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뚱이 Feb 03. 2022

어느 TFT의 비극 <열일 리더>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 <5화>

 K 비엔날레 TFT는 그룹 내 흩어져있는 예술 관련 자산과 역량을 한데 모아 새로운 문화 사업 기회를 창출하려는 의도로 올 초 출범하였다. 국내 10대 그룹답게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인적 물적 자산이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인하여 각자 따로 놀고 있었는데, 이것을 신사업이라는 목적으로 얼라인먼트 시키려는 목적이 강했다. 


 계열사별로 담당자도 각양각색이어서 큰 계열사의 경우는 예술팀을 따로 두고 도슨트와 큐레이터도 채용되어있는 반면, 작은 계열사는 총무팀이나 관리팀에서 비전문가가 자산관리 업무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계열사 담당자를 끌어모아 팀원은 총 10명으로 구성하고, 팀장은 외부에서 예술기획 전문가를 영입해 TFT를 구성하여 일을 시작하였다.  팀장은 비록 큰 조직에서 근무한 적은 없었지만 현대 예술 전반에 걸친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국내외 문화예술계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TFT의 상반기 업무는 주로 예술 신사업 기획, 홍보였으며, 하반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현재 그룹이 보유한 예술 자산 수준에서 무료 전시회를 진행하였다. 제프 쿤스나 쿠사마 야요이, 해골 그림으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 미술의 스타 작품 중심으로, 그룹의 미래 방향성 상징을 주제로 진행한 전시회는 의외로 20대~30대들의 소확행 분위기를 타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황을 이루었다. 재무적인 매출은 미미하였지만, 그룹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가 기존보다 상당히 업그레이드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받았다. 


 문제는 성과 평가 시즌이 다가온 연말에 터졌다. 회장의 전격적인 지시에 따라 TFT에 대한 조직 성과급 비율이 월급여의 300% 수준으로 책정되어, 처음에는 팀원들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하루 만에 불만과 비난이 TFT내에 팽배하게 되었다. 


 이유는 성과급 금액의 편차 때문이었다. A 계열사에 차출되어온 홍 길동 대리는 기존에 받던 연봉 시스템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1,500만여 원(A 계열사 대리 기본급 500만 원 X 300%)을 책정받은 반면, 그보다 작은 B 계열사에서 파견 나온 연 산군 과장은 불과 900만 원 정도(B 계열사 과장 기본급 300만 원 X 300%)를 책정받았던 것이다. 


 나머지 8명의 팀원들도 각자의 계열사 형편과 급여제도에 따라 들쭉날쭉한 금액을 성과급으로 받게 되어, 상대적으로 금액이 많은 직원들은 표정 관리하느라 애를 썼고, 그렇지 못한 팀원들은 울그락불그락하며 비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과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K 비엔날레 TFT는 올해처럼 팀워크를 맞추어 내년에도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회의적 시선이 감돌고 있었다.




 예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몇 년 전, 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건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결국 무죄 확정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뒷맛이 썩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쟁점은 화가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조수를 시켜 그린 그림이 과연 그 예술가의 진짜 작품(Authorship)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관점에서는 조영남 사건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프랑스 다다이즘 화가이자 조각가인 마르셀 뒤샹이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서 인근 철물점에서 구매한 남성용 소변기를 ‘샘(Fountain)’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한 이후, 소위 ‘개념미술’이라 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조수들을 채용해 조력, 또는 협업을 하는 것은 현대 미술계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씨가 조수들에게 시켜 완성한 작품들이 그 관행과 기준에 부합된다고 할지라도 공정성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보통 조수를 고용한 예술가들의 경우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와 처우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조 씨는 조수들에게 작품 판매대금의 몇 백분의 일 정도의 금액(대략 한 작품에 한화 10만 원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만 지불하였다고 한다. 


 하청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작품 그리는 일이 그리 만만할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조 씨의 화투 그림 시리즈는 단순 채색만 시킨 것이 아니라 그림의 99%를 조수가 작업하고 조 씨는 사인만 하는 정도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림 하나 완성하려면 몇 날 며칠 걸렸을 것이다. 


 요즘 말로 열정 페이, 재능 착취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게다가 명확한 하청 계약서도 없이 그림이 팔리면 용돈 주듯이 툭툭 던져주는 식으로 지불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공정성 개념 중 분배의 공정성과 절차적 공정성 모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상황문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 언급된 문제의 발단은 TFT 리더의 HR 제도에 대한 무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TFT 팀장은 예술기획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지만, 큰 조직에서는 업무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한 사실에서, TFT 팀장은 조직 성과관리에 대한 이해가 약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아마도 그룹 본부에서 처음 TFT를 기획했을 때에는, 각 계열사에서 가장 탁월한 전문가들을 영입하자고 했을 것이다. 또, TFT의 인큐베이션 기간에는 기존 근무 계열사의 HR 시스템을 적용하고(신사업의 성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신사업으로 완전히 재정 독립하면 사업에 적합한 HR 제도를 수립하자고 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의 문제는 인큐베이션 기간에서의 각자 다른 Pay System에서 야기되는 개인들의 심리적 박탈감 발생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결국 이 또한 조직 공정성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조직을 위한 구성원들의 기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는 보상의 공정성 여부는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 직무만족, 조직몰입, 업무 성과, 결근이나 이직 등과 같은 다양한 직무행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여러 문헌에서 보고되고 있다.(고종욱 외, 2012) 


 TFT 팀원으로서 똑같은 역할과 책임으로 일을 분배받아 일했다면, 처우 역시 동일한 기준으로 수립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상황문에서 A 대리와 B 과장은 동일한 TFT 과업을 수행한 뒤 성과급을 받았는데, 그 차이가 무려 B 과장의 기본급 2배 정도나 격차가 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B 과장의 업무 수행에 대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아마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황문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필자도 모그룹의 인사실장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해인가 그룹 경영진에서는 오랜 숙고 끝에 신생 사업체인 계열사 하나를 탄생시켰고, 그룹 내 인재 총집합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바로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존 인재들이 새로운 계열사로 전보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룹에서 가장 인재들이 많다는 A 계열사의 Pay 수준과 신생사 B 계열사의 Pay 수준이 많이 달랐기 때문… B 계열사는 신생사이다보니 인건비 재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모든 HR 제도적 측면에서 A 계열사에 밀리는 수준이었고, 이는 총급여로 따지면 A 계열사 대비 30%~40% 정도의 격차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룹의 신사업 참가라는 대의명분에는 끌렸지만, 당장 받던 급여가 거의 반 정도로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섣불리 A 계열사의 인재들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신생 B 계열사에서는 당연히 숙련된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A 계열사에 계속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경영진에서도 그룹의 명운이 달린 신사업에 대해서 조직과 회사를 생각해달라고 직원들의 애사심에 호소하였다. 딜레마의 상황이었다. 결국, 적당한 위로금 및 임금 격차에 대한 보전금을 일부 지불해주는 방식으로 전보시키기로 결정하였는데, 사실 이것도 최적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의 인재는 최고의 대우로 보내는 것이 답이고, 최고의 대우를 못해준다면 차선의 인재를 택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논리에 맞다. 맹목적인 애사심에 대한 요구는 요즘처럼 평생직장 개념이 없는 시대의 직원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4화에서 공정성에는 분배의 공정성, 절차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 등 세 가지 정도의 하위 개념이 있다고 하였다. 위 상황문에서는 주로 분배의 공정성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즉, 기본적으로 ‘동일 노동에 동일 처우’라는 노동의 본질적 측면을 고민하지 않고, 기존 제도를 그대로 고수했기 때문에 사달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TFT 팀장은 리더로서 공정성에 관련된 본질적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과업 개시 전에 어느 정도 HR 부서와 손발을 맞추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일 리더들이여! 일 시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제대로 처우받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구성원들이 최고의 일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자부심을 갖도록 정당하게 처우하라.


작가의 이전글 나잘나잘 리더;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사는 리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