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세 번째 열 살로 살아가기

by 반윤성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무엇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참 신비하다. 누가 이것을 좋아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좋아하면 돈을 주는 것도, 좋아하면 대상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선 대상에게 '좋다'라는 감정이 피어오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나는 이것을 '열려 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어떤 대상에 열려 있다는 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내가 사랑에 빠진 대상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 쉽게 행복해진다. 그래서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만 꼭 해볼 만한 일이다.


물론 좋아하던 것이 어느 순간 싫증이 날 때가 있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증오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자책하지 않도록 하자. 우연과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 나와 상대가 놓여있었고 아주 짧은 순간 그 교차로를 지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평행선을 달릴 수 있다.


서른 살의 감정 처리 방법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감정을 올바르게 컨트롤한다는 것은 웬만큼의 수련이 되어있지 않고서야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화가 날 때 결정하지 말라'는 익명의 격언처럼 우리는 종종 크고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잘못된 결정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꼭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감정을 절제해서 더는 어떤 표현도 하게 되지 못한 어른을 보았고, 당연히 사람으로서 화가 날일인데도 마치 성인군자처럼 인자하게 웃어넘기는 사람도 보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어느 순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일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사실 조금 더 이쪽에 가깝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속상한 티를 잘 안내는 편이며, 사회 속의 어떤 관계에 있어서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먼저 참고 견디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게 참 좋았다. 나 하나만 참으면, 이 순간만 잘 견뎌내면, 일 크게 만들지 말자 같은 소리가 내 전두엽에 메아리처럼 퍼졌다.


They are buried alive and will come forth later in an uglier ways. Sigmund Freud

서른 살이 된 지금에야 이게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 생긴다. 어떤 감정이 피어오른다는 것은 내가 이 감정의 주인으로써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인데 그동안 책임지지 않고 애써 외면하려 노력했다. 그저 충돌을 피하고 불꽃을 끄는데 급급했다.


이제는 내 감정에 조금은 솔직해져 본다. 글을 적든 직접 표현하든(여전히 이 부분은 서툴다) 내가 느낀 긍정적이며 부정적이며 혹은 그 양단의 사이 어디쯤에 있는 소소한 감정이라도 꺼내어 마음 한편에 전시하도록 한다. 감출수록 커지며 들어낼수록 작아지는 게 우리네 마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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