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낸 달리기 책 '50대, 달리기를 할 줄이야'에서 새로운 제목 하나를 떠올렸다.
"작가님! <40대, 달리기에 너무 늦은 인생은 없다.>는 어떨까요? 전 지금 50이지만 40대에 시작했으니까요."
"제목 좋은데요? 목차를 일단 크게 5장으로 분류를 해보았으니, 승우님이 보시고 추가로 1장 정도 더 넣으셔도 좋고, 각 장 밑에 꼭지들을 이동하시거나 추가하시거나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장 제목도 제가 임의로 정한 것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표현은 얼마든지 수정하셔도 좋아요. 확인 후 수정하신 뒤에 연락 주세요. 책 한 권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마음먹으시면, 힘듦과 저항감이 덜하실 거예요."
작가님이 잡아주신 목차 레이아웃을 참고하여 나만의 목차를 다듬었다. 일을 마치고 러닝클래스에 다니며 새벽에 잠을 줄여 3일째 되던 날 작가님께 다시 아래의 수정된 목차를 보냈다.
"<40대, 달리기 너무 늦은 인생은 없다 (방구석에서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프롤로그 : 새벽 5시, 오늘도 운동화를 고쳐 신고 나가는 이유
1장. 어쩌다 ‘100km’를 달리는 사람이 된 이유
- 방구석 직장인에게 독서가 아닌 진짜 취미가 생기다.
- 처음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 한 번만 풀코스 완주하기
- 저질체력 40대 직장인 2년 만에 울트라마라토너되다.
※ 셀프인터뷰: 함께할 수 있는 러닝크루나 모임 있나요?
2장. 달리기와 글쓰기라는 마음처방전
- 달리기와 글쓰기의 공통점
- 달리면서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쓰는 이유
※ 러너의 셀프인터뷰: 달리는 사람은 아름답다.
3장. 절실하고 절박해서 오늘도 달립니다.
- 지금 당신의 프로필은 누구 사진인가요?
※ 러너의 셀프인터뷰: 취미로 달리는데 달리기를 꼭 배워야 하나요?
4장. 달리기가 내게 준 체력 너머의 것들
- 선배님. 그래도 저는 레깅스를 입을 거예요.
- 인스타그램에서 맺은 소중한 in(人) 연
- 정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 러너의 셀프인터뷰 : 눈이 안 보여도 달린다고?(가이드러닝)
5장. 다시 시작하는 당신께 달리기와 SNS를 권합니다.
- 관계가 아픈 당신께 제 이야기를 전합니다.
- 중독을 끊고 싶은 당신께 전합니다.
- 누구나 가슴속에 메달 하나는 품고 삽니다.
- 달린다고 하루키가 될 순 없지만 인생은 다시 씁니다.
- 당신이 SNS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 다행이다. 달리기가 있어서"
새벽에 작가님께 톡을 받았다.
"승우님, 전달해 주신 목차를 자세히 읽어봤는데 정말 완성도 높게 잘 작성해 주셨어요. 목차는 이 정도 작성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목차를 100% 완성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될 거예요. 현재 단계에서는 너무 훌륭해요. 목차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샘플원고에 신경 쓰면 되겠어요. 샘플원고는 며칠 머리 좀 식히시면서 조금씩만 끄적여보세요. 강의를 들으신 뒤에 본격적으로 작성해 보셔도 좋으니 그전에는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조각글 정도만 써보셔도 충분합니다. 목차 짜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승우님이 우리 프로젝트팀 최우수, 최단기 졸업생이 되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에 작가님 톡을 읽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작가님. 승우예요. 어젠 회사일로 좀 힘들고 지쳤는데, 새벽에 눈 떠서 주신 글을 읽으며 감사한 맘으로 글을 쓰네요. 작가님께서 방향을 잡아주셔서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요. 매번 좌절하고 내가 글을 쓰는 게 맞나 하는 작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인스타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놓지 않고 용기 내서 쓰고 있었어요. 이 길을 이미 걷고 계신 작가님의 피드백과 응원에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는지 몰라요. 아닌 건 아니라고 콕 짚어 주시는 것도 감사하고요.
달리기를 배우는 것도 그렇거든요. 첨에는 코치님이 자세 지적하신 날 오히려 속상한 맘이 들었어요. 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동작이 안 좋다고 하지? 하는 작은 마음이었다가 아. 이런 피드백이 내가 지금 돈을 쓰면서 이 분께 배우려는 이유라고요. 동호인들은 절대로 서로의 자세를 지적하거나 언급하지 않거든요. 조금만 알려주고 고치면 정말 좋아질 것 같아도 괜히 이야기하다 오해가 생기면 싸움이나 나고 관계가 어긋나는 것 때문에요. 그때부터 코치님의 귀한 말씀, 지적, 피드백에 귀 기울이게 됐고 정말 감사하게 됐어요. 아기새가 엄마새의 입을 바라보듯.
작가님 블로그 글에 얼마나 감동받고 눈물 흘리는 순간이 많았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존경하는 맘으로.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할 따름이에요. 모든 도움과 모든 지적에 깊이 감사드려요. 첫 작가님 피드백을 받은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사진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사람이 될게요. 벅찬 하루를 선물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힘낼게요. 어떤 피드백에도 감사합니다."
며칠 뒤 프롤로그를 새롭게 쓰다 보니 고해성사하듯 자꾸 기분이 가라앉고 어두운 방향으로 글이 써졌다. 다시 작가님께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마음이 절절해지는 좋은 글이지만, 프롤로그에 담기에는 책의 전체를 담지 못해서 좀 아쉬워요. 자신의 아픔을 글로 꺼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독자가 느꼈을 때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우울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해요."
새벽에 쓴 글이라 더 감성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것 같았는데, 작가님은 그 부분을 짚어주며 이렇게 덧붙였다.
"승우님, 너무 힘든 부분은 글에서 오픈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다만 내향인이라는 주제를 잡으셨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셨으니 독자 입장에서 그럴만한 이유도 어느 정도 같이 언급을 해주셔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네. 작가님. 제가 그때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힘들지 않았다면 내가 밖으로 나가서 이렇게 달릴 수 있었을까? 한계를 넘어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소심한 관계를 넘어 진짜 세상과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곤 해요. 전 인간관계로 힘들 때 유튜브 명상 낭독을 들으며 큰 위로를 받았어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한 배신자 역할을 가장 잘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요. 곧 샘플원고도 써서 보내드릴게요."
유튜브에서 어린아이를 둔 직장인 아빠들에게 질문지를 주고 아이에 대한 설문을 하게 하고, 잠시 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설문으로 대상만 바꿔서 하는 영상을 보았다. 우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처음 새벽에 달리며 셀카를 찍었을 때 마음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누구의 아빠도, 누구의 남편도, 회사의 팀장도, 누구의 아들도 아니었다. 달리는 사람일 뿐. 그때를 떠올리며 새벽에 첫 번째 샘플 원고를 작가님께 보냈다.
피드백이 도착했다. "와! 승우님, 이 밤에 감동하며 글 읽어 내려갔습니다. 글 잘 쓰시는 건 알았지만 너무너무 좋네요.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한 단어, 삭제하면 좋을 부분들은 따로 표기했어요. 이렇게 몇 꼭지만 더 작성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다만 분량을 조금만 조절해서요. 수고 많으셨어요. 글 참 따뜻하고 예뻐요."
아침에 피드백을 보자마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글이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는 댓글을 인스타그램에서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내가 존경하는 작가님께 글로 제대로 칭찬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을 처음 알아준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감동받았다. 브런치에서 낙방한 상처를 치유하듯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작가님이란 단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나를 알아주신 분께 이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선생님. 전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기무당이 신내림을 받을 때 신엄마를 만나는 것처럼 달리기도 저를 가르쳐주신 러닝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들. 저에겐 글엄마가 작가님이세요. 감사합니다."
이제 무조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달려온 지 1개월이 지났다. 잠을 줄여 일하고 달리며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정성을 다해 해내고 있었다. 보내주신 피드백을 보며 고치고 또 고쳤다. 두 번째 샘플원고를 써서 선생님께 다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