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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Oct 29. 2021

처음 갓난아기를 안으며 듣는 재즈

‘Waltz For Debby’, Bill Evans Trio

도입부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경쾌한 왈츠 리듬으로 많은 재즈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Waltz For Debby’는 빌 에반스가 조카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담요에 폭 쌓인 채 눈을 감은 채 조그마한 입을 뻥긋거리는 갓난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직접 곡을 작곡해 조카에 헌정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빌 에반스의 서정적인 피아노는 온순한 아기의 미소처럼 평화롭고 곡의 흐름에 따라 자유로이 부유하는 스콧 나파로의 베이스는 아기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곡의 배경을 알기 때문인지 이 곡을 들을 때면 갓 태어난 딸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작디작은 이 생명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내 모습도. 신비한 보물을 바라보듯 손녀를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도. 어설프게나마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마침 딱 마주친 아버지의 촉촉한 눈도.

Waltz For Debby

8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 학교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다. 몇몇 동네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곤 며칠 후 그들은 반짝이는 핑크 비스 무리한 은빛을 띠는 피부약을 얼굴 군데군데에 바르고 있다는 것만 빼고는 별 탈 없이 제자리로 복귀했다. 수두에 걸렸다 회복한 것이다. 비록 전염성은 강하다고 하나 며칠이면 금세 회복되는 병임이 밝혀진 만큼 우리 동네 수두 창궐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보는 아이도, 어른도 없었다.

그때 나도 수두에 걸렸다. 지금은 작은 아버지라 부르는, 당시의 삼촌과 함께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데 한창 패기 왕성한 그는 내 작디작은 등을 사정없이 세게 밀어 댔고 피부까지 벗길 태세로 때를 밀어줘야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으른(?)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8살짜리 꼬마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그 울음을 사나이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긴 그의 손길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집에 와서 아빠에게 삼촌의 만행에 대해 사태를 샅샅이 고하고 그 증거로 등을 내밀었는데, 시뻘건 등보다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 군데군데 잡힌 물집이었다. 부모님은 대번에 그것이 수두의 징조임을 파악하고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고, 가는 동안 엄마는 조카 등에 뭐가 있는지 살피지도 않고 우악스럽게 때를 밀어댄 삼촌의 행위를 비난했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고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엄마는 동네 의원에서 타 온 핑크 비스 무리한 은빛을 띠는 피부약을 물집 위에 발라주었지만 바르는 속도가 물집이 잡히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발병 후 며칠 지나면 동네 놀이판에 등장할 수 있던 친구들과 달리 내게 달라붙은 수두는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온몸을 수포와 딱지로 뒤덮였고 급기야 혀에까지 물집이 돋아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어린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릴없이 링거만 맞히던 동네 의원은 결국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백기를 들었고 급히 ‘백병원’으로 이송했다. 그 병원은 당시 정말 큰 병에 걸려야 가는 곳으로 알고 있었기에 어린 나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백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울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도 어쩐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큰 병원에서도 달리 방도는 없어 보였으며 따라서 차도가 있을 리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때로, 지금도 수두는 마땅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백병원이 아니라 천병원, 만병원(죄송합니다. 아재 개그 안 하려고 했는데 요건 참을 수 없네요.)이라도 온몸이 수포로 뒤덮인 채 열로 펄펄 끓는 꼬마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동네 의원보다 좀 더 부지런히 링거를 놓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입원 후 며칠이 지나자 결국 담당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퇴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열로 펄펄 끓는 아들을 안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 앉았다.


앙리 쥘 장 조프로이, <병원에 문병 가는 날>(1889)

힘없는 눈빛과 야윈 얼굴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고 있는, 조프로이(Henry Jules Jean Geoffroy)의 작품 속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의 지난 삶을 되짚으며 잘못을 헤아리고 신에게 잘못을 고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간청하고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아들에게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만 믿으라는 듬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리라. 혹여 그 속내가 드러내 보였을까 노심초사하며. 택시 안에서 말없이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우리 아버지처럼.


불행 중 다행으로 퇴원 후 병세가 차츰 누그러졌다. 다른 아이들보다 적어도 다섯 배, 많게는 열 배의 시간을 앓은 후였지만 어쨌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몸 곳곳에 그때의 흔적이 흉터로 남아 있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수포의 습격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이다.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30년도 훌쩍 지난 일을 이리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술이 오르면, ‘내가, 어, 뻐얼겋게 열이 오른 니를 안고, 어, 택시에서, 어!’하며 시작되는 아버지의 단골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30년 넘게, 똑같은 이야기를, 술자리마다!) 때문에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는 당신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내가 읊어 버려 더 이상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있다. 그 얘긴 너무 많이 들었다고요, 아버지.

그랬던 내가 이제 내 아이가 내가 앓아누웠던 딱 그 나이가 되니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빠를 찾아 사방을 뛰어다닌다거나 밥을 먹을 때면 제가 아끼던 김 한 장을 내 밥그릇에 올려주곤 생색낸다거나 퇴근하면 강아지처럼 마중을 나와 웃어주는 내 아이가 갑자기 병으로, 그것도 남들도 다 겪는다는 흔하디 흔한 병으로 내 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상상만으로 아찔한 공포를 겪은 아버지라면 앞으로 30년을 더 우려먹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와닿는다.


나이를 먹어도 병약한 체질은 고쳐지지 않는 건지. 이번엔 갑작스러운 한파에 몸살을 앓았다.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막 유치원에서 하원한 딸이 다가와 말을 건다. 대꾸할 힘도 없었던지라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데 물을 적신 수건을 접어와 내 이마에 얹어준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아빠 열은 없는데.”하며 힘없이 웃었더니 이건 서비스라며 다리를 주물러준다. 조그마한 손아귀에 제법 힘이 붙었다. 마사지를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우쭐해져 침대 위를 뛴다. 머리가 울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그대로 둔다. 엄마 손에 끌려 방에서 쫓겨나게 된 딸이 방문을 닫으며 ‘아빠, 빨리 나아.’ 한다. 살짝 손을 흔들어준 나는 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수두 예방 접종을 마쳤다는 데 안도하며 깊은 잠에 든다. 

방안에는 잠들기 전 틀어놓은 ‘Waltz For Debby’가 공기처럼 흐른다.


Waltz For debby(Riverside, 1961)


Piano_Bill Evans

Bass_Scott LaFaro

Drums_Paul 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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