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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모르는 죽음 3


한 시간의 상담이 끝나자 나는 지친 상태가 되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다음 상담까지 약 1시간 남아 있었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며 일어나 블라인드를 내렸다. 하얀색 블라인드가 투명한 유리를 점점 덮기 시작했고, 방안은 자연스레 점점 어두워졌다. 손님용으로 가져다 둔 푹신한 소파 위에 목을 대고 누웠다. 목을 조이던 넥타이도 조금 느슨하게 풀어냈다. 어두운 조명과 푹신한 소파 감촉이 빳빳해진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려 주었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이것 또한 생각이 아닌가?). 그런 상태가 가능할까. 아마도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변호사 7년 차가 되면서 의뢰인에게 지나치게 과몰입했던 신입 시절보다야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일을 맡게 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타인이 피를 흘리듯 겪는 고통을 맨손으로 만지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한 올 한 올 알아내야 했다.


휴식 시간이 되면 마음을 비우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중얼거리며 명상 상태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 한다. 하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입을 앙다문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은 눈물범벅이 되어 나갔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이 소파 앉아 그녀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이 생생했다.


의뢰인인 그녀의 남편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1년 전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신청을 했지만, 부지급 결정이 나왔고, 다시 심사청구와 재심사 청구까지 거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올해 봄 2월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재심사 결정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찾아온 것은 결정문을 받고 이미 2개월이나 지난 상태였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재심사 결정에 불복하기 위해서는 결정문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 조금만 늦게 찾아왔으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 소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슬아슬했다. 왜 이렇게 늦게 찾아왔냐는 물음에 그녀가 차분히 대답했다.


소송비용 때문이요. 결정문을 받고 변호사님 사무실에 전화했는데 수임료, 감정료까지 최소 500만 원은 필요하다고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저한테는 목돈이라 야간에도 일하면서 돈을 좀 마련한다고 좀 늦었어요.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500만 원이라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했을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자야 하는 시간과 먹어야 하는 시간을 아껴 몸을 갈아 넣은 노동으로 벌었을 것이기에. 그녀는 무엇보다 남편이 이렇게 갑자기 가족을 떠난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님, 몇 달 전부터 자꾸 남편이 꿈에 나타나요. 하얀색 환자복을 입고요. 그리고 저한테서 멀찍이 떨어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해요. 인제 그만 가라고 해도 그렇게 힘없이 서서 울기만 해요…. 아무래도 민수 씨는 아직 세상을 떠나지 못하겠나 봐요.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마치 눈앞에 남편이 나타나 우는 것처럼 손을 훠훠 흔들며 말했다. 그녀의 남편 민수 씨 죽음에는 미심쩍고 아리송한 부분들이 많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보내온 작업환경측정 결과와 역학조사 회신서 결과에는 남편 민수 씨가 담당했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었다.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민수 씨가 일했던 곳에 유해 물질이 있기는 했지만, 이 물질들이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일으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적혀 있었고, 그것이 근로복지공단 측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을 결정한 사유였다.


하지만 이상했던 것은 민수 씨는 당시 4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였고, 다른 유전력도 없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는 건강하고 평범한 남성이었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심지어 그가 진단받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40대 초반 남성에게는 잘 발생하지 않는 질병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로복지공단의 결론과 같이 민수 씨가 일했던 업무와 그의 죽음이 어떤 관련이 없다고 한다면 40대 초반에 갑작스레 찾아온 민수 씨 죽음을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모든 일에는 원인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민수 씨가 일했던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미한 죽음의 그림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죽음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찾아 올려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찾는 시간은 의뢰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변호사님, 그렇게나 오래요? 그것도 1심만요?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소송을 진행하는데 최소 1년 정도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사무실을 찾아오면서 최대 6개월이면 1심 결과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판결문을 받고 이 힘든 기억을 어서 떨쳐 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의 죽음을 끌어안고 이 시간들을 버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녀는 한숨을 쉬어 보였다.


보통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한 1심 재판은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 정도 소요되게 된다.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유족급여 부지급을 취소하는 소송의 경우 작업장에 대한 역학조사가 다시 이루어지기도 하고, 사업주에게 사업장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도 하게 된다. 또 망인의 진료기록을 제3의 의료기관에 보내 감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조회 내용과 감정서들은 재판 결과를 결정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하지만 감정을 신청하고, 그 결과를 받는데 최소 1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유족들은 꽤 오랜 시간 마음을 졸이며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준비해 온 도장을 수임 계약서 서명란 찍었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꾹 찍은 붉은 인영이 남긴 자국이 새하얀 종이에 붉게 드러났다.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그녀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메인화면: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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