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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Sep 23. 2023

무릉계곡에서 신선놀음?  

감탄은 절로 몸은 골로, 초보 등산러 두타산 산행기 

"(서울에서) 두타산까지 4시간...? 이게 맞나요? 막히지도 않는 아침인데?"

"떠나기 직전까지도 아무도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을 해보지 않았다니.." 

"아 맞다. 이렇게 오래 걸려서 예전에 한 번 가려다가 안 갔던 게, 지금 생각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떠날 때부터 난리였다. 분명 한 달 전에 결정했으나, 아는 거라곤 두타산이라는 낯선 이름뿐이었다. 그냥 떠나면 충분하다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 일행 중 그 누구도 두타산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왜 4시간이나 걸리냐며 껄껄거리며 웃으며 출발하면 그뿐이었다. 


꼭 두타산을 가봐야지 했던 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림도 없을) 지리산 종주를 꿈꿨으나, 산장 예약 기간을 놓치면서 두타산이란 단일 후보가 언급되었다. 후배가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프랑스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었냐는 질문에 두타산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럼 대충 거길 한 번 가볼까, 그러지 뭐. 가자, 두타산. 


무릉계곡 주차장, 목적지에 도착한 건 오후 1시였다. 산이라고는 관악산과 인왕산 정도만 깔짝 거려본 나, 최근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던 J, 그리고 홀로 토끼처럼 산을 잘 타는 S. 아무래도 시간이 정상까지는 무리겠어 정도만 생각했으나, 정상이 뭐야... 초보에게는 전진도 힘든 오르막길이 극초반부터 우리를 덮칠 줄이야.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리 힘든 것도 아닌데, 내가 '산'이 무엇인지 잠시 잊고 있었던 탓이기도 했다. 산이니까, 당연히 오르막이 있지... 


베틀 바위, 그 절경 

산에 오기로 한 걸 후회하고도 남을 시점에 베틀바위에 도착했다. 이게 왠 일이야, 헐떡이던 숨은 베틀바위의 절경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여기, 이 기이한 바위 앞에 있음에 행복했다. 두타산을 한국의 장가계라고 한다더니, 기암절벽의 위세와 그 절벽에서 암벽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압도되었다. 내 숨도, 바위 절벽도 거칠어서 더 좋았다. 여긴, 꼭 봐야 해, 정말. 



산의 능선, 그 신비로운 선 안으로 

베틀바위를 넘고 나니 걸음이 한껏 가벼워졌고, 걸을 때마다 마주하는 산의 능선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자연이 만든 입체적인 선, 나는 원근감을 만들면서 겹쳐있는 능선을 볼 때마다 경이로워졌다.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는 산맥, 바위와 나무, 하늘과 구름. 뭐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여름의 청량한 초록빛은 말해 뭐 해. 



드러눕고 싶은 바위 계곡 

해가 질까 빠르게 걷다가 계곡을 만났다. 두타산 경로에는 여러 계곡을 만나게 되는 듯한데, 우리는 중간에 주차장으로 방향으로 틀면서 두타 산성 즈음에서 잠시 멈췄다. 돌에 걸터앉아 쉬다가 물에 손을 담갔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돌에 드러누워 신선놀음하면 좋을 텐데. 기암절벽, 산의 능선 트레킹, 게다가 계곡까지 어쩜 이리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대. 설레게. 


바쁘게 하산하던 길, 우리와 반대로 올라가는 한 그룹의 등산객을 만났다. 베틀 바위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말에  "좀 많이 남았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시 내려가겠다고 결심한 일부 인원을 보면서, 아차, "조금만 더 가면 돼요"라고 했어야 했는지 아리송했다. 얼마나 험한 길이 남아 있는지 알고 가는 것과,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르는 산행 중 어느 것이 나은 걸까. 모르고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걸까. 


산과 계곡 사이에서 아름다웠던 삼화사를 지나, 해가 지기 전 무릉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짧은 숨을 내쉬며 그나마 있는 근육을 짜낸 나와 J도, 빠르게 가고 싶은데 발맞추느라 뒤돌아 보는 게 일이었던 S도 모두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4시간 남짓 짧지만 강렬했다. 평소 근육을 키우지 않았던 죄로 나는 이틀 뒤까지 허벅지 통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며칠 후 다시 만난 후배가 해맑게 묻는다. 

"우리 그날 엄청 재미있지 않았어요?" 

"맞아, 너무 좋았지?" 


무릉계곡의 신선놀음은 단지 멈춘 휴식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켜켜이 이어지는 산의 능선, 숨을 돌리고 땀을 식히던 순간, 졸졸 흐르던 바위 계곡에서의 휴식. 그 모든 순간들과 함께 하는 걸음이 모두 신선놀음이었음을 돌아와서야 깨닫는다. 


좋았군, 이번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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