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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톰림의 HR이야기 Apr 29. 2024

HR101_돈을 줄 테니 너의 인생을 내놓아라

우리는 그걸 근로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어느 날 악마가 속삭인다. 


'지금부터 너의 인생을 사겠다. 얼마면 팔겠는가? 

5년에 10억이면 너의 인생을 넘길 수 있겠나?

당신은 5년간 누구도 만날 수 없고,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아무런 기억도 할 수 없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내가 마음대로 쓸 테니..'


악마와 타협하면 안 되는 거라고 어려서부터 배웠지만, 제안은 일단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시급으로 환산하면 이게 얼마인가..?

일 년에 2억인데, 24시간 365일 근무니까.. 일단 주 52시간은 초과하는 조건이긴 한데.. 연장근로에 연장야간근로에 휴일근로에 휴일연장야간에..

근데 이거 계약서는 쓰긴 하는 건가..? 

이거 그냥 어디 장기 출장 가는 일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기억까지 안나고 돈 버는 거면 이거 완전 개꿀인데...?'


커뮤니티에 흔하게 올라오는 n억 받기밈 중 하나이다. 

재미로 하는 망상이지만 '오호라 괜찮은데 10년 팔고 20억 받아볼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 있었으리라. 


그런데 HRer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이거 그냥 채용공고 아닌가 싶더라는 것. 

우리는 사실 계약관계로 이미 시간을 팔고 있으니 말이다. 

얼핏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듯한 이야기. 


오늘은 근로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난 오늘 내 삶을 팔기로 했어. 근로계약이라고 아니? 

참 중요한 건데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것을 꼽으면 아마도 1위는 당기시오. 2위는 근로계약서 정도가 아닐까. HR일을 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로계약서를 그다지 꼼꼼히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계약이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구속하는 내용이라면 다시 보이지 않을까?


근로계약은 급여라는 금전을 대가로, 근로(노동력)를 제공하는 형태의 계약이다. 

이 근로계약에서 근로기준법에도 명시하도록 되어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꼽자면 첫 번째는 임금의 구성이고, 두 번째는 소정근로시간과 휴일에 관한 사항이다.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은 너무 당연하게도 물리적으로 특정 시간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인데, 

통상적인 근로계약은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주 5일의 근로일, 주 1일의 주휴일과 1일의 무급휴무일로 구성된다. 


우리가 얼마큼 근로를 제공할지 그 시간과 그 시간에 대한 값을 책정하는 방식을 명시하는 것이 이 계약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원하는 시간만큼 필요한 일을 해다오, 그럼 난 그만큼 돈을 주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알바와 같이 시간급 제도로 일을 해 본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어색하게 들리는 분들도 있으리라.

나는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품질의 지적노동을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너 오늘 몇 시간 일했니? 돈 값하고 있니?

포괄임금제는 근무시간에 정비례해서 급여가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포괄연장수당이 포함된 연봉제는 투여된 근로시간과 급여의 상관관계를 희석시킨다. 시간표에 기반한 스케줄 근무에서는 '시간=돈'이라는 개념이 확실하지만, 포괄임금제는 시간보다는 '성과=돈'이라는 개념이 더 일반적이다. 


특히 매년 성과와 평가에 의해 연봉상승률과 당해연도 인센티브가 결정되는 성과중심적 기업의 형태는 '성과=돈'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강화시킨다. 그래서 이런 포괄임금제가 포함된 연봉제로 일하시는 분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는 표현이 어색할 수 있으리라. 


이런 개념은 특히 개인의 성과에 따라 압도적인 이윤이 창출되는 일부 금융, 컨설팅업에서 공공연한데, 이런 업계에서는 내가 책상을 지키고 있는 시간은 전혀 업적이 되지 않는다. 영업 직무도 마찬가지다. 영업 목표를 달성하고, 기업의 흥망이 달린 프로젝트를 따내는 직원이라면 회사에서도 근무시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성과=돈이니까. 성과를 잘 내면 돈 값을 하고 있다가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근로시간대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했니 안 했니 타박을 듣고, 자리에 일어나는 시간도 관리하는 회사도 있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앞선 직무들과 다르게 대부분의 직무들이 성과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성과를 눈에 보이게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내가 주고 있는 이 인건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느냐'에 대해 기업의 챌린지가 시작되는 것이다. 


왜 일이 안 끝나지? vs 쟤 왜 일을 못하지?

안타깝게도 근로계약은 시간의 최소 투입량은 결정하지만 그 결과인 최종 생산물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영진이나, HR담당자들은 경험을 통해 인력의 증가가 생산성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해요는 들어봤어도, 사람이 많아서 일이 잘돼요는 못 들어봤다. 


재밌는 건 근로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은 반비례한다는 것인데, 

성과가 비등한 상태로 투여하는 시간만 증가하면 근로시간당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은 수학적으로 당연하니까 말이다. 


자 그럼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은 오히려 증가하겠지? 

그럼 다 같이 빨리 집중해서 일하고 칼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슬프게도 HR적인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근로시간의 합인 전체 인원 규모가 적정한 수준인가?' 하는 인력대비 생산성의 관점으로 보면,

근무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사람의 수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실제로 감원을 추진해도 전체 생산성은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종종 관찰된다. 

(인건비가 줄어드는 매직!!은 덤!)


기대했던 칼퇴가 아니라 칼바람이 부는 새드엔딩이다. 

남은 사람이 야근을 조금씩 늘리면 오히려 일이 더 잘된다는 슬픈 절설도 있다.


개별 근로자와의 명목상의 계약은 분명 시간의 거래인듯 했는데, 

실질적으로 조직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투입된 시간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겪는 딜레마는 투입된 계약한 근로시간의 총량이 성과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투입량과 성과물의 황금비를 찾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임이 시작된다.


"뽑아!!"

"뽑지마!!"

"다시 조금 뽑아!!"

"아니 채용 달려!!!!"

"아니 다시 중단해!!...지말고 뽑아!!"


"...미안한데 입사예정자한테 채용중단되었다고 잘 얘기해줘..."


안타깝게도 정답은 요원해보인다. 


성과가 중하니, 시간이 중하니?

우리는 시야를 좀 더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과 관련된 조직의 논쟁은 사실 그 조직이 성과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 조직은 성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거나, 성과를 원하는 방식으로 측정하지 못하거나성과의 진척과 그 과정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그리고 남는 건 측정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뿐이니까 근로시간문제를 이야기하고, 

다소 세련되지는 않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취지로 '야근도 해야지'라는 성과독려의 메시지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냥 나도 '이런 개저씨'라고 질러..?) 


시간의 투입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 HRer는 이 조직의 상황을 보다 면밀히 관찰해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투여한 근로시간이 생산성을 담보하지 않는 건 조직의 성과관리가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성과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연근로제와 같이 시간자원을 가변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직의 HRer라면 조직 생산성을 관리할 있는 성과관리방안과 성과측정방안대해 함께 고민해보아야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책상을 지키는 사람보다, 명확한 지표로 조직의 성과를 이해할 수 있게 말이다. 


조직은 성장의 한계를 겪고 있다.
전략의 수정 혹은 강화가 필요한 건 아닌가?
시간의 값을 따지는 조직이 될 것이냐,
성과의 값을 따지는 조직이 될 것이냐.





오늘은 근로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1 unit의 노동력이 1 생산성을 도출하는 노동의 종류도 있겠지만, 고도화된 산업군으로 갈수록 그 상관관계는 약해지는 것 같다. 


한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무한대로 높아질수도 있는 시대이니까. 


근로자인 나는 시간의 값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성과의 값을 받고 있을까? 


시간은 오늘을 사는 모든 이에게 평등이고, 누구라도 팔 수 있는 자원이다. 

하지만 성과는 아무나 팔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그래서 성과의 값이 최저시급보다 비싸다.

 

내 소중한 삶과 시간이 도매급으로 팔려가지 않도록,

성과로 인정받는 삶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또 기원해 본다. 


다음 시간에는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성과관리의 개념을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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