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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Jul 30. 2018

방향 편

용희사전 12

방향    


하루는 흡연 부스가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러던 중 한 분이 힘겹게 걸어오시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았다.     


그분의 걸음걸이는 너무도 조심스러웠고 굉장히 천천히 걸으실 수밖에 없어 보였다. 나는 다시 카페로 돌아와 남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20분 정도 시간이 지나 근처 3분 거리에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였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 즈음 저 멀리 아까 보았던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걸어오시고 있었다. 힘겨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 걸어오신 것 같았다.     


사실 어딘가에 들렀다가 오셨을 수도 있었지만 그분이 왠지 아까 카페에서 지금까지 이곳으로 걸어오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스쳐 지나가셨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자신의 도착지의 방향을 잃지 않으시고 힘겹지만 열심히 걸어 나가셨다.    


오늘은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방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뜻이나 현상이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간 혹 인생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삶의 방향을 조금씩 나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모두가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살고 있을까? 또는 자신이 설정한 인생의 방향대로 나아가고 있을까? 아마 저마다 다를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인생에 있어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은 내가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왜 우리는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가? 이는 당연히도 주체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경험이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 중 예체능을 선택한 친구들과 아닌 친구들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적어도 예체능을 선택한 친구들은 자신의 인생을 한 번은 선택을 해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작은 차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인생을 한 번쯤 주체적인 선택을 해봄으로써 앞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갈 기초를 닦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예체능이 아닌 다른 학생들도 나름의 포부와 꿈이 있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과 꿈을 생각해 볼 시간이 적어 그저 주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인생을 바꿀 수 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가 많기도 하다. 예체능을 선택했다고 꼭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반대로 일반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도 특별한 계기를 통하여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즉, 사람에게는 특정한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계기는 사람들마다 다른 계기이지만 분명한 변화의 지점이라 생각된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꼭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에 순응하며 사는 것 또한 쉽지 않으며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만들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가 자신만의 방향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곧 삶의 미아가 돼버릴 것이다.     


삶의 미아가 된다는 것은 나를 잃게 되고 나를 잃게 되면 내가 살아도 내가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껍데기 인생을 살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삶의 방향을 설정한 다는 것은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자아가 일러주는 내가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꼭 삶의 방향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꼭 직장에 다닌다고 자신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직장을 다녀도 자신만의 삶의 방향이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직장이 나의 삶의 방향과 맞지 않다면 다른 길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만 하기를 바란다.     


사실 요즘에는 취업을 하기도 너무도 힘들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버티는 것 역시 너무도 힘들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 것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면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내가 나의 삶의 방향을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정했다면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다닌 것만으로도 만족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직장이 정말 돈을 많이 벌어 주는가? 과연 그럴까?     

사실 대기업을 다니면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의 방향을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설정하였다면 그럼 대기업에서 절대 만족할 수 없다.     

만약 대기업의 봉급에 만족하고 다니는 것은 내가 그 정도의 금액에 만족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나에게 부당함을 주더라도 내가 있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브런치 글을 읽다 보면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퇴직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장은 절대 삶의 방향이 될 수 없다. 직장은 나의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직장에 노예가 되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직장은 분명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전부는 될 수 없다.     

나의 인생의 전부는 나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자신마저도 잃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퇴직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방향과 맞지 않는 직장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한 번쯤은 자신의 인생의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을 해보기를 권해본다. 그리고 나만의 목표와 방향이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 선택을 주저하는 것은 실패가 두려운 것보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취업을 못하면 사람 취급받기가 힘들어지고 너도 나도 공무원을 하겠다고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기보다 삶의 안정을 쫓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위에 문장을 쓰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삶의 안정을 쫓게 된 것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나만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경우 삶의 방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또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 방향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왔던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나만의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의 나와의 수많은 대화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반영되어서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명예가 높은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부족한데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나의 이러한 부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의 삶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물론 이 역시 쉽지는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하나 약속을 드린다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 하나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살아있다.’라는 것을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과 함께 행복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방향 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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