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 제작기 (3)

프리 프로덕션: 내손퀴

by 백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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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2년 5월의 초여름, <내 손으로 만든 퀴어영화 2022> 일명 ‘내손퀴’(*내가 지은 줄임말 별칭)가 긴 여정의 닻을 올렸다. 그 때 나는 열정 혹은 불안으로 새하얗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교직 21학점을 넣어놓고, 장애학생 도우미로 3학점 수업에 참여 중이었으며,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한다고 비올라를 지고 뛰어다니는 날도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매주 보컬 학원을 다녔고, 매주 심리 상담도 받았다. 교내 인권위원회 활동도 겸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영화제작 워크숍(내손퀴)까지 지원해 합격했다. 더군다나 코앞에 교생 실습도 앞두고 있었다. 바로 직전 학기에 임기를 끝낸 학보사 기자 활동의 빈자리가 허전해서였을까. 3년이나 지난 이별의 여파에서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어서였을까. 나를 중력처럼 강하게 붙들어줄 무언가를 난 자꾸만 찾아 헤맸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내손퀴 지원서를 제출하던 입력창이 생생히 떠오른다. 이미 큰 일을 저질렀다는 걸 직감한 그 순간 이후, 나에겐 할 일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첫 관문은 면접이었다. 꽤나 치열한 경쟁률을 넘어서야 했다. 바쁜 일정을 비집고 잠시 틈을 냈다. 학교 근처 동생의 자취방을 잠시 빌려 비대면 면접을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하던 이름하야 온택트 시대의 한가운데였다. 질문과 대답이 노트북을 통해 건조하게 오고 갔다. 면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좋아하는 영화들을 늘어놓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소개하던 순간이었다. 명확한 것은 없었지만, 나는 <해피투게더> 혹은 <문라이트>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냥 수많은 영화 중에서 하필 주인공이 퀴어인, 그래서 퀴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 그려지는 이야기,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이야기로서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퀴어 영화라는 별개의 분류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퀴어는 성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오히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관계 자체에 또렷이 몰입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충실한 ‘사람 이야기’였다.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를 우리가 ‘사람 영화'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퀴어 영화'라는 이름도 너무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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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손퀴 합격 통보를 받았고, 워크숍의 첫 날을 맞았다. 봄이 무르익고 여름 향기가 나기 시작하던 그 시기 즈음 나는 교생실습에 한창이었다. 다시 매일 등하교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은 특별한 설레임을 불러오기에도 긴장감을 불러오기에도 충분했다. 매일 맞닥뜨리는 학교의 풍경은 10여년 전 나의 학창 시절을 자꾸 소환시켰다. 정체 불명의 불안에 쫓기며 한껏 웅크려있던 학창 시절의 내가 유령처럼 곁을 맴돌았다. 그 유령은 내손퀴 워크숍 기간 내내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첫 수업 날, 지각까지해서 뛰어 들어가는 통에 숨까지 헐떡였던 나는 그 시작이 참 나답다고 생각했다. 정신 없이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열 명 좀 넘는 사람들이 긴 테이블에 둘러 앉아있었다. 영문 모르고 돌아가는 눈빛들이 어색한 파열음을 빚었다. 숨을 고르고 나니 입구에서 출석 체크 하는 사람, 화이트 보드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여한 수강생들을 도와줄 각양각색의 멘토님들이었다. 그 사람들 중 누가 영화사 직원이고 누구는 강사님들이고 하는 건 나중에 아주 나중에 가서야 천천히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프로그램은 멘토님들의 진행으로 시작됐다. 너무 어색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참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앞에 서서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시선이라도 어디 한 점에 고정시킬 수 있어 상당히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멘토님께서 자기 소개를 제안했고, 둘러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몇 개월 전 학보사에 커밍아웃 칼럼을 내놓고, 나름 세상과 맞짱 뜬 이야기를 재잘댔다. 나만의 이야기를 나와 비슷한 사람들 앞에서 입 밖으로 또 꺼내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그곳에서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였다. 퀴어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었기에, 암묵적으로 이 공간은 나의 안전 지대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대로 이 워크숍에서 나를 소개하는 첫 인사가 나의 커밍아웃 칼럼 이야기라는 사실은 꽤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흘러갔다. 내가 내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 그 마음이 커밍아웃 칼럼을 쓰게도 했고, 성 소수자 부모 모임에 대한 기획 기사를 완성하게도 했고, 심리 상담에 오랜 시간 참여하게도 했다. 이번에는 그 마음이 퀴어 단편영화 제작의 동력이 될 차례였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나는 참 내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란 걸 매 순간 깨닫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나는 상관의 기운이 가득한 사주팔자를 타고났다고 한다. 살아온 그림과 딱 포개어지는 사주팔자 풀이에 무릎을 쳤다. 그런 내가 성적 지향으로 고민을 앓던 학창 시절, 얼마나 그 입이 틀어 막혀 고생스러웠을까 새삼 안쓰럽다. 일기를 재밌게 잘 쓴다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의 다정한 칭찬 이래로, 항상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는 그렇게라도 나를 표현하는 끈을 놓지 않고 있었나 보다. 학창 시절 나의 모습을 한 억눌린 유령은 아직도 내 곁을 맴돌고 있다. 그런데 표정은 한결 편해 보인다. 커밍아웃 칼럼을 썼을 때도, 영화를 만들었을 때도, 지금 이렇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에도 유령의 표정은 갈수록 누그러지고 형상은 희미하게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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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워크숍 멤버들은 여러 과제를 수행했다. 각자 자유롭게 여러 이야기를 구성해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기도 하고, 시나리오 전문 작가님들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한 번은 서로 쪽지에 아무런 키워드 몇 개를 쪽지에 적어 뒤섞고, 그 쪽지를 서로 무작위로 골라 자신이 뽑은 키워드를 엮어 이야기를 짜보는 실습을 했었다. 낯선 조합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참신했다. 마라탕과 비올라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난해함이란 틀을 깨는 계기였다. 자고로 이야기란 이래야 한다는 딱딱한 족쇄들을 벗을 수 있었다. 드넓은 상상과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건져내고 엮어내는 작업은 막막하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내면을 계속 매만지며 씻어내리는 치유적 의미도 함께 존재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본격적으로 팀을 나눴다. 영화 감독님들이 멘토가 되어 이야기가 영화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조언과 고민들을 나눠주셨다. 이야기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스태프 구성, 로케이션 탐색, 촬영 장비 운용, 소품 준비, 예산 등 헤아려야 할 항목들이 끝도 없었다. 또한, 텍스트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영상 장면으로 옮겨 표현하는 방법들도 색다른 시각의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팀원들과 짧은 이야기를 짓고, 휴대폰으로 찍어 편집하는 실습을 하면서 촬영 동선 등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영화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장면으로 구현하여 표현하고 담아낼 것인가에 방점이 찍혔다. 실습 영상에서는 배우 역할로도 참여 했는데 연기의 어려움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배우의 고민은 또 다른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저마다의 역할을 맡은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복잡한 고민을 총동원하여 모아낸 어떤 한 순간, 한 장면이 모여 영화가 되는 것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겠구나 어렴풋이 가늠하기 시작했다.


근데 안타깝게도 실습 때 가늠했던 견적은 약과였다. 그 때는 몰랐다. 얼마나 오랫동안 영화에 관련한 무한 로딩에 빠질지. 뭐 하나 됐다 싶으면 다음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샘 솟았다. 빌려야 할 손들은 또 어찌나 그렇게 많은지. 뭐 하나 됐다 싶으면 다음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거저 얻어지는 것 하나 없이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나를 쏟아부어야 했다.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영화를 만들면서도, 영화를 만든 이후도,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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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서 결국 남는 건 사람인 것 같다. 내손퀴도 내게 소중한 인연을 남겨줬는데, 같은 팀원이었던 한 분과 워크숍 이후로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워크숍 초기에, 이야기 짓기를 발표하실 때마다 태가 나는 남다른 필력에 감탄하며 지켜봤던 분이었다. 나도 저렇게 이야기를 잘 쓰고 싶다는 선망과 호기심으로 그 분을 졸졸 따라 같은 팀에 지원했다는 남모를 덕질 비하인드가 있기도 한데, 훗날 이 얘길 해드렸더니 입을 틀어막고 부끄러워 하셨다. 게다가 그분이 내게 특별히 감사한 인연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내가 영화 촬영일을 앞두고 혼자 불안에 쫓길 무렵, 갓 촬영을 마친 그 분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응원해주고 챙겨봐 주셨었다. 그 관심이 너무 소중하고 귀한 마음으로 내게 남아있다.


내손퀴에 정말 여러 수강생분들, 멘토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거나 친밀하게 교류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게 조금은 아쉬운 것 같다. 내손퀴에서의 여러 활동을 나만의 과제로 또 혼자만의 몫으로 가져가지만 한 것 같다. 그치만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표에 정신없이 쫓겼던 고립심, 모범생 기질 덕분에 영화를 만들기도 한 것 같다. 초반 워크숍 일정 이후엔 사실상 자비를 들여 각자의 영화를 각자가 제작해야하는 막중한 미션이 부여됐는데, 이 때 영화 제작을 포기한 수강생분들이 꽤나 많았다. 최근에 같은 팀원이었던 그 분을 만나 우리가 너무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해야하는 줄 알았다며 깔깔 웃었다. 영화 제작이 이런건 줄 알았다면 선뜻 제작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에 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몇 년 전의 치기 어린 열정이 이제는 돌아보면 웃음 지어지는 먼 추억이 됐다는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 분이 최근 쓰신 글이 수상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두고두고 하고 팠던 이야기, 마음 한 켠에 묵혀왔던 시간이 온 마음으로 와 닿았다. 완성을 미루고 미루다 출품을 빌미로 끝맺을 수 있었다는 그 글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그 때 우리의 영화가 그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글이 그렇고, 그 분의 그 글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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