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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Nov 30. 2022

초등학생인데 아직도 아기 이불을 빨고 덮고 자요

내 아이는 부모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논리를 숨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부모한테 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고민. 어떤 고민일까요?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요?


오늘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잠잘 때나 이동할 때 아기 때 덮었던 이불을 덮거나 모서리를 빨아야 잠이 오는 아이를 만나 <은지와 푹신이>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1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초등학생인데 아직도 아기 때 이불을 빨고 덮고 자요



준혁이 같은 경우는 할머니가 상담을 기관에 의뢰해 온 경우다. 보통 기관을 통할 때는 복지관이나 주민자치센터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경우, 아니면 학교 측에서 담임선생님, 주임 선생님이 아이를 인도 차원에서 신청한다. 물론 부모님이 의뢰해오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일흔네 살의 연세에 손자를 키우면서 주변 시설에 관심이 많은 경우는 드물었고, 또한 직접 요청하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의뢰서에는 ‘산만하고 또래 관계 어려움. 부모가 이혼 후 자살 시도하여 심한 정서불안 상태를 보임’이라고 적혀있었다. 상담이 내게 배치되고 바로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준혁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준혁이 집에 방문하여 가족 상담하겠다고 했으나 할머니는 극구 반대하셨다. 이혼 후 아들에게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명절 때도 혼자 집에만 있을 정도고, 집이 워낙 누추해서 창피하다며 싫다고 하셨다. 나는 준혁이를 위함이라고 상담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고 설득했다.     


10평 남짓할까? 거실 겸 안방, 그리고 책상 하나와 성인이 잠잘 만한 공간의 작은 방이 있었다. 집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준혁이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 외에 다른 손님은 처음이라며,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누추한 곳에 귀한 선생님이 오셨다며 반겨주셨다.     


할머니는 아들(준혁이 아빠)이 어릴 때 남편과 이혼해 혼자 장사하며 외아들을 홀로 키우며 출가시켰다. 어렵게 키운 아들이 결혼해서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고 화목하게 사는 아들을 보며 행복했다. 그런데 잘 나가던 아들 사업이 부도가 나서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결국 아들은 2년 전 이혼했다. 이혼 후 처음에는 준혁이가 준혁이 엄마와 둘이서 살았다. 준혁이 엄마는 자주 술을 마셨고, 술 마실 때마다 죽고 싶다며 소리 지르고 울었다. 며느리는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그중 한번은 준혁이가 보는 앞에서 시도했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준혁이에게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준혁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해져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했다. 준혁이는 무섭다며 아빠랑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인 준혁이와 할머니 집에서 아들과 셋이서 살고 있다.      


처음에 준혁이는 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엉덩이는 쉴 새 없이 들썩거렸고 자세도 수시로 바꾸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몰라요’였다. 첫날 상담은 준혁이가 상담에 대한 부담감을 최소한 줄이는 게 상담 목표였다. 상담 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로 정했고, 첫째 약속 시간 잘 지키기, 둘째 상담 시간에 거실로 나가지 않고 이 방에 있기, 셋째 큰 소리로 대답하기로 서로 합의하여 약속을 정했다.      


준혁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나는 학교 성적을 물어보았다. 작년까지 국어 성적이 가장 좋았고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바닥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학원을 많이 다녀서 집에서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았다고, 또 자신이 원하면 부모님이 다 해주셔서 행복했다고 했다. 준혁이는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 자세를 바꾸고 조금 산만하긴 했지만, 거실로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준혁에게 첫 칭찬을 해주었다. 준혁이는 멀쑥한지 다시 듣고 싶어서인지 “제게 왜 칭찬해요?”라면서도 대화를 이어갔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준혁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전날 먹은 보쌈이 탈이 났는지 학교도 못가고 종일 토하고 설사하더니 조금 전에 잠이 들었다고 했다. 곤히 자는 준혁이 모습을 바라보는데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얘 좀 보세요. 이거, 어릴 적부터 덮었던 이불을 아직도 손에 쥐고 빨고 그러면서 자는데 어떡하면 좋죠? 이것도 병이죠? 상담받으면 나아질까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덮었던 이불인데다 지금은 너무 작아지고 군데군데 닳아 있었다. 여기저기 덧대어 붙인 천 조각, 여러 번 박음질한 자국 등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불 네 귀퉁이가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준혁이는 잠잘 때마다 이 이불을 찾는다고 했다. 이불의 모서리를 잡고 빨아야 잠이 들기 때문이었다. 버리기도 여러 번 했는데 어찌 알았는지 어느새 이불이 장롱에 들어가 있었고, 때론 베란다 구석에 있기도 했다. 이 작은 이불 때문에 번번이 준혁이랑 싸우는 것도 지친 상태였다.     


“애가 지저분한 것도 모르고, 쓰레기통 위에 올린 것을 왜 주워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된 남자 애가 부랄 떨어질까 겁나요.”     


언제부터 이불 모서리를 빨았는지, 빈도는 어떤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할머니 기억만으로는 부족했다. 할머니 기억과 준혁이나 기억하는 부분과 함께 퍼즐 짜 맞추듯 한 조각 한 조각 맞추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할머니 말씀을 빌자면, 준혁이 엄마는 어릴 적부터 어디를 가나 이 이불과 준혁이를 같이 안고 끼고 다녔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까지는 준혁이가 이불 모서리를 빠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혼 후 엄마랑 살 때까지도 그렇지 않았는데 작년에 엄마가 자살 시도 한 후 그런 것 같다.


준혁이 말을 들어보면, 준혁이는 그 이불을 유난히 좋아했다. 밤이나 낮이나 잘 때마다 항상 곁에 두는 애정하는 물건이다. 부모님이 매일 다투고 술 마시고 소리칠 때도 이 이불 하나만 있으면 됐다. 엄마랑 살 때도 처음엔 좋았다. 엄마가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울어도 좋았다, 엄마와 함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죽겠다고 할 때는 도깨비를 본 것처럼 무서웠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죽는 거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아빠랑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 집에 와서는 늘 엄마가 보고 싶은데 못 보니 외롭다. 지금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이 이불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 이불에 누우면 좋은데 엄마는 없었다. 하지만 이불 모서리를 빨면 엄마가 바로 옆에서 토닥토닥해주는 것 같아 편안해진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저분하고 아기 짓 하는 내가 밉다며 자꾸 이불을 버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고, 엄마가 못 찾아올까 무서웠다.    

  

부모님의 이혼 후 준혁이가 자주 이불을 찾았고 이불 모서리를 빨았다. 명절날 친척 집에 갈 때도 그 이불이 있어야 준혁이가 잠을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준혁이가 그토록 이불을 애타게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준혁에게는 단순히 덮고 자는 이불이 필요할 게 아니다. 부모님이 함께 살지 않고 이혼에 대한 속상함, 갑자기 엄마가 죽어서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엄마와의 이별에 대한 외로움 등으로 인해 준혁이는 심한 정서적 고립감이 생겼다. 이렇듯 작은 이불이 준혁이의 불안한 정서 조각들을 위로해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가 매일 같이 이불을 찾고 빠는 행동이 유아적 행동이라고 혼내서는 안 된다. 퇴행적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면 상담을 오래 끌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는 준혁 애미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집안이 이상하게 돌아갔다며 며느리에게 불길한 기운이 있었다고 했다. 사업이 망했고 가세가 기울어진 것을 한 사람으로 지목해서 탓할 수 없다. 아이의 교육적 측면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 또는 내외간의 갈등으로 피해 보는 건 자신들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했다.     


나는 준혁에게는 마음의 평정과 안정감을 찾도록, 할머니에게는 부모교육과 돌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도록 상담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너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한 게 아니고, 준혁이 때문에 엄마가 죽으려고 한 게 아니야. 이불 모서리를 빨고 자는 것도 잘못된 거 아니고, 선생님이 온 이유는 준혁에게 힘과 용기를 주려고 온 거야. 예전처럼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전처럼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지금 가족과 잘 지내는 걸 도와주러 온 거야.”라고 매일 상담 마칠 때마다 준혁이를 안아주며 말을 해줬다.     


그리고 준혁이는 손가락으로 조작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놀이치료와 미술치료, 독서치료를 병행하며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준혁이 경우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서 한 가지 방법보다 1회기에 1~2개를 섞어가며 상담했고,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감정 다스리기도 같이 했다. 그렇게 준혁이의 기분이 좋아지면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호기심을 유발했다. 그중 준혁이 마음을 가장 잘 빗댄 내용이 담긴 그림책이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준혁이 마음과 할머니 마음 까지 열 수 있는 그림책이어서 다행이었다.     


『은지와 푹신이』 하야시 아키코 글, 그림

은지는 태어날 때부터 푹신이라는 예쁜 아기여우 인형과 함께 자랐다. 잠잘 때도 함께였고 화장실 갈 때도 함께였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예쁜 아기여우 인형은 팔도 떨어지고 꼬리도 터졌다. 하지만 떨어진 팔과 터진 다리, 꼬리 등은 꿰매고 붙이면서 어린 시절 동안 오래 함께했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 집에 갈 때도 은지는 푹신이와 함께 갔다. 그렇게 먼 거리를 은지가 갈 수 있었던 건 푹신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실과 바늘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없어서는 안 되는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은지와 푹신이가 기차여행을 했다. 푹신이는 간이역에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온다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된 은지는 푹신이를 찾아 나섰다. 푹신이는 급하게 올라타느라 닫히는 문에 꼬리가 끼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푹신이 곁에 은지는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웃었다. 할머지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커다란 개가 이들을 위협했다. 푹신이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은지를 구했고 모래언덕에 파묻혔다. 커다란 개가 물어뜯어 망가진 푹신이를 찾아내어 등에 업고 어둑해질 무렵에 간신히 할머니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은지와 푹신이를 꼭 안아주었고, 망가진 푹신이 다리와 여기저기를 정성스럽게 기워주셨다. 함께 목욕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 낡고 헤진 아기 여우 푹신이는 다시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하고 예뻐졌다.  

    

준혁이는 얼마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노는 토요일마다 엄마 집에 가서 놀다가 온다. 준혁이가 엄마한테 가서 자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고, 평소 말도 못 꺼내게 했던 할머니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날 오전에 엄마가 와서 준혁이를 데리고 갔고, 가끔은 일요일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할머니는 준혁이가 아침마다 일어나지 않겠다고, 학교 안 가겠다고 떼썼는데 그것도 잠잠해졌고, 무엇보다 이불 모서리를 빠는 행동이 줄어들어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준혁이 자신이 이불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지켜봐달라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준혁이 행동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할머니가 마음대로 버리거나 결정하지 말기를 단단히 약속받았다.     


아이에게 방을 마련해주는 시기가 생긴다. 보통은 초등학교 입학, 고학년으로 올라갈 때다. 이때 부모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가 있다. 아이의 인형이나 소품, 책 등을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활용 센터나 이웃들에게, 또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다. 물론 버릴 수는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모두 모아두어서도 안 된다. 부모는 이전에 아이가 사용했던 물건을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 옷이야 작아서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가 아직 애틋해 하는 물건들이 있는데도 부모가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없애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방이 좁거나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또는 학년이 올라갔으니 필요 없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의견을 묻기도 전에 물건을 없애고 만다. 아이도 자신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한두 개 정도는 아이와 합의를 봐서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게 하는 것도 좋다.      


여기서 말하는 물건에는 책도 포함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을 의외로 오래 기억한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중학생 여자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는데, 안 좋아진 결정적인 사건이 아이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아이의 책을 엄마가 모두 버려버린 일이 있었다. 엄마가 버린 책에는 가장 친하나 친구가 전학가기 전에 친구가 가장 아낀 그림책을 선물로 주고받았던 것이었다. 이 일로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갈까 봐 걱정하고, 친구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엄마를 못마땅하면서 상담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처럼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 성장했다고 해서 어릴 적 기억과 추억이 담긴 물건을 상의하지 않고 버리는 건 조심해야 한다. 정 버리고 싶고 정리하고 싶다면 그전에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또 아이가 스스로 처리하기 전까지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아이가 정서적 안정될 때까지 상실감을 주지 않도록 서로 이해하고 조율하는 사이에 아이는 부쩍 자란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분들, 상담현장에 계시는 분들께 도움되면 좋겠습니다. 빨초드고 덮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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