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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Aug 09. 2023

여자 외과의사란

여자한테 수술받아도 될까요? 여자인데 외과의사 해도 될까요?

처음부터 서젼(surgeon)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본과 2학년 블록강의 때는 뇌과학이 흥미로워서 막연하게 신경과 또는 정신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과 3학년 외과 실습을 돌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외과에 관심이 생겼다. 외우는 것보다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나는 학생이지만 수술장에 참여하고 주 수술자(operator)가 무엇이 필요한지 센스를 발휘하여 돕고 수술이 마무리되면 치프 선생님과 함께 배 닫는 거 도우면서 소소한 수다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수술 끝나고 다 함께 한 잔 하러 나가는 것도 활동적인 내 성향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더 많은 여의사들이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소위 빡센 남초 수술과 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 우리 병원 외과 레지던트만 봐도 절반이 여성이다. 나와 같이 인턴 했던 동기 여자들 중에서 3명이 정형외과, 2명이 흉부외과를 선택했고 한 학년 아래 친한 여후배도 여자를 거의 안 뽑기로 악명 높았던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들어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과에서 여자는 소수였고 레지던트 1년 차 때도 환자들이 여자전공의를 간호사로 착각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환자들도 여자의사들이 많다는 인식이 생겼는지 그런 실수를 잘하지 않는다. 전공의 수련하면서 옛날 얘기들을 윗 선생님들께서 많이 들려주셨는데 예전에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남자 외과의사에게 수술받기를 원해서 여자 외과의사 중 특히 메이저 파트(간담췌, 위장관, 대장항문 등) 여의사들은 대학병원에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왜 여자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수술과를 지원하게 되는 것일까? 서젼으로서 여자가 유리한 점이나 수술받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까?



최근 2017년 British Medical Journal에서 흥미로운 논문이 보고되었다. 제목은 Comparison of postoperative outcomes among patients treated by male and female surgeons: a population based matched cohort study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이여성 외과의사와 남성 외과의사가 수행한 25가지 수술에 대해 비교하였으며주요 결과는 죽음재입원합병증이었결과적으로여성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남성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 비해 30 이내 사망률이 더 적게 발생하였고 재입원율이나 합병증은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한 그래프. 여자 서젼의 합병증 발생률이 낮은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 (Wallis C.J. et al. BMJ 2017)


위 논문에서 서술하기론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저자들도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한 가지 추측을 해보자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의사소통 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소통을 하면서 보다 환자의 증상을 더 빨리 인지하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의사소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수술 실력이다. 수술은 침착하고 안전하게,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센스 있게 잘해야 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외과의사들과 같이 환자의 수술 후 결과는 거의 90% 수술장 안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가 왜 나왔을까? 여자들이 수술을 더 잘하는 걸까? 손이 더 섬세한 걸까?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여성에게서 수술받는 것이 더 좋다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수술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고 수술을 잘하는 사람한테 가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내가 전공의 수련을 하기 전 시절에는 남자가 외과와 같은 major surgery를 하기에 여성보다 훨씬 유리했다. 예전에는 수술이 시작하면 장시간 서있어야 해서 큰 체력이 필요했고 수술 중에 힘을 쓸 일이 많아서 근력이나 악력이 중요했다. 요즘에는 최소침습수술(minimally invasive surgery)이 각광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큰 수술도 앉아서 복강경 또는 로봇으로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수술들은 개복수술보다 힘이 덜 들고 대신 좀 더 정교하고 섬세한 손기술이 요구된다. 최소침습수술은 수술 후 통증을 줄이거나 회복기간을 단축하여 환자에게도 좋다. 심지어 복강경 기구들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서 전공의 때 악력이 부족해서 누르기 힘들었던 장 문합 기구들도 요즘은 전동으로 나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발사가 된다. 이렇게 여자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불리했던 여러 조건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완화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는 성별 상관없이 성실하고 수술 센스가 뛰어난 사람에게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그래도 굳이 수술하면서 내가 여자라서 좋았다고 생각했던 적을 생각해 보자면 그건 내 얇고 긴 손을 좁은 곳에 넣었을 때이다. 얇은 손과 손가락은 작은 크기의 피부절개에도 쉽게 들어가고 다행히 여자치고는 내 손이 좀 길기 때문에 좁지만 먼 곳에도 쉽게 도달하여 남자 교수님들의 손이 안 들어가는 곳에 대신 넣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레지던트 졸업을 하고 처음으로 직접 나의 이름을 걸고 집도를 하고 외래를 열었을 때 걱정했던 점이 있었다. 과거 여선배님들의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예전에는 환자들이 대놓고 여성 외과의사들에게 진료받기를 꺼려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어린 여의사는 더욱 피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일부러 나이 많아 보이려고 도수 없는 안경도 맞춰보았다 (쓰는 걸 매번 까먹어서 의미 없었지만). 그런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환자들은 오히려 "수술은 선생님이 해주시는 거죠? 다른 사람 말고? 꼭 부탁드려요."라며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아직도 성별을 고려하고 의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여성 외과의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계속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요즘 유방, 치질, 탈장 등이 있는 여자 환자는 오히려 여자 외과의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분과들에 한해 여성 외과의사의 수요는 매우 높다.



그런데 그 많던 여자 레지던트들 중에 외과 교수로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수술이 힘든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내 생각에 외과에서 여자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회식(술)과 가정과의 타협일 것 같다. 사실 환자 진료와 연구만 한다면 가정과 적절한 시간을 밸런스 하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독 외과와 남초 수술과 들이 회식, 학회, 연구회, 세미나, 잡무 등 그 외 다른 사회생활 관련 술자리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수행하고 윗사람에게 “충성”을 보이려면 가정에 보내는 시간을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술을 못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외과에서 술을 못 마시거나 술자리를 피하는 경우 여러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많은 남자 스텝(대학병원 교수) 선생님들은 일 잘하고 능력이 좋은 여자 후배보다는 같이 술자리 데려가기 편하고 자신에게 맞춰주는 남자 후배를 원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 사태, MZ세대들의 출현 등으로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이런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곳이 많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훌륭한 스승님 아래서 배워서 성별 상관없이, 그런 술자리나 정치적인 것 상관없이 진료와 연구에 대한 나의 성과와 노력 위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주변 여자 GS/NS/TS 전문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처럼 운지 좋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녀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자 전임의들은 남자 전임의 이상으로 충성과 각오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마치 “너는 여자인데 남자보다 잘할 수 있겠어? 증명해 봐.”라고 시험을 받는 것처럼. 문득 생각해 보면 주변 메이저 수술과 여자 선후배, 동기들 중에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가 되기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내가 하는 일에 1/3만 하지만 월급은 3배 받는 의사들이 많지만 이런 성향으로 태어난 나 자신의 탓이다. 요즘 말로 “스불재” - 스스로 불러온 재앙 - 라고 생각하고 털어버린다. 비록 돈과 시간은 좀 포기해야 하지만 지금 이 일에서 얻는 직업 만족도와 성취감은 높다.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외과를 하라고 적극 권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다고 열정으로 가득한 눈빛을 내며 얘기를 한다면 힘든 길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응원해 줄 것이다. 요즘 점점 메이저 수술을 하는 의사들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아주 씨가 말라가고 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주면 정말 참 좋겠지만 그래도 여성 외과의사로서의 삶은 퍽 재미있다.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낼 때마다 오는 그 희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국제학회에 발표하며 교류하는 그 느낌, 많은 환자들에게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 늦은 시간까지 수술 후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것, 기특한 후배들 힘든 외과 와서 열심히 하고 성장하는 모습 지켜보는 것… 하루하루가 정말 의미 있는 날이다. 이제는 여자라고 해서 이런 삶에 도전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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