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무턱대는 뜨거움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내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맹세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충동적인 선택지였다. 내게 일었던 이 예상치 못한 파문은 지인이 만든 독립 단편 영화 한 편에서 출발했다.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들어진 그 영화를 보고는 여러 생각이 번뜩였다. 부러움이었다. 그 풋풋한 냄새와 무턱대는 뜨거움이 욕심났다. 그 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반짝이는 긴 글 같았다. 아니, 짧은 글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순간 같았다.
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벽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남들에게는 대단한 무언가 있으리라 멀게 가늠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가깝게 반추하며 한껏 움츠러들곤 했다. 그 말은 곧 그 반대와도 통했다. 난 매우 특별한 존재였고 평평한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날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 거리감은 나를 무엇으로부터든 좌절시켰다.
유명 배우와 화려한 무대 없이도 영화가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만들고서 내가 영화라고, 혹은 그 무어라고 부르면 그만인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어졌다. 스물 다섯의 나를 온통 쏟아 부어보고 싶었다. 운명적인 끌림이었다. 무엇도 될 수 없는 ‘좌절’ 대신, 무엇이어도 상관 없는 ‘영화’라는 새로운 경험을 내게 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렇게 영화 제작 워크숍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 때 나는 교생 실습으로, 안 그래도 정신이 반쯤 팔려 나간 상태였다. 워크숍 기간 동안 욱여넣은 일정들과 난생 처음 디뎌보는 질문들은 나를 꽤나 괴롭게 했다. 누군가는 그거 해서 뭐하냐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 무렵 문득 청춘은 상태라는 생각을 했다. 손익을 헤아리지 않고 그저 원하는 방향으로 무턱대고 나아가는 상태. 2022년 여름, 영화를 만들었던 기억은 나를 영원히 청춘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