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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Nov 22. 2024

4부 5화)제물

다미가 눈을 떴을 때에 자신은 나체였다.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9살의 어린 아이는 그 공포에 소리질렀다. 다미는 원형 제단 위에 있었고 거기에 대자로 뻗힌 채 팔다리가 묶여 있었다. 원형제단에는 큰 별모양이 그려져있었는데 그 별의 끝에는 1m 높이의 초가 붙어서 빛나고 있었다. 다미는 울면서 소리 지렀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녀들과 신부는 기도하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시는 루시퍼여. 저희의 제물을 받아 모시어 저희를 어여삐 여겨주소서.” 신부가 선창을 하면 수녀들이 대답하는 식이었다.

“루시퍼여, 그대는 아름다우니라.”

“세상의 처음과 끝이신 루시퍼여. 이 어린 아이의 피를 받아 모시어 저희에게도 힘을 주소서.”

“루시퍼여. 그대는 강하느니라.”

“모든 존재를 없애실 수 있는 루시퍼여. 이 아이의 울부짖음을 받아 모시어 우리를 기특히 여겨주소서.”

“루시퍼여. 그대를 기다리느니라.”

“성경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하느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루시퍼의 충실한 종이신 하느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하느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불이 켜졌다. 전등은 건물 천장 각 꼭짓점에서 중앙 제단을 향해 켜졌다. 주황빛의 은은한 전등은 먼지와 함께 다미를 비추었다. 다미도 그제서야 주변을 볼 생각을 했다. 신부와 수녀는 사제복과 수녀복이 아닌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거기에 수녀들은 검은천으로 눈 밑부터 목까지 가리고 있었다. 수녀가 모두 와있었다. 현석과 현석의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목을 들어 정면을 보자 뱀의 꼬리로 된 하반신, 그리고 성별을 알 수 없는 아기 모양의 상반신과 검은 날개로 된 흉측한 형상이 있고 그 앞에 무릎 꿇고 그 형상을 보는 세르히오가 보였다. 

‘항상 12월에 했었는데 왜 10월에 하는거야?’

그 때가 10월 둘째주 토요일이었다.     



모두가 방을 나가고 한 여자만 남았다.-그녀의 나이는 70이었다.- 의자를 가져와 다미의 옆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괜찮니, 아가?”

다미는 눈물을 계속 흘리고 벌어지려는 입을 억지로 모으면서 참아보려 했지만 변하는 얼굴 표정과 훌쩍 거리는 소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아가. 아빠 기억나니?”

다미는 대답을 못하고 계속 똑같이 우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기억나냐고!” 여자는 무섭게 소리 질렀다.

“안나요. 아빠같은거 없어요.”

 다미는 부모를 그리워한다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부모가 자신을 고아원에 버리지 않았다면, 버리더라도 멀쩡한 곳에 버렸다면 이런 꼴은 안당할텐데 생각했다. 그런 원망은 엄마가 되어주겠다던 정아에게까지 갔다.

“아빠가 없다니? 하느님이 계시잖니.”

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느님에게 기도해봐. 살려달라고. 여기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다미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제물에 바쳐지는 아이들과 달랐다.

“기도하라고!” 

노인은 다미의 귀를 꼬집었다. 꼬집음에 아픈 다미는 결국 다시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감으려고 한 적이 없던 눈은 저절로 감기었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감긴 눈에선 눈물이 봇물 터지듯 줄줄 나왔다. 엉엉소리는 고요한 그 곳에서 매우 크게 울렸고 밖에 있는 악마신도들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들렸다.

“기도해! 기도하라고! 매일 기도하는 법 배웠잖아!”

노인은 진심으로 신경질이 난 듯 소리질렀다. 익숙한 일이기에 사실 전혀 신경질 나지 않았지만서도 얼굴이 벌개져 질러대고 있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나쁜 짓 안하고 착하게 살게요. 여기서 꺼내주세요. 제발요. 하느님”


처음엔 시켜서 억지로 한 기도였는데 하다보니 정말 신이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겼다. 천장이 갈라지고 천사들이 내려와 이 악마들을 물리쳐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을까, 감미로운 목소리로 괜찮다 말해주고 천사의 날개로 자신의 몸을 덮어주지 않을까하는, 정말 일어날 것 같은 실제감이 들었다. 그 때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다미는 무언가 기대되었다.

들리는 소리는 닭의 꼬꼬 우는 소리였고 그 닭은 곧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 신도와 닭을 가져온 신도는 밖으로 나갔고 방에는 제단 위에 다미와 닭 뿐이었다. 다미는 머리질을 해대며 자신 옆에서 기웃기웃 움직이는 닭 때문에 소리 질렀다. 

“살려주세요! 제발요! 아저씨! 말 잘 들을게요! 도망안갈게요!”

다미는 자신이 싫어하는 소리지르기를 세상 크게 하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닭이 다리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고 입으로 배를 한번 쪼기도 하는데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리고 닭이 점점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오고 있었다.

“오지마! 오지마!”

다미는 닭이 정말로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떨궜다가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오지마세요. 닭님.” 

다미의 절규와 울음 때문인지 닭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엔 망토 두른 남자가 들어왔다. 거침없는 발소리를 내며 들어오더니 닭의 목을 졸라 들어올렸다. ‘살았다.’라고 다미가 느낄 때 그는 닭을 칼로 찔러 배를 갈랐다. 닭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닭의 몸에서 떨어지는 피는 다미의 얼굴을 빨갛게 적셨다. 다미는 비명을 질러댔다. 비명지르기를 20초 정도 하고나서 다미는 지쳐 숨을 헐떡이며 지친 상태 그대로 배만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자신의 배가 호흡에 의해 들렸다떨어졌다하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또 문여는 소리가 났고 노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검은 손수건으로 다미의 눈에 묻은 피만 닦아주었다. 정확히 눈주변만 닦고 그 손수건을 손에 쥔채 미소 지으며 다미를 쳐다보았다.



“괜찮니?”

“...”

“아가. 괜찮아?”

“너희 내가 다 죽여버릴거야.”

“뭐라고?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노인은 크게 웃었고 밖에 신도들도 모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크게 웃지 않고 미소만 짓던 세르히오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그만 좀 웃지라고 생각했다. ‘역시 아까워. 죽이기 너무 아까워.’

“너 누가 어른한테 그런 말 하래!”

노인은 다미의 뺨을 오른쪽 왼쪽 오차없이 공평하게 번갈아가며 계속 때렸다. 뺨을 맞을 때마다 다미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다짐을 했다. 노인은 그 표정을 보았고 몹시 마음에 안들었다.

“표정보시게, 이 아이. 꼬마아가씨.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죽일거야. 죽일거라고!” 다미는 상반신을 들 수 있는 만큼 들면서 소리 질렀다.

“우리 다미는 용감하구나.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군인? 경찰관?”

다미는 대답하지 않고 씩씩거리며 노인을 노려봤다.

“하지만 다미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 넌 오늘 죽을거거든.”

“안돼. 안돼. 살려주세요.” 

사람들은 죽음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 내면에는 자신만은 죽지 않는다는 헛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다미는 정말로 죽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이 공간이 주는 또 다른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노인은 그럴 때마다 살기가 강해지는 것 같았다.

“너희 부모도 널 버렸는데 왜 우리가 널 살려주니?”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껄껄껄 웃었고 또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양이 들어왔다. 다미는 또 소리 질렀다.


“옛날에는 하느님께 제사 지낼 때 양을 바치고는 했단다. 창세기 기억나지? 아벨이 양을 쳐서 하느님께 바치잖니. 오늘 너랑 양 중에 누구를 우리 루시퍼에게 바칠지 고민해봐야겠다. 너희도 상의해보렴.”

방에는 또 다미와 양만 남았다. 양은 음메 소리를 내며 방을 돌아다녔다. 다미는 눈을 질끈 감고 저 양이 제발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러다가 또 한 쪽 눈만 살짝 떠서 양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양이 보이지 않자 두 눈을 모두 떠서 거친 자신의 숨소리를 듣다가 다시 살짝 반대쪽으로 돌렸다. 돌려보니 양의 뒷모습이 보였다. 악마상을 보며 그 밑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꼭 다미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앞발과 뒷발을 차례대로 움직여 몸을 돌리더니 다미를 보았다. 다미는 소리지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또 소리를 질러댔고 양은 그런 다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다미의 마르지 않는 눈물샘은 다시 폭포수가 되어 터져나왔고 다미는 오지마를 계속 외쳐댔다. 그러고나서 다시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양 우는 소리가 귀 가까이 들려왔고 할짝이는 촉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부모없이 태어나서 이런 지옥을 맛봐야 하는건지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 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미는 이 발걸음 소리 다음에 뭐가 들릴지 짐작이 됐지만 차라리 그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미 예상대로 양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일단 이 양에서는 벗어나겠구나 생각하던 것도 잠시 온갖 이상한 촉감이 몸에서 느껴졌다. 닭 때와는 달랐다. 이번 촉감은 한번 몸에 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계속 붙어있었다. 단순히 피가 아니였다. 방을 가득 채우는 양의 비명 소리가 귀에 꽂힐 때마다 몸에 하나씩 터억터억하고 떨어졌다. 다미는 그 촉감에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듯 입술을 깨물고 발작하듯 몸을 비틀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양의 내장들이 다미에게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인 느낌이 주어지지 않고 자신의 몸을 깔고있는 더러운 것들이 적응되지 않은채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미는 훌쩍이다가 눈을 살짝 떠보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악마상만 보였다. 고개 밑으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봐봐야 좋을게 없음이 자명했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의 머리가 입을 벌린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다미는 목줄이 찢어져라 소리질렀다. 그리고 힘으로 팔다리를 묶는 밧줄을 풀 수 있을 것처럼 몸을 발버둥쳤다. 하지만 관념은 물리적 힘을 만들지 못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다미는 또 한참을 울었다. 


자신의 울음소리만 귀에 들릴 때 다미는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세상이 있고 그 안에 자신이 있어서 세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지구를 감싸는 물이고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 우주에서 들었다나왔다하는 호흡인 것처럼.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사실 의식이 없는 우주가 자아인 것이 아닐까하는 의식 속에 모든 기억을 잃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환경은 그 몽롱함을 깨웠다. 갑자기 있는지도 몰랐던 천장 모퉁이의 스피커에서 삐-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은 이런 소리를 낸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듣기 싫은 소리가 날까. 착각의 꿈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귀가 고장났는지 정신을 집중해보았다. 하지만 스피커의 음량은 더 커졌고 끊김없는 삐- 소리는 귀에서 달팽이관, 그리고 뇌를 찔러 자신의 몸에 바랑구멍을 내는 것 같았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제는 의식도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어 몸이 찢겨지는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내가 우주인 것이 아니다.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까 나를 고문했던 사람이 소리를 작동시켰다. 이제서야 사실을 받아들인 다미는 온몸을 들었다놨다 골반과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제단에 찧고 있었다. 두개골이 깨지고 뇌가 흘러내릴 것 같은 청각의 촉감 속에서 두 손으로 관자놀이라도 짚고 싶은 본능이 일었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밧줄의 힘이 더 강했다. 끝이 없는 비명. 마르지 않는 눈물샘. 



그렇게 15분을 고통스러워하다가 다미는 기절할 뻔했고 정확히 그 때에 스피커에서의 소리가 꺼졌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평화였다. 그러고나서 한 시간 동안 오로지 그녀만의 평화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 끝난 것인가하는 생각과 혹시 미카엘 천사의 군대가 내려와서 자신을 구해준게 아닐까, 아니면 자기를 찾던 부모님이 이제서야 나타난게 아닐까 생각했다. 불과 방금 전과는 너무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적막함. 하지만 공간은 변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멈춰버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고해서 시간이 멈춰있지는 않는 법이다.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조차도 시간은 흐르는 것이 자연계의 법칙이다. 다미는 타고 있는 초를 보면서 아직 이곳이 계속 지옥이다라는 것을 느꼈다. 여러 생각이 오가는 과정에서 다미는 생각이라는 것이 하고 싶은 생각을 제때에 하는게 아님을 느꼈다. 배가 부르고 싶다고해서 부른게 아니라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반대로 안먹으면 배가 부르듯이 생각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어느 찰나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였다. 

한가한 생각은 최소한 불행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다미는 옆에 있는 양머리가 익숙해지면서 잠이 들뻔했지만 잠이 들려고 하면 눈물이 나왔다. 아까와는 다른 눈물이였다. 고통 속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이였다. 애처로운 눈물이였고 가녀린 눈물이였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죽음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존재하지 않다면 편했을 텐데하는 해괴한 철학적 생각을 했다. 감정이 변하고 다미는 자신의 입술을 적시는 눈물의 맛을 느끼며 인간을 용서했다. 다 괜찮아, 다 용서해줄테니 제발 날 사라지게해줘 하는게 9살 소녀의 심정이었다.


그리고나서 여자 신도들이 들어왔다. 7명이 모두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다미 옆에 있던 양머리도 치우고 그녀의 몸과 제단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양의 내장들을 치우느라 왔다갔다 하는 신도들의 발걸음은 매우 능숙하게 빨랐다. 아무도 다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다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도했지만 기대를 충족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15분 정도의 청소가 끝나고 모두 나가고 또 70대의 신도만 남아 다미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다미가 먼저 쉰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만해주세요.”

“그만하면 넌 우리에게 뭘 해주겠니?”

“다요.”

“다? 우리가 원하는건 다 할거야?”

“네.”

“하느님을 배신할 수 있니?”

“네.” 다미는 대답할 힘이 없었고 실제로 성대도 제기능을 못할 상태가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래봐야 듣는 사람으로서는 그 최선을 알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 루시퍼를 숭배하도록 하렴.”

“네.”

갑자기 신도는 깔깔깔 웃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배를 강하게 꼬집었다. 어찌나 세게 꼬집었느지 어린 아이의 연한 배는 바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다미는 아픔에 소리 질렀지만 신도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루시퍼는 네까짓것의 숭배가 필요하지 않아. 넌 그냥 재물일 뿐이야.”

다미는 이제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을 기력이 없었다. 신도는 다시 정자세로 앉고 옷을 정리했다.



“다미야.”

“네.”

“사랑이 뭔줄 아니?”

“좋아하는 거요.”

“아니야. 사랑은 나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거야.”

다미는 이 정도로 길게 말하는 말을 들을 집중력이 없었다. 그냥 대충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들의 사랑을 믿지마.”

“네.”

“너 정아씨한테 엄마가 되어달라고 했다지?”

“네?” 다미의 집중력, 신경, 영혼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수치심이 밀려 올라왔다.

“오늘 널 제물로 바치자고 정한게 정아이모야. 다미야. 원래는 현석이였는데 정아이모가 너를 바치라고 했어. 원장님은 현석이를 제물로 바치고 널 스페인에 데려간다고 했었는데.”

다미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은 코와 입이 들썩이며 눈을 자극했고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올 것 같기만 하고 안나오려던 눈물은 결국 조금씩 흘러 나왔다. 조금씩만 나올 것 같던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왜 정아이모가 너한테 잘해줬는지 아니? 너랑 놀면 재밌어서야. 너보다 더 귀엽고 착한 아이가 왔으면 널 모른척 했을걸?”

다미는 신도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고개를 돌리기도 두려워서 그냥 조용히 터져 나오는 눈물만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아. 네가 아무리 가엾은 처지에 있다고 해도 말야.” 

이 말을 하고 신도는 일어나서 허리를 숙인채 다미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세게 꼬집었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네가 싫었고 말야.”



이 말과 함께 다미의 뺨을 때렸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뺨을 때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버리고 그러고나면 왼손으로 왼쪽 뺨을 때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버리고 동물적인 폭력을 행사하길 시작했다. 그렇게 다미는 울면서 얼굴에 100대가 넘는 뺨을 맞았다. 뺨을 한 대 맞을 때마다 온갖 험한 욕이 들려왔다. 겉멋이 속멋인줄 아는 중학생이나 할 법한 욕들이었다. 그렇게 15분 동안 욕과 뺨을 얻어맞고 다미는 이제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더 고통스러워 할 자아가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빨리 죽여.’ 이렇게 육체 밑으로 녹아 내려가는 정신만 목숨줄에 매달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순간 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다른 여자 신도가 무언가 가져오는 것을 보고 다미는 다시 놀라 소리 지르며 몸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려보았다. 하지만 고정된 왼쪽 손목과 발목이 메두사가 되어 다미를 붙잡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요! 제발요!”


다미는 발작 환자처럼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 위에 올려진 그것은 그녀에게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촉감을 제공했고 동시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었다. 3m 가량의 뱀이 다미의 몸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낼름 거리는 혀가 그녀의 얼굴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미는 아까와는 정반대로 몸이 굳은채로 꼭 감은 눈과 다문 입만 벌벌 떨고 있었다. 


신도들은 모두 들어와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양 어깨 위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채 기도를 드렸다.


“하와를 타락시켜 세상에 죄를 가져오신 루시퍼여. 부디 이 제물을 받으시고 힘을 내소서. 증오의 힘으로 창조주보다 더 위에 서시고 여자의 발 아래에서 일어나 그것을 집어삼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소서. 인간의 본능이 위선과 허무의 위에 바로 서는 그 날을, 혼돈이 다시 우주를 감싸는 그 날을 기다리나이다.”

남자 신도는 일어나 칼을 들더니 그대로 뱀의 대가리를 조르더니 그대로 뱀의 얼굴을 칼로 관통시켜 갈라 몸을 두동강내버렸다. 그 안에서의 피와 창자는 그대로 다미에게 떨어졌고 다미는 그 역겨움과 공포에 구토를 했다. 하루 세끼 동안 먹은 것이 모두 넘어 올라왔고 뱀의 것과 섞여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다미를 세르히오가 양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애처롭게 보고 있었다.


몸 안에 있는 것이 다 사라져도 정신은 살아있는 법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렇다. 다미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미는 이곳에 없는 서정아가 생각났다.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자기 아들과 끌어안고 곤히 자고 있을지, 아니면 자신을 미끼로 던져놓고 모두 여기 있는 틈에 자기들끼리 탈출했을지, 다미는 여러 상상이 머리 속에 스쳐갔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신도들은 그녀의 팔다리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 생지옥이 드디어 끝난건가 싶은 마음에 다미는 티끌만큼 힘이 났다. 설마 이런 지옥을 또 경험하지는 않겠지 생각할 때 한 여성신도가 다미의 몸을 잡아당겼고 다미는 너무 쉽게 끌려간 다음 몸이 뒤집혀졌다. 그리고 다시 제단의 가운대로 가게 되었고 다미는 뒤집힌채로 다시 손목과 팔목이 묶였다.

“아... 아.. 아아아아...”


다미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또 절망했다. 이번에는 무슨 고문을 할지 또 불안했다. 미칠 것 같은 불안함은 그녀의 시선이 뒤집혀 제단의 검은 색깔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몫 하고 있었다. 다미는 얼굴을 돌려 보려 했는데 세르히오가 그녀의 목을 잡고 눌러 움직일 수 없었다. 다미는 여전히 똑같이 “아아아”만 반복하며 발작증세만 보였다. 


‘이제 그만해. 아무것도 하지마. 나는 잘못한 것 없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야?’ 


탈출하려고 한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들은 원래 나쁜 사람이였다. 나쁜 사람에게서 탈출하는게 무엇이 잘못인가. 하지만 나쁜 사람을 상대로 자신이 잘못한게 없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생각과 함께 다미는 태어난게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이렇게 고문당해 죽을 운명인가 보구나, 하느님은 날 도와주지 않으시는구나, 아니, 하느님은 없구나 하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번 의식 중에서 가장 큰 비명 소리였다. 아이가 살아있거나 의식이 있는 경우엔 이 때에 항상 가장 큰 비명 소리가 났었다. 다미의 등에 지져진 문양은 원 안의 뱀의 형상이었다. 이 뱀을 바쳐 제단 옆 동상에 깃든 악마가 완전체가 되게 한다는 의미였다. 다미는 결국 의식을 잃었다. 신도들은 다미는 그대로 두고 촛불도 끄고 온갖 흉측한 물건들도 치우면서 뒷정리를 시작했다. 남자 신도는 –신부 역할을 하는- 다미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살아있어요.” 뒤돌아보며 세르히오에게 말했다.

“루시퍼께서 받지 않으셨어.”

“예?” 

모두가 세르히오를 쳐다봤다. 기분 좋은 느낌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죽지도 않았고 빙의 증상도 없잖아. 다들 죽거나 개처럼 짖고 날뛰는데 말이야.”

“그렇긴 하죠. 성인도 버티기 힘든 일이긴한데... 그래도...”

“루시퍼의 메시지야. 이 아이는 제물용이 아니야.”

“그러면?”

“스페인에 데려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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