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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Sep 05. 2019

'서점 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들

그동안 서점 운영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으려고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우울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서점을 오픈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서점 주인으로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좋고, '서점 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되는 순간들 역시 많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1. 책 모임_책으로 마음을 나누고, 책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


참여자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책 모임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대화가 오가고, 그 속에서 서로에게 뿜어내는 위로와 긍정의 기운이 참 좋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 사이에 '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도 참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위로라는 것도 잘 못한다. 어렵다. 그런 내가 책모임을 통해서 누군가를 위로한다. 그리고 나 또한 위로받는다. 책을 혼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함께 읽다 보니 느낀다.


그리고 책모임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런 대화를 할 기회가 생각보다 별로 없을 뿐이다.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따뜻한 경청만으로도 충분하다.



2. 작가 강연&북토크_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순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작가를 초청한 행사를 진행하지만, 그렇다고 작가를 만나는 일이 흔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서점을 하기 전에 작가를 만나본 경험이 없다) 특히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일수록 더 그렇다.


경기도 광주가 산골 시골마을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 지역에 비해 문화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 문화적 갈증을 우리 서점이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는 데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엄마 손을 잡고 와 처음으로 그림책 작가라는 사람을 만나 얘기도 듣고, 사인도 받아보는 아이들.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받고, 지적 갈증을 채우는 어른들. 자신을 좋아해 주는 독자를 만나 오히려 긍정의 기운을 얻어가는 작가들. 이런 좋은 행사를 진행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참 기분이 좋다.



3. 고마운 말들_반짝이는 찬사로 나를 감동시킨 순간


서점을 방문하신 분들이 남긴 찬사는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 동네에 있는 모든 곳을 통틀어 여기가 가장 좋은 공간 같아요"

"공간 자체가 그냥 힐링이네요"

"아이가 엄청 좋았나 봐요. 자꾸만 서점에 또 가고 싶다고 해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책만 골라놓으셨어요~"

"서점의 따뜻한 느낌이 사장님을 닮았어요" (이런 말은 매우 부끄럽긴 하다)

"렇게 그림책을 다 펼쳐서 볼 수 있는 곳이 없잖아요. 너무 좋아요~"


4. 맹모삼천지교_아이가 책과 친해지는 순간


그림책 서점을 시작할 때,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서점이라는 환경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서점을 열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그다지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는 엄마였다. (물론 지금도 엄청 많이 읽어주지는 않는다) 잠자리 독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생략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졌다. 우리 아이는 그 누구보다 영상물을 많이 보고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이가 서점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먼저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내가 책의 위치를 바꿔놓은 날은 "새로운 책이 많네"라며 귀여운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집에서는 '책방 놀이'를 한다. 자신의 책꽂이에서 책들을 이리저리 다르게 진열하며, 여기가 내 책방이란다.


내가 책방에 100% 샘플북을 두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 곳은 누구나 올 수 있는 서점이기도 하지만, 나와 아이만의 작은 도서관이기도 하니까. 아이가 글씨를 알게 되면 책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즐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5. 책과 함께 하는 삶_지적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


손님이 없어도,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산다는 건 꽤 멋지다. 책을 많이 읽는다기 보다는, 그냥 책이 주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나는 나만의 서점이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 했던 책을 마음껏 읽으니 좋다. 독서모임 때문에 강제독서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책을 멀리하며 굳어졌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 혹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마음 한편에 접어두었던 지적 욕구, 배움에 대한 갈망이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그 일이 싫어질 수도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좋다. 역시 책과 함께 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서점 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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