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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Sep 02. 2023

마음속에 별을 단다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다

떠나보낸 환자는 우리의 마음속 별이 되어 평생 남는다.


누가 처음 이 말을 해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끼리는 자주 하는 말이고 워낙 예전부터 쓰던 표현이라고 들었다. 환자가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한 경우 주치의가 처음 사망선언을 하게 되면 항상 치프가 "그래. 별을 단건 이번이 처음이지? 고생했다."라고 하며 위로를 해주었다.


전공의 1년차 11월. 정말 살리고 싶었던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수술 후 내장탈장(internal hernia, 수술 후 장이 꼬인 것)으로 인해 strangulation(교액, 목 졸림)되어 장이 썩어서 응급실로 왔던 환자였다. 나는 그날 응급실 당직 주치의였다.


빨리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응급수술이 진행 중이었다. 마취과 선생님께서 진행 중인 수술이 1시간 정도 남았다고 끝나고 부르겠다고 했다. 방을 하나 더 열어달라고 부탁했지만 환자의 바이탈(활력징후, 혈압과 맥박 등)이 괜찮아서 지금 인력이 부족하니 가능한 뒤에 이어서 해달라고 답변주셨다. 환자는 엄청 아파하며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응급실에 피를 토하는 또 다른 환자가 왔다. 급하게 응급내시경을 부르고 수혈을 하면서 피나는 부위를 지혈하였다. 그렇게 다른 환자의 응급처치를 하며 1시간이 지났더니 수술방에 콜이 왔다.


환자를 함께 이송하며 수술장 입구로 올라간 그 순간 환자 모니터의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심박수가 측정되지 않았다. 심정지가 온 것이다. 서둘러 CPR(심폐소생술) 방송을 내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 문제가 되었던 부위는 해결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이미 패혈증이 많이 진행되어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승압제(혈압을 억지로 올리는 약)를 장기간 썼다.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인력이 없어도 아무리 바이탈이 괜찮아도 기다릴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피 토하는 환자는 살렸지만 이 환자는 못 살렸다는 죄책감.


환자가 왔을 당시에 당직이었지만 마침 담당 교수님의 주치의였기도 했던 나는 다른 급한 일이 아니면 항상 중환자실로 내려와 그 환자 곁에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매우 비효율적인 행동이지만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면 어떻게든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결국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1달 반동안 시간을 끌다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공의로 환자를 보내는 것과 집도의로서 환자를 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내 이름을 걸고 수술한다는 것

그리고 환자가 내게 자신의 배(생명)를 맡긴다는 것

때론 잊고 살지만 엄청난 부담감이다.


한 번 외과의사가 배에 칼 댄 환자는 평생 책임져야 할 자식 같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외과의사는 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가끔 환자 본인보다 더 놓지 못한다. 이 문장이 마치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더 복잡한 죄책감과 무능력함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필연적으로 합병증이 발생한다. 아무리 똑같이 하고 완벽하게 수술을 한다고 해도 의학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일부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합병증이 생겼을 때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마음속 한편에는 계속 그 죄책감이 자리 잡는다. 약을 쓰다가 안 좋아진 환자와 달리 수술 또는 시술 후 안 좋아진 환자는 수술자/시술자에게 비난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소송을 하는 환자들도 있다. 의료과실이 아니고 어쩔 수 없던 상황이라도 수술자가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 아닐까?


'수술 중에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 나한테 수술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않았을까?'


드물게 합병증이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내가 수술한 환자는 절대 죽을 수 없다며 환자에게 더 집착하기도 하는 게 외과의사다.


전임의(fellow) 때 일이다.


수술 잘하시기로 유명한 교수님께서 매우 심한 암환자 수술 중에 환자가 출혈로 사망했다. 그렇게 수술 잘하시는 그 교수님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구나...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수술실 밖으로 나가보니 교수님께서 보호자에게 설명하시면서 보호자와 함께 울고 계셨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괴로움은 무뎌지지 않구나.


그날 교수님께 여쭈어봤다.


"수술을 계속하다 보면... 확률적으로 mortality(사망)가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 무서워서 major surgery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들은 어떻게 그걸 다 견디고 하시는 거예요?"


"... 어쩔 수 없어. 대처법도 결국 경험으로 배우는 수밖에." 교수님은 마음의 고통을 달래듯이 술을 한 잔 들이켜셨다. "그리고 더 노력해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수밖에."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보호자들만큼 고통스러울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교수님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한 잔 더 들이켜셨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나라면 관두고 싶었을 것 같다.


교수님은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예약된 환자들의 수술을 재개하셨다. 얼굴은 평소보다 많이 지쳐 보이셨다.




마음속에 별 하나가 새로 박히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아물고 나면 가슴속에 영원히 아름답게 빛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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