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계약을 했다.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퇴근 후 도서관으로 달려가도, 모니터만 바라보다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이걸 어쩐단 말인가. 조급해하니 더 글이 안 써졌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 줄도 못 쓰고 오는 날이 많았다. 러닝클래스에서 불쑥 묻는 "책 언제 나와요?" 하는 말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출간계약했다는 말을 하지 말걸 그랬나. 이래서야 책을 내겠나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머리가 멍해졌다. 초고 쓰기는 예상과 달랐다. 지난 4년 간 달리기라는 주제로 매일 에세이 한 편을 쓴다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글을 썼다. 오히려 글감이 차고 넘쳐서 책이 두꺼워질까 걱정했었다.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날 글과 딱 어울리는 사진이 있어서 생생하게 글이 살아 움직였다. 사진이 없으니 sns에서 느낀 생동감과 재미가 사라졌다. 글을 전부 다시 써야했다. 낭패였다. 수많은 달리기와 에피소드 중 어떤 경험을 책에 꼭지로 넣을 것인지 추려야 했다. 전체 피드 글을 복사해서 한글 파일 하나에 붙여 넣었다. 막상 다 모아놓으니 어느 글을 책에 들어갈 에피소드로 정할지 고민이 생겼다.
비슷한 훈련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로 묶고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이야기들은 제외했다. 처음에는 한 꼭지를 완벽하게 쓰려고 애쓰고 고치다가 시간을 허비했다. 전략을 바꿨다. 여러 권의 책을 옮겨 다니며 읽는 병렬독서법처럼 병렬글쓰기다. 일단 책에 들어갈 목차를 다시 써보니 40개 정도 꼭지가 나왔다. 일단 그 40개만큼 한글파일을 각각 만들어서 폴더에 넣었다. 파일목록만 봐도 책 쓰기가 완성된 느낌이었다.
틈나는 대로 집중해서 가장 먼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파일부터 열어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쓰다가 막히면 또 다른 파일을 열어서 초고를 썼다. 자꾸 맘에 안 드는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냥 써지는 대로 썼다. 초고는 쓰레기라고 주문을 외우며 쓰다 보니 조금씩 파일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초고를 쓰면서 달리기에 얽힌 이야기를 더 담기로 했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 관계에 대한 문제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일단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미운 감정이 들면 그런 이야기까지 모두 꺼내어 썼다.
온전히 출간원고를 쓰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되자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일정 분량이 써지고 계속 쓰다 보니 신들린 것처럼 원고가 써졌다. 투고할 때 없었던 에피소드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했다. 2024년 동아마라톤 풀코스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기록 경신을 노리다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참으며 끝까지 완주한 이야기도 "화장실이냐 달리기냐"라는 생생한 에피소드로 추가했다.
책이 몸의 변화에서 마음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크게 여섯 개 챕터로 나눴다. 1. 한 걸음의 힘. 2. 낯선 즐거움. 3. 울트라, 나를 만나다. 4. 체력 너머의 것들. 5. 러너의 마음. 6. 우연처럼, 필연처럼. 첫 번째 챕터(한 걸음의 힘)에서는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 첫 풀코스 도전, 대회에서 화장실을 참으며 완주한 일, 전국구 온라인 러닝크루 가입, 매일 달리기에 빠져있을 때 느꼈던 일 등을 썼다.
내가 읽은 해외번역 러닝 에세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본인의 우울증,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달리기를 만나 변화된 이야기였다. 보통은 하프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거나 완주 이야기로 책이 마무리되곤 했다. 그에 비해 우리가 흔히 만나는 러닝 책들은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달리면 좋은 점이나 노하우가 많았다. 화보집처럼 예쁘고 멋진 분들이 달리면서 갓생 사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달리기에 관한 책을 모두 빌려 읽다가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왜 '우울할 때면 한 걸음씩 내디뎠다' 같은 책이 없을까.
달리기 기술이 아닌 진짜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내가 달리기에 빠져서 느낀 그 기분, 그 열정. 매일 조금이라도 더 뛰고 싶은 그 열망을 담은 생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싶었다. 그런 책은 드물었다. 외국작가들이 쓴 책들은 그런 서사가 가득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라톤 대회 출발선에서 이야기가 끝나서 아쉽고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답답했다. 누군가 훈련 없이 고통을 견디며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는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과연 그런 처절하게 정신력으로 뛰는 것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지 갈증이 났다. 달리기에 뒤늦게 미친 러너로서 경험한 다양한 도전과 도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살아있는 생생한 달리기 이야기를 현장 그대로 책에 담고 싶었다. 땀이 흐르고 눈물과 웃음이 담겨있는 진짜 달리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40대 중년이 갱년기든 뭐든 완전한 고립과 무기력에 빠졌을 때 어떻게 그 늪에서 빠져나왔는지,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은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와서 뛰게 할 가슴속 불씨 하나를 던지고 싶었다.
풀코스 완주가 평생소원이었던 저질체력의 내가 점점 도전의 크기를 키우고 풀코스를 넘어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보통 이하의 체력인 나도 뒤늦게 해낼 수 있음을 직접 시도해 보고 얻는 결과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대회를 뛰면서 느낀 이야기와 속도에 대한 욕심, 기록 뒤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겨울에 뛰다가 귀동상이 걸릴 정도로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고 왜 그렇게 달려야 했는지, 그리고 달리기가 뭐가 그렇게 좋길래 그렇게까지 달렸는지 전하고 싶었다.
초고를 쓰면서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처음 혼자 공원에서 풀코스에 도전할 때, 아무런 응원도 없이 폭우 속에서 달리며 눈물과 빗물을 훔치며 뛰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쓰다가 몇 번이나 쓰던 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새벽잠이 많아서 무슨 수를 써도 일어나지 못했던 내가 새벽 5시에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서 달리게 된 그날 새벽의 이야기를 쓰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손이 아닌 가슴으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초고가 다 채워졌다.
내 글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불안했다. 출판사와 초고가 대충 끝났다고 연락하니 충분히 시간을 줄 테니 퇴고까지 완전히 끝낸 원고를 달라고 하셨다. 변수가 생겼다. 내게 주어진 무기는 출간계약서와 충분한 시간뿐이다. 어떤 작가는 편집자가 해주는 데로 잘 따라가면 책이 뚝딱 나온다지만, 그런 건 선택받은 금수저 작가에게만 주어지는 드문 기회였다.
초고는 아기 고슴도치처럼 작가 눈엔 다 이쁘다. 그 망상을 깨줄 누군가가 편집자인데, 그런 역할을 나 혼자서 해내야 했다. 방법이 없을까?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냉정한 편집자가 절실하다. 한 분 계시긴 하다. 바로 우리 엄마. 87세 되신 우리 엄마. 오래전 수필가로 등단하시고 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분. 출간작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틈틈이 글을 쓰시니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죽하면 가족끼리는 운전도 배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가족만큼 혹독한 편집자가 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대한민국 최고의 편집자라도, 작가 엄마만큼 작가의 글에 애정을 갖긴 힘들다. 가까운 거리만큼 피드백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원래는 책이 출간되면 처음 나온 책을 들고 엄마에게 선물하며 서프라이즈로 나타날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커밍아웃하기로 했다. 눈을 질끈 감고 톡을 보냈다.
"엄마. 제가 지난 4년간 달리면서 느낀 것들, 경험, 사람들에 대해 달리기 에세이를 기획해서 투고를 했어요. 다행히 출판사와 계약을 마치고 지금 초고를 거의 완성했어요. 누군가 제 글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떠올랐어요. 지금 메일로 보냈으니 시간 되실 때 한 번 검토 부탁드려요."
손끝에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엄마가 뭐 손댈 게 있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초보작가의 글부심인지. 흐뭇한 마음으로 '어떤 칭찬이 기다릴까...' 기분 좋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1시간 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 보셨어요? 원고 어떠셨어요?"
"얘. 너 아직 책 낼 때 안된 것 같다."
"..."
충격받아서 말문이 막혔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고 다시 여쭸다.
"왜요? 그렇게 이상해요?"
"네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 생동감은 넘친다. 감정이 과하다. 예술가는 옷을 벗되 벗을 줄 아는 사람이다. 옷을 어떻게 벗느냐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기준이다. 지금 네 초고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냥 드러낸 글이다. 네 나이가 지금 50이고 첫 책인데, 20대처럼 치기 어린 표현은 맞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을 노출해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고 그런 성향도 아니다. 여과 없이 솔직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 아니다."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엄마는 감각이 올드하세요. 달리기 에세이는 생동감이 생명이에요. 엄마가 안 뛰어봐서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전화 끊어라. 너 지금 내 말 이해 못 했다. 한참 후에 네가 네 글을 다시 차분히 살펴봐라. 내가 했던 말 뜻을 곰곰이 생각해 봐라."
전화를 끊었다.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출판사에선 괜찮다고 했는데. 얼마나 힘든 투고로 해낸 계약이고 첫걸음인데 첫마디가 고작 "얘, 너 책 낼 때 안된 것 같다."라니 자식을 격려해주진 못할 망정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내 초고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울컥했다. 울었다. 아팠다.." 같은 표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거였구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아니다. 나도 차분히 다시 읽어보니 네 글이 좋았다. 한 인간이 달리기를 만나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경이로웠다. 아무런 운동도 안 하던 한 중년 남자가 달리면서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면서 놀라웠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엄마 편집자와 퇴고를 시작했다. 6개월간 엄마랑 자주 싸우고 다시 화해했다. 어느 새벽 엄마에게 톡이 왔다. " 지금 내 나이가 87이다. 눈도 아프고 힘들어도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네 책을 퇴고하고 있다. 너도 끝까지 힘내라. 살아서 이 나이에도 도움줄 수 있어 기쁘다."
원래 8월 15일까지 초고를 드리기로 했지만, 출판사도 바쁜 일정이 있는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계속 퇴고하기로 했다. 출력해서 계속 보고 매주 주말마다 빵집에서 만나서 10시간 넘게 엄마와 어느 표현이 좋은지 티격태격했다. 퇴고의 시간이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2024년 9월 11일, Chat GPT 200% 활용법(글쓰기) 무료 특강, 수원컨벤션센터" 호기심이 커졌다. 챗 지피티? AI가 대세라고 계속 매스컴에 나올 때였다. 뭐에 쓰는 건지 궁금했다. 혹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책 퇴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홀린 듯 참가 신청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