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Jan 24. 2021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새로운 시작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파문 없는 일상에 새 물결이 찾아오길 바며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썼건만 막상 찾아온 변화 반기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휩쓸려갔다. 처음으로 주 5일 일하는 정식 직장을 갖게 되었고 이를 위해 단 한 번도 살아볼 거라 상상도 못 해본 도시에 이사를 왔다. 이 곳에 발을 들인 지 겨우 일주일을 막 넘긴 지금 나는 중심을 잡으려 바삐 균형 잡기를 하고 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도통 남쪽 지역이랑은 인연이 없던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이었다. 나는 당시 일하던 갤러리의 소장을 미술관 소장품으로 반입하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이 곳, 창원에 처음 왔었다. 계약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해있던 나는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러웠다. 힘들이지 말고 택시를 타라는 갤러리 디렉터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무슨 고집이었던지 잔뜩 젖어있던 바지 밑단을 이끌고 꾸역꾸역 버스에 올랐다. 품 안에 있던 서류들이 젖을까 손에 힘을 더 꽉 준 채로. 버스는 만원이었다. 비가 와서 그랬을까. 성을 내며 출발하는 듯한 버스의 움직임에 속이 울렁거렸다. 원체 멀미를 잘하는 터라 서울에서도 늘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타던 나였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이 올라오는 듯했다.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절대 이 곳에서는 못 살겠다. 그때 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도시의 미술관에 지원서를 냈을 때도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나는 그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도시에 대한 어떤 부정적 기억도 없었고 순전히 비 오는 날 버스의 험한 운전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전화 너머로 들리는 합격 하셨으니 서류를 갖고 며칠 몇 시에 미술관으로 오라는 소리를 들으니 비오는 날 버스에서 하던 그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어떻게 그 여름날 갔던 많은 도시들 중 그 생각을 했던 딱 하나의 도시에 살게 될 수가 있을까. 신기했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살게 된 이 도시는 낮은 집들과 넓고 직선인 도로있는 곳이다. 가끔은 정말 친절하게 때로는 세게도 들리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적하면서도 따뜻한 공기가 내려앉은 곳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 곳이 퍽이나 마음에 든다. 장대비가 그치고 햇살 속에 있는 이 도시 따뜻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있고 싶었던 내게 갑자기 찾아온 독립이라는 시간이 덜 외롭게 느껴질 만큼. 그래서 나는 아직 새로운 집에, 새로운 직장에,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곳에 오게 된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이 곳에서는 못 살겠다고 느꼈던 단 하나의 도시가 행운이 되다니. 역시,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첫인상은 안 좋았지만,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날 안 좋게 생각 말고 품어줘. 이 도시에게 슬쩍 부탁해본다. 지금의 좋은 느낌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실이 되기를 바라도 본다. 인생의 새 물결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길. 열심히 떠밀려가봐야지, 다짐한다.

새로운 시작의 시간에 서서. 






이번 주 글은 사실 지난주 업로드가 없었던 것에 대한 변명입니다. ㅎㅎ 갑작스러운 이사에 새로운 직장에 정신없는 날들이었어요. 실은 아직도 그렇지만 브런치에 글을 못 올린 게 마음에 계속 걸려 짬을 내어 일기 같은 글을 올려봅니다.


미술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창원의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