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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모르는 죽음 2

※ 이 글은 실제 판결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된 창작물입니다. 다만, 전개를 위해 등장인물, 사실관계, 사건의 세부 내용은 작가의 상상에 따라 허구로 구성되었습니다.

본 작품의 기초가 된 판결에 등장하는 고인과 유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이 찾아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딸아이를 일찍 학교에 보내고 버스에 올라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다음 정류장은 근로복지공단 A 지사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 앞 정류장에 버스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붉은색 벽돌 위로 ‘일터에 안심, 생활의 안정,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 파트너’라고 파란 글자로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 공단 앞은 한산했다. 내가 오늘 공단을 방문하는 첫 손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잘 닦여진 유리문에 붙어 있는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며 두리번거리는 내가 유독 눈에 띄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창구에서 일을 시작하려던 공단 직원이 그런 나를 보고 다가와 무슨 업무로 왔는지 물었다.


여기에 오면 산재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몇 달 전 남편이 일하다 죽어 산재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편의 죽음이 어제 일처럼 느껴지자 목이 메어왔다. 어떤 말을 뱉고 싶었지만 끝난 것 같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목구멍 사이를 가로막는 바람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만 튀어나왔다. 공단 직원은 눈시울이 벌게져 웅얼거리는 내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신청하고 싶은 것인지, 무슨 일이 있어서 오게 된 것인지 다시 물었다.


“그게…. 몇 달 전 우리 아이 아빠가 죽었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꽤 오랜 시간 일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진단받았어요…. 흑흑흑 그리고 1년이 안 되어서 세상을 떠났어요. 아직 사십 대 중반도 안 되었는데…. ”


공단 유니폼으로 보이는 회색 옷을 입은 직원은 그런 상황에서 신청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공단 유니폼 상의에 그려진 파란 로고 무늬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선생님, 마음이 아주 힘드셨겠어요. 산업재해 보상법 제62조에 따라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하면 유족에게 유족급여를 지급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장의비 지급도 청구할 수 있고요. 하지만 신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에요. 사망원인이라고 말씀하신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인한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해요. 그래야만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받으실 수 있고요.”


공단 직원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더니 종이 1장을 가지고 돌아왔다. 종이에는 유족급여, 진폐 유족연금, 장례비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직원은 신청하고자 하는 항목에 표시한 후 관련 자료를 갖춰서 제출하면 된다고 말하였다. 직원의 이야기에 산재 신청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막한 마음에 나는 공단 직원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사업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저로서는 밝혀낼 수 없는데…. 어떻게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건가요? 남편은 이제 이 세상에 없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있는 건가요?”


내 이야기를 들은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재해경위서 등을 작성해서 제출하시기도 하시고요. 주변에 잘 아는 노무사님 도움을 받아 업무상 관련성을 입증하는 서류를 갖춰서 작성하는 예도 많아요. 또 공단에서는 신청 산재가 질병에 의한 사망에 해당하면 우선 직업력과 같은 기초조사를 하기 때문에 사업장 정보만 적으셔도 되고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 조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업무상 질병 자문위원회로 자료를 보내 전문 조사 필요성을 심의하게 되고요. 전문 조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근로복지공단이 전문(역학) 조사를 의뢰한 후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결정되는 대로 결과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단 직원으로부터 신청서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첨부해 공단에 제출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공단에 들어설 때와는 달리 어느새 공단 안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 일하다 다치고, 병든 사람들이겠지…. 아니면 나처럼 일하다 죽은 사람 가족이거나….


대기표를 받고 하나같이 퀭하고 침울한 얼굴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옆을 지나쳤다. 그들이 가진 아픔과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뾰족한 슬픔이 가진 색깔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묘한 위안감을 주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오전 11시에 어울리는 해사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해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주는 찬란함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찢어지는 울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새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한발 한발 햇살 쪽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아가, 잘 다녀왔나?”


시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반겼다. 공단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어머니가 집에 와계셨다. 지쳐 보이는 내 표정을 살피시다 말없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물 한 잔을 따랐다. 시어머니의 표정 안에는 걱정과 아들을 잃은 슬픔, 그리고 혹시 모를 기대감이 뒤엉켜 있었다.


“어머님, 산재를 신청하려면 서류를 내야 한대요. 사망이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있으면 그 서류도 함께 갖춰 내면 신청이 승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하시네요. 우리로서는 주리 아빠가 공장에서 어떻게 일했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요. 주리 아빠가 써왔던 일기장과 회사에서 받았던 특수건강검진 자료가 전부인 것 같아요. 혹시나 싶어 법원 근처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과 노무사 사무실에 가서 알아봤는데 비용이 만만하지 않네요. 기본 200만 원부터 시작이래요. 이제 주리 아빠가 받았던 퇴직금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어서 우리 형편에 생각해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이제는 매달 생활비를 대출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돈을 마련해 노무사나 변호사에게 산재 신청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머니와 나 모두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힘들게 이 세상을 떠난 주리 아빠를 생각하며 궁리라도 하는 시늉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리 아빠가 10년 넘게 써온 일기장과 매년 회사에서 받아온 특수건강검진 결과지를 신청서와 함께 내는 것,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우리 가족과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그 누구도 모르는 민수 씨의 죽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신청서 제출 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신청서를 냈다는 사실을 잊을 무렵 공단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몇 달 전 시작한 식당 일로 점심시간 동안 쌓인 설거지를 하나씩 하나씩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에서 윙 하는 진동이 울렸다.


위이이잉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등기가 도착했다는 문자였다. 문자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주리 아빠의 빼빼 말라버린 하얀 얼굴과 손이 떠올랐다. 주리 아빠를 보내며 화장터로 향하던 주리 아빠를 눈물로 보냈던 그 시간이 겹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우리를 두고 혼자서만 이 좋은 세상을 일찍 떠나가 버린 것인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주리 아빠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 위로 눈물 두 방울이 굵게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고무장갑을 낀 손은 세제 거품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기에 눈물은 개수대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집으로 달려가 등기 봉투 안에 적힌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주방 일이 끝나려면 몇 시간이고 더 있어야 했다.


설거지가 끝나고 저녁 타임이 시작되었다. 낮 동안 일터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느라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지쳐버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뻘건 고기들이 불판 위로 올려졌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투명한 소주잔이 은색 철 식탁 위에서 쨍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희뿌연 담배 연기와 고기가 구워지며 풍기는 하얀 연기가 뒤엉켜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하루 동안 누군가는 인정사정없이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또 누군가는 콘크리트로 만든 사무실에서 울고 웃고 화내며 치열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먹고살기 위한 사람들의 하루가 어제처럼 소리 없이 저물고 있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마지막 설거지를 마친 후 가게 불을 껐다. 사장님이 오늘 일당이라며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김 씨 아줌마, 고생했어요. 내일 10시까지 오세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우리 가족을 살게 하는 파란 돈이 들어있는 하얀 봉투를 가방 깊숙이 쑤셔 넣었다. 종일 서 있었더니 종아리가 탱탱하게 부어올라 이제 좀 쉬자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앞 전광판 시계는 1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용히 집으로 들어서니 작은 방에는 주리와 어머니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식탁에 노란 등기 봉투와 어머니가 남긴 쪽지가 놓여 있었다.


“어미야, 공단에서 왔나 보다. 뜯어보렴.”


가위로 등기 봉투 윗부분을 조심스레 잘라냈다. 결과서와 관련 자료들이 봉투 안에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역학조사 회신서와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고려하였지만, 업무상 취급한 유해 물질의 양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노출 물질과 이 사건 상병과의 관련성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중략) 이를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한다.”


하얀 종이 위에는 주리 아빠의 죽음과 반도체 공장과는 어떤 상관도 없으니 그 어떤 신청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첨부된 작업환경 측정 결과에는 주리 아빠가 일했던 작업장에 염산, 질산, 황산, 극저주파 자기장, 디클로에탄 유해 물질이 존재했다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유해 물질 노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그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없다는 것이 산재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라 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가 느껴졌다. 그럼 도대체 주리 아빠는 갑자기 왜 죽게 된 것이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악이라도 쓰고 싶은 끈적거리는 요상한 감정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도대체 왜…. 왜….


눈물이 또다시 분노를 헤집고 나타났다. 손등으로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멍하니 바닥에 누워 주황빛으로 칠해져 있는 우리 집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위에 파리가 전등 안으로 들어가 윙윙거리며 벽에 부딪혔다 다시 공중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가 다시 전등 안을 뱅뱅 돌며 밖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20분이 흐르자 살려고 발버둥 치던 파리가 내던 ‘탁, 탁’ 소리가 뜸해졌다. 곧 전등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까만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다음 화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메인화면: pint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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