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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Nov 11. 2020

갇힌 공간에서 시작된 마음의 회복

자가격리 중, 2개월 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창밖으로 마지막 잎새들이 지고 있는 것을 본다. 아직 가지에 붙어 있는 빨갛거나 노란 잎들도 머지않아 쌓여 있는 낙엽들 위로 포개어 내릴 것이다. 엄마댁에서 자가격리 중인 나는 그렇게 내 방 창문을 통해 눈으로라도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부디 일주일만 더 버텨주었으면, 그래서 내가 가까이에서 그 잎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낙엽이 쌓인 길 위를 사그락사그락 소리내며 걸어볼 수 있기를.

막 자가격리 2주째로 접어 들었다. 시작할 때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 감금생활도 적응이 된 것인지 처음 3일 몸을 뒤틀며 보내고 나니 시간이 제법 빠르게 흐른다. 지루하기보다는 답답하고, 가을빛 가득한 거리를 걷지 못하는 것이 눈물나게 아쉽다. 또 하나 힘든 건, 집안에 갇혀 계획이 필요 없는 무한대의 시간을 살다 보니 시차 극복이 전혀 안된다는 거다. 초반에 친구도 만나고 싸돌아다니며 몸을 피곤하게 해야 오히려 시차 적응이 쉬운데 말이다. 매일 새벽 4-5시까지 말똥말똥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렇게 뒤숭숭한데 어떻게 한국 올 생각을 했어?"라고 사람들이 묻는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로 바뀐 공항 분위기,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장시간 비행과 자가격리의 부담까지 감수하고라도 너무나 한국에 오고 싶었다. 10월부터 유럽의 코로나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는 가운데 아일랜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일 1천명이 웃도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아일랜드 정부는 제한조치를 5단계로 격상했다. 완전 락다운 바로 아래 단계의 조치였다. 이동거리는 5km이내로 제한되었고, 슈퍼와 약국 등 필수 상업시설을 제외한 모든 소매상이 문을 닫았다. 카페나 레스토랑 등 식음료서비스 분야는 배달과 테이크어웨이만 가능하도록 영업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여름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나의 무력감과 우울감은 그 무렵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마 여름휴가가 끝나고 존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직장과 학교를 이유로 한 이동은 제한조치에서 제외되었다)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공간과 적막감, 코로나 제한조치로 아무곳도 갈 수 없는 나의 상태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세상에 혼자인 듯한 고립감이 덥쳐왔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글도 쓰기 싫고 잃으려고 미뤄둔 책들도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요가와 산책, 스페인어 공부는 조금씩이라도 매일 했다. 그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매일 그저그런 넷플릭스 시리즈나 유튜브로 한국 예능프로그램 다시보기를 연달아 보면서 침대 위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런 내가 정말 싫었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지만, 마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처럼 몸뚱어리는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작가'라는 명함을 달고 글을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이 오히려 책상 앞에 앉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다음 책 잘 준비하고 있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쥐구멍 속에 머리를 쳐박았다. 솔직히 기대가 컸던 첫 책이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이 컸고, 나는 쓰는 행위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내 모습이 초라했다. 좋은 친구 만나 수다라도 떨면 좀 풀릴 것 같은데 코로나로 사람도 만날 수 없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도 막상 내 초라한 모습을 들킬 것 같아 하기 싫어졌다.


한국에 갔다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 상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챈 존의 제안 덕분이었다.

"혼자 한국에 다녀 와.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재충전해. 여긴 어차피 크리스마스 때까지 이런 상황일 거고 네가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계속 힘들 거야. 코로나 상황도 한국이 아일랜드보다는 훨씬 낫잖아. 최소한 네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기분이 많이 나아질 거야."

존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났다. 그의 마음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한국행을 결심한 며칠 후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한국에 간다고 뾰족한 돌파구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을 쉬고 싶었다. 힘도 얻고, 자신감도 회복하고, 아일랜드에 돌아간 후의 시간들을 차근차근 계획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나는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앞에 두고 두 달만에 다시 글이란 걸 끄적이고 있다. 오늘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날이다. 어쩌면 한국에 오기 전 간절히 기도했던 마음의 회복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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