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2)

프리 프로덕션: 해야만 했던 이야기

by 백고래

*

다 만들어진 내 영화를 돌이켜보고 있으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런데 잔뜩 익은 표정 사이로 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그라드는데 짠해서 웃기고, 기어이 만들고야만 내가 신기해서 웃는다. 그러면서 이게 내가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구나,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상관의 기운이 가득한 사주,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나는 참 재밌는 팔자를 타고났다.


미국의 뮤지컬 드라마 <Glee>에 ‘Colorblind’라는 노래가 나온다. 강렬한 보컬을 뽐내는 머세이디스가 극 중 가수로 데뷔하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Glee> 오리지널 곡이다. 색맹과 사랑을 연결 지은 이 노래의 가사 말은 남모를 사랑으로 수선스러운 시절을 나고 있던 내게 큰 파동을 일으켰다. 이론적으로는(?) 여자를 좋아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남자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어쩌면 색맹과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다는 특별함, 때론 비참함. 내가 느끼는 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자기검열, 수도 없이 헤집느라 짓무른 속내. 그 모든 것을 풀어내는 조망이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첫 번째 위로였다. 갈피 잃고 외롭게 침잠하던 나를 붙잡아준 첫 번째 말이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처럼 이끌려 잡게 된 펜 대, 새하얀 시나리오 첫 페이지 앞에 난 그 첫 번째 말을 떠올렸다. 구질구질하고 지겨운 퀴어 클리셰일지라도, 난 이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걸 꺼내서 그려내지 않으면, 색맹으로 시작되는 이 감정은 영원히 어딘가에 봉인될 것은 느낌. 이따금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희미한 일렁임 정도로 까마득히 종 칠 것이라는 느낌 말이다.


정말 이 소재가 최선인지 의문을 던지는 피드백들이 워크숍 내내 이어졌다. 나 또한 절로 수긍했다. 성적 지향성 앞에 위축되고, 혼란을 앓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진부했다. 자기 세상에 갇혀버린 자기 연민의 이야기는 거추장스러웠다. 그게 색깔이라는 직관적인 서사로 포장되는 점까지 더하면 이보다 더 촌스러운 이야기가 없었다. 이딴 이야기 치워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왜 괜찮은 척해?”


그러게, 나는 참 괜찮은 척을 잘 한다. 무관심한 듯 쿨하게 지나간다, 사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서. 안 괜찮은 걸 인정하고 마주하면 진짜 깊숙한 땅 끝까지 추락해버릴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린다.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이 생각의 패턴은 곧 내가 나를 혐오해온 유구한 방식이었다. 안 괜찮은데 왜 괜찮은 척, 쿨한 척일까. 성 소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자조하고 만다. 고독하게 앓는 마음들을 뻔한 클리셰라며 구석탱이로 밀어 버리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누명을 씌워 저 멀리 내던져버린다. 쉽게 말해 쿨병에 걸린다. 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수 만 갈래의 고민과 감정들을 중2병 탓하듯 우습게 넘겨버린다. 쿨병이라도 그런대로 먹혀들어 행복하면 다행이지, 그냥 고독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쪽도 한 가득이다. 이 놈의 세상이 이래 놓으니 모 아니면 도, 별 수가 없다. 근데 과연 그 수많은 고민과 감정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나. 세상과 부대끼면서 생겨나는 잡음은 끊이질 않고, 세상이 무심코 들이미는 벽은 일순간 까마득한 끝으로 우리를 주저 앉힌다.


울고 있다고 답이 나오지 않지만 웃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어야 하는데, 이건 사실 누구에게든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성 소수자들 입장에서 매 순간 왜곡되지 않은 감정을 마주하고 표현하는 일은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안 괜찮은데 왜 괜찮은 척, 쿨한 척일까. 무너질까봐 두렵나보다. 나의 마음은 막아둔 댐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넘칠듯 쏟아지는 고민과 불안과 울분이 여전히 그대로 있나보다.


그래서 난 꼭 이 이야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 때 그냥 힘들다고 말하면, 그 말을 안아주면서 ‘참 힘들겠다’ 알아주면 좋았을텐데. 왜 그렇게 나는 내 안에 나를 가두고 미워했을까. 지난 날 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딘가에서 숨죽여 두려워하는 나를 양지로 끌어올려 꼭 안아주고 싶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를 사랑하는 네가 여기 있어. 용기를 내서 그 언젠가 한껏 웅크린 나에게 다가가보고 싶었다. 처박아두는 일은 그만두기로.





*

나는 벗어던져야 할 것이 참 많았다. 내가 영화를 통해 해야만 했던 구질구질한 자기연민의 퀴어 이야기는 내가 벗어던져야 할 것들 중 고작 하나였다.

처음 느끼는 사랑 앞에 두려움이 앞섰던 나, 온몸을 덜덜 떨면서 데이팅앱으로 어렵게 남자들을 만나던 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 행복했던 나, 그 사랑 앞에 무기력했던 나, 시간이 흘러 제법 단단해졌다고 믿었던 나, 그런데 사실은 그 처음의 기억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게된 나. 깊은 고독의 밑바닥으로 하루하루 가라앉던 그 시절의 언저리를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난 아직도 벗어던져야할 것이 참 많았다.

사람이든 기억이든 물건이든, 난 그것과의 관계에서 붙잡는 쪽에 주로 서곤했다. 숱한 붙잡음의 끝에서 내가 알게 된 건 제 아무리 용을쓰며 붙잡아도 붙잡히지 않을 것은 절대 붙잡히지 않는다는 사실과, 못내 남은 미련들은 힘이 아주 세서 나를 단단히 붙들고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붙잡고 있던게 숨죽여 맺혀있던 어린 날의 울음인지, 끝내 안기지 못한 너의 품이었는지. 뭐였는지.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된듯이 가슴을 쳤다. 피어오르는 감정을 홀로 집어삼키곤 숨막히게 외로워했다. 숨을 쉬기 위해 난 아직도 벗어던져야할 것이 참 많았다.

<좋아하는 색깔>에는 스물 다섯살의 내가 해야만 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이야기에 관심과 손길을 보태준 소중한 이들의 마음도 함께 깃들어 있다. 스물 다섯살의 나를 만나고 싶을 때 나는 이 영화를 꺼내본다. 늘 그늘져있던 내 마음 한 구석, 지독한 응달에 빛을 한껏 내리쬈던 날을 추억한다. 기운찬 웃음을 머금고 또 다른 내일의 나를 만나러 발걸음을 뗀다.


keyword
이전 01화<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