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항 Michel Rein
파리의 갤러리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기준으로 갤러리를 선정하냐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럼 나는 갤러리의 역사, 갤러리스트, 공간, 소속 작가, 전시와 작품, 아트페어, 그 외 갤러리가 하는 다른 활동 등 많은 측면을 고려한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갤러리를 최대한 다각도에서 보는 이유는 파리에 존재한다는 1,500여 개의 수많은 갤러리 중 어느 정도 객관적 수준을 갖춘 갤러리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글을 보고 방문한 특정 갤러리가 취향에 맞지 않을 수는 있어도 수준이 낮아 실망하지는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이 좋은 갤러리를 가려내는 데 충분할까? 좋은 갤러리란 무엇일까? 매일같이 갤러리를 다니며 소개할만한 갤러리인지 아닌지를 가리다 보면 이런 의문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은 갤러리를 알려달라는 조언을 구한다. 누군가가 좋다고 느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어쩌면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는 작가에게 추천을 받아 미셸 항에 갔다. 미셸 항은 작은 간판과 두꺼운 철문으로 벌써 여러 차례 지나다녔던 마레의 튀렌느 거리(Turenne)에 숨어있었다. 철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가라앉은 회색빛 청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뜻밖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2층으로 된 건물이지만 한 공간은 아예 층이 나뉘지 않고 높이 개방돼 있었다. 천장의 투명한 유리 패널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따뜻하고 환한 인상을 주었다. 건물 곳곳의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결이 드러나는 나무 구조물들과 자연스러운 갈색을 유지하고 있는 2층으로 가는 나무계단은 갤러리의 전형적인 하얀 벽과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도 독특했다. 1989년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에드가 사린(Edgar Sarin)의 개인전 《새로운 작품들 Nouvelles oeuvres》(2024.05.23.-07.20.)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작가였다. 독특한 모양과 질감의 오브제들과 그 위로 얹힌 빛을 발산하는 낮은 채도의 색들, 유아적이면서도 어딘가 격정적인 형상들. 마치 어린아이가 만들어놓은 방공호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전시의 주제도 작품의 개념도 몰랐지만, 순식간에 이미지와 공간이 주는 시각적 힘에 빠져들었다.
천천히 작품을 둘러본 후 전시 텍스트와 도록을 들춰보았다. 에드가 사린은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독일의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에게 깊이 영향을 받았다. 보이스와 같이 사린은 다양한 사회ㆍ정치적 맥락을 작품에 반영하고, 참나무, 점토, 돌, 밀랍과 같은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재료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고대적, 역사적 개념과 상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고대 이집트 건축과 중세 회화의 기법 등 다양한 전통적 기법을 차용한다. 쉽지는 않은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예술적 층위가 복잡해서 의미를 궁리해 보아야 하고, 집에 걸기 좋은 회화 작업과도 거리가 먼 작업을 하는 작가의 개인전을 여는 갤러리가 용기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복잡한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도 작품에서는 원시적 힘이 느껴졌고, 다양한 매체로 된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이어져 갤러리의 자신감의 원천을 짐작할 수 있었다.
2주 후 근처를 걷다가 불현듯 다시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디스플레이가 상당수 바뀌어 있었다. 1층 중앙에 놓여있던 조각들이 다른 조각으로 바뀌고 2층에 걸려있는 회화 작품들도 다른 작품으로 교체돼 있었다. 전시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라는 갤러리스트의 말에 전시 디스플레이가 바뀐 이유를 물었다. “좋은 작품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요.”
돌아온 단순한 대답에 웃다가 문득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가 비싼 작품을 얼마나 많이 파는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아트페어에 참여하는지, 유명한 작가를 데리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근저에는 좋은 예술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작품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열정적인 작가와 그런 작가를 지지하고 같이 고민하는 갤러리라면 좋은 갤러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삼스레 갤러리 출입구에 작품처럼 진열된 작가의 도록과 갤러리 곳곳에 놓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 말미에 디스플레이를 거의 다시 할 정도로 욕심이 있으면서도, 막상 작품 하나하나에는 충분한 여백을 준 욕심을 걷어낸 배치도 보였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그 작품이 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미셸 항 갤러리는 에드가 사린 작가의 작품에 충분한 조명을 주고 있었다. 이럴 때 갤러리의 안목과 활동에 믿음이 생긴다. 갤러리의 다른 작가들이 궁금해지고 다음 전시를 기다리게 된다.
흔히 갤러리는 굉장히 상업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미술계에서도 갤러리와 아트페어 같은 상업적 영역과 미술관과 비엔날레 같은 비상업 영역을 자주 구분 짓는다. 이러한 시각은 갤러리가 더 높은 판매가와 판매량을 위해 운영된다는 분명한 근거에 기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자본의 경계를 뚜렷이 나눌 수 있을까? 상업적인 것을 경계하고 기존의 체계와 상식을 반박하는 작품도 있고, 예술적 의미보다도 작품의 값이 먼저 떠오르는 재테크 수단 같은 작품도 있지만, 사실 다수의 예술은 비상업과 상업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 많은 작가들은 미술관에서도 전시하고 갤러리에서도 전시한다. 갤러리는 작품을 팔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 전시하기 어려운 신생 작가를 발견하고, 생계를 꾸리기 힘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셸 항 갤러리의 소속 작가들은 에드가 사린처럼 상업과 비상업의 중간에 있는 작가들이다. 비디오를 매체로 규범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 속 자유에 대해 탐구하는 벨기에의 작가 아리안 로즈(Ariane Loze)의 약력은 미술관 전시가 다수를 이루며, 회화, 조각, 설치를 통해 언어를 탐구하는 프랑스계 스위스 작가 아그네스 투르나우어(Agnes Thurnauer) 또한 퐁피두 센터 메츠, 마티스 미술관, LaM 미술관 등 여러 비영리기관에서 꾸준히 전시한다. 작가들은 상업공간과 비상업공간을 오가며 전시에 따라 새로운 맥락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갤러리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미술계의 다른 주체들과 공생하는 것이다.
좋은 갤러리란 무엇일까. 결국 답은 늘 단순하다. 좋은 작품과 전시를 보여주는 갤러리가 좋은 갤러리다. 유명 작가와 함께 일하지 못해도, 공간이 작더라도, 얼마나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숙고하는 갤러리라면 충분히 흥미롭다.
미셸 항 Michel Rein
42 Rue de Turenne 75003 Paris
화-토 11:00-19:00
T +33 1 42 72 68 13
@michel_rein
https://michelrein.com
galerie@michelrein.com
인스타그램 @galleryinparis @borongram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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