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카 갤러리 Polka Galerie
놀랄 만큼 눈이 부시게 청명한 하늘, 반짝거리는 길가의 잎사귀, 저녁을 한참 넘긴 시간에도 한낮처럼 활기찬 도시의 사람들. 스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파리의 여름이 찾아왔다. 겨우내 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게 했던 비 내리는 회색 도시는 여름 햇살 아래 조각 빛을 띠며 생명력을 내뿜는다. 그 속에서 난 여태껏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길가의 나무, 빈티지 옷가게 안의 사람들, 심지어 오래된 지하철 승강장 벽면의 광고판에도 마음을 뺏겨 한순간도 카메라를 끄지 못하고 있다.
사진에 관심이 생겼다.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늘 좋아했지만, 모두가 사진에 진심인 시대에 살아서 그런가? 특별히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여겼던 적은 없었다. 전시를 볼 때도 사진은 그저 작품을 담는 방식 중 하나였을 뿐, 사진 매체 자체를 구별해 짚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프레임을 정하고, 촬영 버튼을 눌러 순간을 포착하고, 결과물을 천천히 재가공해서 원하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이 부쩍 즐거워졌다.
마침 프랑스는 최초의 사진이 탄생한 나라다. 약 200년 전인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는 최초의 영구적 사진인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를 발명했다. 다만 핼리오그래피는 노출 시간이 길고 해상도가 매우 낮았는데, 1839년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여 최초로 상업적 실현 가능성을 인정받은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를 발명했다. 사진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단지 현실을 복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의 예술성을 두고 끊이지 않는 논란이 일었는데, 그때 귀스타브 르 그레(Gustave Le Gray), 펠릭스 나다르(Félix Nadar)와 같은 프랑스 사진작가들이 다양한 기술적 실험을 통해 사진의 예술성을 보여주며 현대사진 예술의 길을 터주었다.
이렇게 사진이 탄생하고 발전해 온 프랑스에서, 폴카(Polka)는 사진을 전문으로 탐구하고 선보이는 기관이다. 폴카는 폴카 갤러리, 폴카 팩토리, 폴카 매거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폴카 갤러리는 2007년 아델리 드 이파네마(Adélie de Ipanema)와 에두아르드 제네스타(Edouard Genestar) 남매에 의해 세워졌다. 그 몇 달 후 남매는 아버지 알랭 제네스타(Alain Genestar), 어머니 브리짓 제네스타(Brigitte Genestar)와 함께 폴카 매거진을 창간했고, 2019년에는 전시와 더불어 프린트, 사진 서적 등을 판매하는 공간인 폴카 팩토리를 시작했다. 작품과 전시, 책, 잡지까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현대사진에 대한 담론을 생성하는 흥미로운 곳이다.
폴카는 보주 광장(Place des Voges)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해 있는데, 셍질르 거리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폴카 팩토리다. 폴카 팩토리는 베이지색 석재건물 위에 얹힌 현대적인 진회색 프레임과 통유리로 된 파사드 그리고 창 위로 커다랗게 프린트된 흑백사진까지 세련된 외관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닥에 쌓인 책들과 사진 프린트들이 꽂힌 진열장, 걸려있는 프린트 티셔츠들 그리고 슬쩍 보이는 전시 작품들까지 한마디로 힙하달까.
내부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오른쪽 공간은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이고 왼쪽 공간은 사진 서적을 파는 서점이자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살 수 있는 상점이다. 하지만 그 구분이 명확하다기보다는 전시 작품 옆에 옷과 서적들이 놓여 있고, 서점의 벽면에는 작품들이 걸려있는 등 경계가 섞여 들어 독특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공간이지만 공간 구석구석이 알차게 채워져 있어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폴카 팩토리를 방문했을 때는 로랑스 비아기(Laurence Biaggi)의 개인전 《단순함에 대한 찬사 Éloge de la simplicité》(2024.05.31.-07.13.)와 클레어 궈리(Claire Guarry)의 개인전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2024.05.31.-07.13.)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연한 파스텔 색조로 다양한 곳의 수평선을 담아낸 비아기의 풍경 사진과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사람들을 빈티지한 색감으로 담아낸 궈리의 사진이 파리와 함께 여름이 찾아왔음을 선언하는 듯했다.
작품을 감상하다 프린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마치 오래된 LP샵에 온 듯 오픈 탑 수납함에 사진 프린트들이 작가별로 꽂혀있었다. 90유로부터 600유로까지, 작가와 크기별로 가격이 다른 프린트들은 저렴하지는 않지만 욕심부려 볼 만한 가격이라 한참 프린트들을 살펴보았다. 한쪽 손으로 프린트를 잡고 다른 쪽 손끝으로 뒤편의 프린트들을 넘겨보는 과정이 퍽 재미있었다. 옆의 프랑스 할아버지는 무슨 사진을 사시나, 슬쩍 훔쳐보고 자리를 옮기시면 나도 한번 들춰보기도 했다. 다양한 사진 서적들도 구경했다. 그러다 보니 진열장 한쪽에 아카이빙 된 역대 폴카 매거진들을 마주쳤다.
폴카에서 발행하는 사진 전문 계간지인 폴카 매거진은 다양한 현대사진 작가들을 소개한다. 이중 폴카 갤러리와 폴카 팩토리에서 하는 전시의 작품들과 평문이 큰 분량을 차지하는데, 갤러리와 잡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재미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와 책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접하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다. 나 또한 내가 본 전시들이 담긴 2024년 여름호를 한 권 구매했다. 작은 공간의 한계로 알 수 없었던 작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나와 있었다. 로랑스 비아기가 원래 치과의사로 오랫동안 일하다 57세의 나이에서야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던가,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에 영향을 받았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보니 작업이 더 흥미로워 보였다. 클레어 궈리의 사진 또한 뜨거운 하늘 아래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어린 소년이 작가의 아이이며, 그녀의 사진은 캘리포니아에서의 가족의 시간을 기록한 일종의 가족 앨범이라는 걸 읽으니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책을 읽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 폴카 팩토리의 안쪽 문을 통해 나갔다. 문밖에 이어진 작은 안뜰을 통과한 후 폴카 갤러리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단지 안쪽의 길을 따라 걸으니 숨겨진 폴카 갤러리가 나왔다. 단순한 조립식 건물의 외관이었지만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이 더해져 싱그러웠다.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커다란 내부가 나왔다. 따뜻한 나무 바닥과 흰 벽, 존재감 있게 드러난 청록색 빛의 짙은 철근 구조물들이 친근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폴카 갤러리에서도 두 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는데, 1층에서 열린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작곡가인 니콜라스 꼬멍(Nicolas Comment)의 《파란 영화 Blue Movie》(2024.05.31.-09.07.)를 먼저 보았다. 코로나-19로 봉쇄된 기간 동안 럭셔리 휴양지로 유명한 남프랑스의 생트포레(Saint-Tropez)에서 지냈던 작가의 시간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봉쇄된 기간의 적막함과 쓸쓸함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파란 지중해의 풍경과 인물들을 담은 사진들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저명한 프랑스의 사진작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 1894-1986)의 개인전인 《신성한 스포츠 Divinement sport》(2024.05.31.-09.07.)가 열리고 있었다. 파리 올림픽을 맞아 여러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올림픽, 스포츠와 관련된 전시 중 하나로 보였다. 귀족 신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그의 사진을 본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에 의해 69세의 나이로 화려하게 미술계에 데뷔한 자크 앙리 라르티그(1894~1986). 라르티크는 가족들의 일상과 여행, 여가 활동 등을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비행, 레이싱, 다이빙, 스케이팅 등 당시 상류층 사회의 사람들만 즐길 수 있었던 스포츠의 장면들은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경제적, 문화적, 과학적으로 발전하며 풍요로웠던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생활방식을 보여준다.
스피드를 즐기는 레이서들, 수영복을 입고 요트에 누워있는 사람들, 높이 뛰기를 넘는 근육질의 남자, 수술이 잔뜩 달린 모자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경기를 지켜보는 여인들. 그 시기의 생생함과 여유로움이 뿜어져 나오는 흑백 사진들을 보며 나는 그 시기만의 낭만에 푹 빠져버렸다. 같이 전시를 보러 왔던 친구와 전시장 가운데 의자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며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향한 향수를 느꼈다. 1924년, 정확히 100년 전 열렸던 파리 올림픽 즈음 찍혔던 사진들을 다시 파리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바라보는 감각이 특별했다. 이런 게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사진은 겪어보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던 순간으로 나를 쑥 보내버린다. 그럼 나는 작가가 바라보았던 그 느낌 그대로 이미지 뒤편으로 가 시공간을 여행한다.
갤러리를 나와 다시 폴카 팩토리로 돌아가서 나는 라르티크의 작은 엽서를 하나 골랐다. 100년 후 다시 열리는 올림픽과 아름다운 파리의 여름을 생각하면서.
폴카 갤러리 Polka Galerie
12 Rue Saint-Gilles 75003 Paris
화-토 11:00-19:00
T +33 1 76 21 41 31
@polkagalerie
https://www.polkagalerie.com
contact@polkagalerie.com
인스타그램 @galleryinparis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