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계약 후 27일이 지났다. 틈틈이 초고에 들어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 딴짓을 하다가 애증의 브런치를 떠올렸다. 마음 한 구석에서 '너는 아직 브런치 작가도 아니잖아?'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직 배가 고팠다. 출간계약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매번 걸려 넘어지던 문턱이 브런치였다. 누군가는 한 번에 합격했다는데 왜 난 브런치 문 앞에서 매번 돌아서야 했을까?
2021년 3월, 한참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을 때 글 세편을 써서 브런치에 처음 문을 두드렸다. 왠지 쉽게 합격될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며칠 뒤 브런치에서 답장이 왔다. 떨리는 맘으로 메일을 열었다. 불합격이었다. 마음이 상했지만, 내 눈에도 완성도가 미흡했다. 다시 준비해서 재도전하기로 했다. 두 번째 도전 역시 불합격이었다. 1년 후 2022년 8월, 세 번째로 도전했다. 글의 방향을 달리기에서 직장인 이야기로 바꿔서 써보았다. 하지만 애써 준비한 3차 도전도 불합격이었다. 더 이상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브런치 앱을 지웠다. 브런치란 단어를 맘에서 지우기로 했다.
2024년 1월 3일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책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 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한 달간 투고를 거쳐 4월 3일 출간 계약에 성공했다. 8월 15일까지 최종 원고를 넘겨야 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짧은 글과 책을 쓰기 위한 글은 완전히 달랐다. 사진과 함께 짧게 쓰는 글은 오히려 쉬웠다. 사진이 없고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 텍스트 만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니 생각이 많아졌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재미있고 생생한 소재도 책의 꼭지로 들어오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고 재미가 덜했다. 그때 썼던 그 이야기 맛이 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새로 써야 했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하루 종일 앉아 책에 들어갈 꼭지를 종일 써도 많아야 2편이 최대였다. 책을 쓰면서 책을 내신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지난 주말 글 두 편을 쓰고 잠시 쉬다가 문득 '브런치'가 생각났다. 당당하게 투고로 출간계약에 성공했지만, 브런치는 여전히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불합격 통보는 언제나 내 마음을 차갑게 했다. 진짜 책을 내는 것보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글을 쓸 기회를 얻는 게 더 어렵다는 게 말이 되나? 브런치를 보란 듯 건너뛰고 바로 책 쓰기로 넘어갔으니 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브런치가 고팠다.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이 남아있었다.
오기가 생겼다. 아니, 출간계약까지 한 마당에 그까짓 브런치, 또 도전해 보고 떨어지면 그만 아니냐고. 어차피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심사하는 분도 출판사 투고 심사하는 분들과 같은 시각일 테니,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투고했던 출간계약서를 다시 꺼냈다. 출간계약서에 쓴 자기소개를 줄여서 브런치 자기소개에 넣었다. 투고에 쓴 샘플원고 세 편으로 브런치 작가 심사를 받을 글을 대신했다. 예전에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작가 신청을 했던 것과는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 신청을 10분 만에 마쳤다.
이번에도 안되면 그냥 웃어넘기고 툭툭 털어버리기로 했다. 일요일 밤, 네 번째 브런치 작가 신청을 마쳤다. 다 잊어버리고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 브런치야. 이번에 나를 또 떨어뜨려도 좋다, 네가 기회를 주던 안 주던 난 올해 너 없이도 출간계약하고 책을 쓰기로 했으니. 이제 너의 인정은 절실함이 아닌 그저 호기심이다! 이놈, 알겠느냐?'
이틀이 지난 4월 30일 화요일 새벽에 눈을 떴다. 달리러 갈까 더 잘까 망설이면서 비몽사몽 '중용'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지나가는 강의 내용 중 한 구절에 마음이 움찔했다. "중용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내가 브런치를 맛봐야 할 때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일으켜 나가서 달렸다. 출근길에 중용 23장을 곱씹어보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출근 후 가만히 메일을 열었다. 1157일 만에 브런치 작가 승인이 떨어졌다. 4수 만에 처음 만나는 합격 메일이 와있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가입 후 7년 만에 작가 신청에 도전한 지 3년 만에 글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24년 4월 30일 드디어 브런치에 합격했다. 기쁘고 기쁜 날이다. 떨리고 벅찬 마음에 행복했다.
나는 1,000일이 넘게 도전했다.
"남들이 한 번 해서 잘하게 되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들이 열 번 해서 잘하게 되면 나는 천 번을 한다."는 기천정신(己千精新)’처럼.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팀원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팀장님, 저희 망했습니다."
"왜요? 갑자기?"
"종합감사가 떴습니다."
"악, 미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건데 왜 벌써?"
눈앞이 캄캄해졌다. 업무마비와 야근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한참 초고에 집중해야 할 때 생긴 종합감사라는 핵폭탄으로 책 쓰기가 한 달간 중단되었다. 8월 15일까지 내게 주어진 4개월 중 1개월이 사라졌다. 가까스로 감사 대응을 마치고 겨우 책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주말 스터디 카페에서 목차를 구상하는데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전세 세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