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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Aug 24. 2023

열정과 광기 사이

최고가 되려면 약간은 미쳐있어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사실 이 말에 동의한다. 근데 여기서 말하는 "즐기는 자"는 적당히 여유 있고 스트레스 안 받을 정도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일에 어딘가 제대로 미쳐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 최고가 되려면 그 일에 어느 정도 미쳐있어야 한다.


미쳐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남들보다 노력을 몇 배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능이 있으면 시너지효과가 나서 더 빠른 시간 안에 잘하게 되고 즐겁고 미쳐있는 기간도 오래 지속된다. 세계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압도적인 재능 때문에 그의 노력이 가려져있는데 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미쳐있던 사람이다. 거기에 재능까지 더해졌으니 재능+노력+즐거움 모든 것이 합쳐져 그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리노넬 메시. 출처: Getty Images


미국 축구 리그 MLS(Major League Soccer) 꼴찌 팀을 데리고 Leagues Cup을 기어코 우승한 메시의 플레이를 한 번 봐라. 즐기는 천재의 실력에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외과의사는 열이면 열 모두 수술을 잘하고 싶어 한다. 수술실력으로 최고를 찍고 싶은 욕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마치 공부 잘하는 방법처럼 이미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수천번 연습하고 anatomy(해부학, 몸의 구조) 공부도 하고 많은 수술을 보고 많이 해 보는 것. 근데 그걸 알면서도 못.. 아니, 안 하게 되는 이유는 조금 덜 미쳤기 때문일까?


수술도 재능이 있으면 더 빨리 배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수술 잘하는 교수님들 중에서도 특히 특출 난 수술천재 교수님들을 보면 수술에 약간 미쳐있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저런 광기를 따라가기엔 쉽지 않다. 그래도 강한 열정이 있다면 광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전공의 1년차... 아니, 2년차 때까지는 감히 순수했다고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모든 것에 의욕적이었고 모든 것에 열정이 넘쳤다. 특히 수술이 참 재밌었다.


그때는 전공의 특별법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시절이라서 그런지 어차피 퇴근 못 할거 병원에서 밤샐 각오로 업무 중 급한 것은 마무리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수술방에 기웃거리며 교수님들의 수술을 구경했다. 저녁에 병동 업무가 마무리되면 낮에 본 수술을 조금이나마 따라 하고 싶어서 의국에 설치되었던 복강경 연습기계를 개조하여 (난이도를 올려 단일공/single-port 수술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밤새 연습하고 지치면 중간중간에 논문을 쓰다가 누군가가 갖다 버린 리클라이닝 의자에 누워 쪽잠을 잤다. 그리고 하루를 반복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러고 살았는지 아무래도 그때는 약간 미쳤었던 것 같다.


꿈으로 가득 찬 1년차 시절이었다. 그런 토 나오는 연습량 덕분에 복강경 수술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지금 하라면 다시 못 할 것 같다. 젊은 사람의 패기였다.


그림 출처: Midjourney. (AI로 제작된 이미지로 사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갑자기 장편의 회고록이 되어버릴까 봐 일단 여기서 앞으로 빨리감기를 하자면 과한 열정은 괜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3년차 때부터는 열정을 식히고 최대한 조용히 전공의를 마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더 깊게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정이든 능력이든 남들보다 튀는 것은 불리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조직에 어울릴 수 있도록 억지로 내 열정을 죽여야만 했을 때

한 선배님이 나를 위로해 주면서 말씀을 주셨다,


전공의 때는 속도제한이 있는 도로를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렴. 다만 펠로우 때는 아우토반이야. 그때 너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봐.



이 말이 당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순수한 마음의 열정이라 해도 과하면 안 되고 인내를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열정이 있어도 드러내지 말고 속으로 타이밍을 맞춰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순수한 마음에 속도제한을 걸어야 한다니.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현실이 조금 씁쓸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겉으로만 자유주의, 자본주의지 속으로는 사회주의라고.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민족성이 있다고.


모두가 서로의 열정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했으면 어땠을까?

선의의 경쟁으로 모두가 함께 발전하는 분위기였으면 어땠을까?


이런 사회적 압박을 이겨내고 열정을 유지하는 자는 결국 더 높은 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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