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은 나지막한 한옥 담벼락에 사계절이 예쁜 곳이기도 하고, 나지막한 한옥 담벼락을 지나면 언제든, 누구든 찾아와 쉴 수 있는 놀이터가 있다. 마치 그 누구처럼.
봄이면 봄이어서 좋고, 여름이면 여름이어서 좋고, 가을이면 가을이어서 좋고, 그리고 겨울이면 겨울이어서 좋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짝사랑.
딱! 한 달 전이다.
3월 18일 노무현재단 홍보콘텐츠에서 주관한 ‘지금, 여기 노무현’ 특별기획 영상에 출현할 시민 100명 모집에 믿기지 않는 100인 안에 들어서 촬영했던 그날.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떨리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3층 옥상에서 저 멀리 바라보았다. 날이 어찌나 맑고 화창하던지 봉하 마을까지 보일 듯했다. 1층을 내려다보았다. 노랑 바람개비가 가득하다. 그리움이 더 물씬 안겼다. 생각지도 못한 무료 커피 쿠폰으로 평소 즐겨 마시는 라테를 한 잔 들었다. 그리고 시민을 친구처럼, 국민을 자기처럼 대하신 편한 얼굴을 사진으로 보며 라테 한 모금.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마음 하나’로 뭉친 우리 100명은 화면에 뜨는 질문에 ‘솔직한 자기고백’의 퀴즈에 답을 하러 오르내리는 시간이 장장 3시간이었다. 그리고 추가 질문에 대한 인터뷰로 이어졌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무엇 하나 어렵지 않았다. 질문을 받으면 다 내 이야기 같았고, 우리 인생을 담은 질문이었다. 진실 고백 같은 시간이라 웃다가 울다가 보낸 시간.
안국동에 갈 때마다, 노랑 바람개비를 볼 때마다, 아니 어디를 갈 때마다, 특히 이맘때, 나는 <민들레는 민들레> 그림책이 떠오른다. 볕 좋은 곳 어디든, 갈라진 틈과 허물어진 담벼락 밑에서도 흙과 바람이 있는 어느 곳이든 고개만 들고 고개를 내리기만 해도 보이는 민들레.
틈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며 ‘나 여기 살아 숨 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매일, 매 순간 내 마음의 작은 외침.
"이 시적인 그림책은, 씨앗에서부터 바람에 흩어져 날리기까지 민들레의 한 생애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여백을 잘 살린 섬세한 수채화와 최소한으로 절제된 간결한 글은, 도시에 사는 한 식물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힘주어 말함으로써, 작고 약한 생명들이 삭막한 환경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평범한 것들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015 볼로냐 라가치상 심사평-
내가 이 책을 볼 때마다 그분을 떠올리는 이유와도 같다. 긴 말도 필요 없다.
평범한 일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하루를 위해, 다음 생을 위해 민들레 홀씨처럼 자기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부터 한 달하고도 5일 뒷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이다. 올해로 벌써 14주년이다. 민들레처럼 우리 곁에서 언제든 살아 계시니까 이제 그만 슬플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