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노블 – 나에게 글이란...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폐허가 된 거리는 물웅덩이로 가득 차 있었고, 어둠은 빗방울과 섞여 질척이며 무거운 담요처럼 도시를 뒤덮었다.
노블은 그 속을 홀로 걸었다.
손에는 젖은 종이뭉치가 들려 있었고, 그 위에 적힌 글귀들은 이미 번져 알아볼 수 없는 얼룩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노블: “내 글귀가 현실이 된다…? 다 거짓말이었지.
멈춰라, 지켜라, 막아라… 내가 아무리 써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자비조차… 난 지켜내지 못했잖아.”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신발은 흙탕물에 잠겨 질척거렸고, 온몸은 비에 젖어 무거운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말라붙어 피가 배어 나왔다.
일행과 흩어진 뒤 찾아온 고독은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노블은 무너진 학교 건물로 몸을 피했다.
안에는 젖은 책과 종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책장마다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물에 불은 종이들은 눅눅하게 찢겨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쓰러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글자들은 이미 물에 녹아내려 검은 얼룩으로 번져 있었다.
손바닥에 스며든 잉크가 끈적하게 번졌다.
노블: “내 글도 결국 이 꼴이지.
‘지켜라’라고 쓴 게 이제는 ‘져라’처럼 보이네.
내 글귀가 현실을 바꾼다니… 빗물 앞에서도 버티지 못하는데, 무슨 힘이 있겠어.”
그는 종이를 구겨 찢으려 했지만, 손끝이 떨려 끝내 찢지 못했다.
결국 다시 가슴에 안으며 중얼거렸다.
노블: “자비… 만약 내 힘이 진짜였다면… 널 구했을 텐데.”
그 순간이었다.
세찬 빗소리 속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스쳤다.
“힘내… 노블…”
노블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폐허 같은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창밖엔 빗줄기만 흘러내렸고, 어둠 속엔 감염자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귀를 감싸쥐었다.
노블: “…분명히 들렸어. 자비의 목소리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 목소리는 빗소리의 착각일까? 아니면 기억이 만든 환청일까?
그러나 단 한 마디는 그의 가슴 깊은 곳을 뜨겁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발소리가 울렸다.
“보라… 보라…”
어둠 속에서 합창이 들려왔다.
창문 틈새로, 문틈으로, 천장에서 검은 눈동자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곧 수십 명의 감염자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그들의 목소리가 빗속의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노블은 종이를 가슴에 껴안고 뒷걸음질쳤다.
심장은 귀를 찢을 듯 고동쳤다.
노블: “오지 마… 제발…”
그러나 감염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손이 뻗어와 그의 팔을 잡고, 어깨를 붙들었다.
거칠게 얼굴을 움켜쥐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은 눈동자가 그의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노블: “안 돼… 안 돼…”
그의 눈꺼풀이 억지로 벌어지려는 순간
종이 위에 긁적이던 손끝이 마지막 힘을 짜내듯 글귀 하나를 새겼다.
‘멈춰라.’
순간, 종이가 찢어지듯 눈부신 빛이 폭발했다.
빛은 노블의 가슴에서 솟구쳐 나와 그의 온몸을 감싸며 교실 전체로 번졌다.
“멈춰라.”
그것은 자비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노블 자신의 심장에서 울린 메아리 같기도 했다.
감염자들이 일제히 굳었다.
노블을 붙잡던 손이 마치 돌처럼 경직되었고, 검은 눈동자들은 빛에 흔들리며 멈춰섰다.
합창은 끊어지고, 교실은 기묘한 정적에 잠겼다.
노블은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그의 몸에서 여전히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허공에는 글귀가 불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는 다시 손끝을 움직였다.
‘물러서라.’
빛이 번개처럼 튀며 허공을 갈랐다.
감염자들이 바람에 밀리듯 뒤로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다.
합창은 찢어지듯 끊어지고, 그들의 몸은 바닥에 무너졌다.
노블은 무릎을 꿇고 손을 바라봤다.
손끝은 여전히 잉크로 얼룩져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이번엔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노블: “내 글… 살아 있구나.
자비, 네가 나를 도운 거지? 아니… 이제부터는 내가… 내 글로 세상을 지켜낼 거야.”
그는 종이를 가슴에 꼭 안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도시를 때렸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교실 벽에 새겨진 글귀들이 여전히 빛나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