게 잡고 갈 것인지 간략하게 정리해 보세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엔 몰랐다. 책 한 권을 다 써야지만 투고를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투고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가 작가님 강의를 듣고 투고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기획된 출간 기획서와 샘플 원고 세 편 만으로 투고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투고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투고에 관해 궁금하신 점 여쭤보셔서 다시 정리해 드릴게요. 투고 역시 저랑 같이 진행합니다. 샘플원고와 기획서가 완성되는 분들부터 투고할 건데요. 각자 분야에 맞는 출판사 리스트를 제가 선별해서 '제가 여기 여기에 먼저 투고하세요.' 하면 같이 투고한 뒤 반응을 지켜보고 다시 투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해요."

이것저것 쓰다 보니 자기소개가 마음에 걸렸다. 무슨 엄청난 일을 해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써야 할지... 그렇다고 직장 경력을 나열하는 건 지금 에세이 작가 소개에 맞지 않으니 고민이 생겼다. 선생님이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덧붙였다.
"예스 24 같은 데 들어가셔서 다른 저자들(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저자들의 경우)이 어떻게 책 소개에서 자신을 어필하는지와 어떻게 저자소개문을 작성했는지 10개 정도 찾아서 읽고 분석해 보세요. 도움이 되실 거예요."

출간기획서 강의를 듣고 나서 1달간 샘플원고 세 편을 쓰고 출간기획서를 다듬었다. 작가님과의 피드백을 거쳐 드디어 출간기획서를 완성했다.
"(가제) 마흔여섯 직장인, 쫓겨난 김에 한번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부제) 가정과 회사를 위해 나를 버린 한 남자의 3년간의 번아웃 탈출기
(주제)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 둘 곳 없던 40대.
5분도 뛰지 못했던 그가 13시간 동안 쉼 없이 100km를 달리기까지, 3년간 자신을 써 내려간 SNS 글로 타인과 연결되기까지,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극히 특별한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해 간 한 남자의 달리기 에세이
(분야) 에세이 > 휴먼에세이 (남자에세이)
(이 책의 차별성)
1. 달리기를 처음 접한 후 습관으로 만들기까지 몸과 마음의 변화를 쓴 여성 작가의 책은 많지만, 직장 번아웃과 주말마다 집에서 나오는 한계상황에서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용기 있게 SNS로 삶을 확장해 가는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써낸 남성 작가의 책은 없다.
2. 강인함으로 포장된 남자들의 속마음을 섬세한 내향인의 시각에서 풀어내고, 달리기가 단순히 건강을 넘어 자신을 위로하고 타인과 연결해 주는 번아웃 탈출의 핵심기술임을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통해 제시한다.
3.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는 중년남성 및 여성 독자가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단순히 운동을 통한 육체의 건강을 넘어, 더 나은 자신이 되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변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시한다.
<핵심독자>
1. 30~40대 초반 남녀 직장인 가운데 운동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아가기 시작한 독자들
2. 40~50대 남녀 직장인
(배우자와 대화가 부족하고 사춘기 자녀와 소통이 되지 않고, 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서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 외모에 관심은 있으나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
3. 40~50대 전업주부
(남편과 대화가 거의 없고, 사춘기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갱년기로 몸도 마음도 무기력한 주부, 외모에는 신경 쓰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
<확산독자>
1. 이제 막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 러너들
2. 구조조정과 퇴사, 인간관계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무엇으로 위로받을지 막막해하는 30대 남녀
<기획의도>
1. 운동경험이 전혀 없는 40대가 직장과 가정에서 번아웃된 후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42km 풀코스를 완주하고 3년 만에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게 된 과정
2. 내향인이 달리기를 통해 배운 용기로 SNS를 시작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된 과정
3. 달리기와 ‘SNS 목표선언’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게 된 과정
4.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새벽 5시 반에 나가서 달릴 수 있게 된 과정
5. 달리기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낀 생생한 현장 이야기
6. SNS 글쓰기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삶의 네트워크를 넓히게 된 과정
<경쟁서 분석>
<저자소개>
<구성안> 중략..."


2024년 3월 8일. 출간기획서를 마쳤다. 중간에 자기 계발서에 욕심이 나서 완전히 방향을 틀었던 적도 있었지만, 작가님의 조언으로 원래 쓰려던 방향인 달리기 에세이로 마음을 정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이도저도 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가진 글의 따뜻함과 문체, 스토리의 장점을 살리려면 일단 이번 책은 에세이 형태로 가기로 하고 자기 계발서를 꼭 쓰고 싶다면 다음번에 새로운 책으로 쓰기로 하고 콘셉트를 명확하게 하기로 했다. 그 과정이 가장 큰 고비였다.

"그럼 저희 투고를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쳤어요. 완성된 기획서와 샘플원고를 첨부하시고, 메일 제목은 '투고합니다'라고 그냥 적지 마세요. 묻힐 수 있으니까요. <중년남자를 위한 위로와 도전의 달리기 에세이 투고합니다.>라고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워낙 기획서에 꼼꼼하게 정리하셔서 메일 본문 내용은 특별히 작성하실 건 없으세요."
"승우님 인생에서 참 여러 가지를 도전하며 살고 계시네요. 저도 오늘 하루 승우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루를 보낼게요. 떨리고 긴장되시죠?"
"네. 선생님. 떨리네요. 살짝 눈물도 나고요. 결과야 하늘이 하는 일이니.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선생님이 그 길을 함께 열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게요."
"저도 오늘 하루 승우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루를 보낼게요. 1차 투고에 연락이 오지 않아도, 2차, 3차... 저희는 계속해나가면 됩니다. 기획서를 조금 더 손을 보더라도 다시 도전해서 제가 되게 만들어드릴 것이니까 염려 마세요. 오늘은 승우님께 특별한 하루로 기억될 것 같아요. 암튼 파이팅입니다. 승우님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힘내세요!"
"네. 좋은 마음으로 잘 준비해서 투고할게요. 전 처음 달리기를 만나 달리던 어느 밤, 야경을 보며 달리다가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느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전 달리는 삶을 선물 받은 자체로 잘 태어났다고 믿어요."
"저도 눈물이 나네요. 저도 승우님 삶의 태도를 보며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저도 오늘 헬스장에서 또 달려볼게요."

2024년 3월 8일, 5군데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투고의 긴 여정의 시작. 서울 마라톤 대회 9일 전, 나의 첫 책 마라톤 42.195km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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