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훈련은 정해진 스케줄이 아니다. 풀코스를 완주한 몸을 위한 리커버리 조깅. 다른 러너들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스피드 훈련을 하고 있지만, 나는 천천히 9km를 달리기로 했다.
첫 3km는 사람들과 함께. 가벼운 대화, 풀린 날씨, 산책 나온 강아지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자연스럽게 혼자가 된다.
모처럼 혼자 뛰니 기분이 새롭다. 코치님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야경도 감상하면서 편하게 뛰세요."
호숫가로 시선을 돌린다. 아파트 불빛이 호수 안에 길게 늘어진다. 마치 물속에 또 하나의 도시가 자리 잡은 듯.
어느 날 밤, 처음 이곳을 달릴 때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가 호수 속에 열려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본 루미나리에 빛 축제처럼, 호수 안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길을 내어주고, 나는 그 길을 따라 달린다.
언덕을 넘으며 그날의 나와 마주한다. 주로에서 울고, 또 웃었다. 이곳은 나의 마음속 고향이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달리기가 태어난 곳이 있다. 한때는 이 호수공원의 야경에 취해,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달리기를 만날 수 있어서,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어서.
4년 전 그때의 나에게 더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세 번째 바퀴는 호수와 가장 가까운 데크길. 물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 불빛이 발걸음을 따라 흔들리고,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뛴다.
첫 출장런. 여수 밤바다.
베네치아 호텔.
출장을 마치고 러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낡은 써코니를 신고 오동교 등대를 향해 달렸다. 양옆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 새벽까지 불 밝힌 등대. 사람 하나 없는 도로 위에 남은 건 내 발소리와 파도 소리뿐. 여수 밤바다와 함께한 나의 첫 원정런.
지금 이곳엔 파도 소리는 없지만, 발소리를 파도처럼 들으며 달린다. 세 바퀴째가 끝나간다. 이제 마지막 언덕을 넘으면 오늘의 달리기도 끝이다.
발길을 돌려 '고래의 눈'을 그리는 곳으로 향한다.
거대한 우주선 같은 분수대, 빛나는 조명, 물이 나오지 않는 검은 공간. 광활한 어둠 속에서 나 홀로 달린다. 이곳을 빙글빙글 돌았다. 고래의 눈을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화룡점정.
마지막 1km를 이곳에서 고래의 눈동자를 그리며 채운다.
옛 화백은 말했다.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간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가 직접 두 마리의 눈동자를 그리자, 용들은 하늘로 날아가고, 눈동자가 없는 용들은 그대로 남았다.
눈동자가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글.
죽은 생각.
죽은 삶.
눈을 뜨고 있다고 깨어 있는 것이 아니고, 숨을 쉰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존이 아닌, 진짜 삶을 살기 위해 달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두 발로 그린 고래의 눈.
이제 이 고래는 더 이상 호수에 머물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눈동자가 그려진 용이 하늘을 향해 치솟듯,
바다를 누비며 거대한 분수를 뿜어낼 고래를.
나는 달리며 두 발로 눈동자를 그린다.
P.S 3월 말 첫 책으로 찾아갈게요. 동마 파이팅! 화룡점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