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문턱

세 번째 열 살로 살아가기

by 반윤성
1993 年 1 月 15 日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리고 71만의 신생아가 울음을 터트릴 때 나도 덩달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이에 무감각한 편이긴 하지만 2022년에 서른이 되는 나에게 어쩐지 30이라는 숫자는 크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갓 부임했던 담임 선생님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그 선생님은 멋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전날 회식 때 먹었던 술이 깨지 않아 수업 중간에 시시콜콜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대학생 때 데모했던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 현실에 대한 관점들을 민낯으로 알려줄 때면 마치 우리가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막연한 세계로 접속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결혼을 했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꽤 중요한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산전수전 모두 겪은 완연한 어른의 형상이었다. 선생님이 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나이가 되면 거침없이 일을 해결하거나 매사 자신감에 차있는 완전한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김광석, 서른 즈음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떠올려 본다.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가사와 음악 자체가 주는 울림이 큰데, 내가 직접 서른 즈음이 되어 가사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보니 완전한 성인이라고 생각했던 어릴 적 그린 나이의 이미지와 상반되게 무언가 초조하고 불안하며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거뭇거뭇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세대가 많이 바뀌어서 지금 서른 살과 과거의 서른 살이 다르다곤 하지만 모두 같은 이립(而立)이다.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에서 시작해서 정확히 같은 세월을 보냈고 비슷한 삶의 고민과 번뇌, 애욕, 희망을 느꼈으리라. 강인했던 선생님도 지금의 나처럼 마음 한편엔 두려움과 막연함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서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특별하지 않고 모두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완전한 어른의 모습을 갖출 필요도 없고, 진중하고 예의 바른 모습, 철든 생각, 확고한 정신세계같이 누군가 미리 만들어 둔 이미지를 복사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다르지만 각자의 세상 속에서 30년이라는 세월을 서로 다르게 녹여냈고 이제 새롭게 다가올 나날들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의 현실은 내가 십 대일 때 상상했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저 자신의 보폭과 속도에 맞게 충실히 살아가기로 한다.




우리가 피고 지는 꽃잎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