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4년동안 아픈 딸을 안고 있느라 나의 두 손과 온몸은 루아에게 써야 했다. 내 관심과 온 신경을 8살 큰 아들에게 나눌 여유나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외로움에 우울했고 슬펐다.
그걸 표현하자니 본인으로 인해
엄마아빠가 힘들까 봐... 더 지칠까 봐.... 참아야 했다.
의미 없이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아이는 함께
놀 친구를 찾아다녔다. 친구가 없을 때면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 놀이터를 돌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타다가집에 쓸쓸히 돌아왔다. 아이는 자신의 쓸쓸함을 혼자 참아야 했다.
그런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더 급하게 돌봐야 하는 연약한 둘째 아이로 큰 아이를 챙길 수가 없었다. 8살밖에 안 되는 큰 아이가 조금 더 스스로 그리고 알아서 모든 걸 하기를 요구했다. 생활적인 부분이나 학습적인 부분을 당부하다 안되면 살살 타이르다 결국은 윽박지름이 담긴 협박과 강요가 섞인 고함으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지쳐버린 나는 귀가 먹먹하고 울리면서 이유 없는 진동이 느껴지는 극심한 이명으로 괴로움에 지쳐있었다.
버거운 삶에 무엇하나 제대로 흘러가는 게 없었다.
금전적인 어려움, 건강의 이상증세, 큰 아이의 우울감, 끝나지 않는 둘째 아이의 뇌전증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큰 아이는 애어른이 돼버린 채로 홀로 자라 가는 모습이었다.
큰 아이는 하루 종일 둘째 아이를 안고 집안일에 버거워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곧 쓰러질 듯한 나에게 물었다.
" 엄마.. 내가 뭐 도와드릴까요?"
그 물음에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다.
"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이건 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이지..!! 너무 마음 쓰지 마..
이건 엄마가 다 해야 해서 힘들지만 해보고 있는 중이야..."
" 엄마가 곧 쓰러질 거 같아요.. 엄마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저한테 꼭 말해주세요.."
라며 아이는 늘 나의 안색을 살폈다.
동생에 아픔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도 동생이 침을 흘리고 누워있으면 손수건이라도 가져다 동생의 입가를 닦아주곤 했다. 악기를 가져다 누워만 있는 동생 옆에서 흔들면서 노래를 불러주며 놀아주는 오빠였다.
그런 아이가 13살이 되었다.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부쩍 키도 생각도 커버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춘기 아이가 돼버렸다.
남편과 한 번씩 이야기하곤 한다. 그때 큰 아이도 어린아이였는데 우리가 너무 다 큰 아이처럼 대한 게 아닌가 싶다고., 스스로 하라고 알아서 하라고 강요했던 게 아이에게 버거웠을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좀 더 엄마 아빠의 품 안에서 있고 싶었을 텐데 아픈 동생이 그 자리에 있느라 멀리서 지켜보며 외로웠을 아이가 안쓰럽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엄마가 그때 그 삶에서 널 안아주고 품어줄 여유는 없었지만 늘 마음으로 미안했고 고마웠고 사랑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후 일 년 뒤 기록된 이야기
은율이 책상 정리하다가 그림발견
가족의 30년 후 그림 그리기인가 보네.
아빠 입 옆에 뭔가 했더니 팔자주름 옆에 땡글땡글해 보이는 건 어머 난가? 하고 엄마는 주름 없네 했더니
자세히 보니 동생
턱에 털 난 건 뭔가 했더니 본인이래ㅎㅎㅎㅎ
30년 뒤면 너도 40살인데 왜 팔자주름 없냐~~ 턱에 턱수염만 날 거 같은가 보네..ㅎ
마지막 할머니 같은 족두리 머리한 얼굴 보니 엄마래ㅡㅡ;;;;
나 그때 쇼트커트할 거야 나는 동생이 엄마인지 알고 좋아했더구먼 그래 엄마도 30년 뒤면 67인데 입옆에 메기처럼 팔자주름 달고 있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