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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모르는 죽음 4


수정은 양재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사람들 틈 속에서 걷기 시작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2시 45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약속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선생님, 양재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쭉 걷다 보면 아담한 벽돌 건물이 보일 거예요. 거기가 서울행정법원입니다. 변론 시작 10분 전에 법정에 들어가야 하니 2시 50분까지 법원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


수정은 어제 박 변호사가 알려준 대로 걸음을 옮겼다. 회사 건물들과 상가가 즐비해 보이는 길을 지나자 크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빨간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앞에는 이름을 들으면 알법한 방송사 로고를 붙인 카메라를 하나씩 어깨에 들고 있는 기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행정법원 앞에 도착한 수정은 TV에서나 봤던 광경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선생님, 여기예요.”


먼저 도착해 있던 박 변호사가 꽤 많은 인파 속에서 수정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약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에게 박 변호사는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판결 선고가 있는 것 같다며 붐비는 이유를 설명했다.


“3시에 변론 시작이라 이제 아래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수정은 박 변호사의 안내에 따라 지하에 있는 법정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건물 지하 역시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온 사람들, 그리고 변호사로 보이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변론이 오래 걸리냐는 수정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빠르면 3분, 조금 길어지면 10분 정도 걸릴 거라는 대답 했다.


“아마 첫 기일이라 앞으로 어떻게 재판을 진행할 것인지 문답하고 마무리될 거라 금방 끝날 거예요.”


수정은 박 변호사를 따라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 민수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 번호가 호명되었다. 박 변호사는 원고 대리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원고와 피고 소장과 준비서면 진술하시고요. 지금 제출된 증거로는 피고 측에서 조사한 작업환경측정 결과와 역학조사 회신서가 전부네요. 원고 측 앞으로 이 사건 사망과 망인의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입증할 계획이신가요?


자주색 법복을 입은 재판관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박 변호사 쪽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현재 피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원고 측에서는 망인이 업무 기간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사망했음을 밝힐 수 있는 증거 신청하려 합니다. 망인이 20대부터 일했던 작업장 4개에 대한 작업환경에 대한 감정촉탁 신청을, 위 결과가 도착하면 이를 토대로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새롭게 받아 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망인이 일했던 반도체 공장에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도 함께하겠습니다.


준비해 온 답변을 하는 박 변호사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좋습니다. 그럼 원고 측 대리인, 관련 신청서들 제출해 주세요. 결과가 도착하면 다음 기일 지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변호사의 말대로 약 5분가량 변론이 진행된 후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수정과 박 변호사는 어두운 법정을 나와 법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언론이 주목하는 재판이 끝났는지 붐비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수정은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지 박 변호사에게 물었다. 처음 소송을 해보는 수정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선생님, 우선 재판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 것들은 마무리했고요. 그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겁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석현 씨라는 분 연락처를 좀 주세요. 제가 연락한 후 날을 정해 만나봐야겠어요.”


박 변호사는 땀으로 흘러내린 검은색 뿔테를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수정은 알았다고 말하며 이전에 말씀한 분께 미리 연락을 취해 놓겠다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돌아가신 민수 씨 사건을 맡은 박 변호사입니다.”


박 변호사는 카페로 들어온 석현에게 하얗고 네모난 명함을 건넸다.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 석현이 박 변호사를 보더니 엉거주춤 일어나며 고개를 꾸벅였다. 야간 조라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석현의 얼굴은 창백하고 푸석해 보였다. 아침 휴식 시간에 잠깐 나왔기 때문에 어서 들어가 퇴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석현은 급히 자리에 앉았다. 석현은 박 변호사라는 사람이 왜 불러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다.


현석이 일하는 공장 출입문 바로 앞 카페까지 박 변호사가 찾아온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박 변호사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현석은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며 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박 변호사는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석현에게 언제 반도체 공장을 그만두었는지 물었다.


“한 2년 되었어요. 일하고 1년 정도 있자 몸이 너무 안 좋아졌거든요. 주야간 근무를 하다 보면 몸 리듬도 깨지고 하니까 잔병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기관지도 매일 같이 아팠고요. 그래서 지금 있는 택배 포장 공장으로 옮겼어요. 여기도 주야간 조로 일하기는 하지만 화학제품 만지는 곳은 아니니까요. 꽤 괜찮아요. 다만 급여가 많이 줄기는 했어요. 변호사님, 그런데 민수 일은 벌써 1년이 지난 일 아닌가요? 그때 장례식장에서 형수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소송이라니, 사실 여기 안 나오려 했는데 형수님한테 전화받고 하도 사정하시길래 여기까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석현은 3년 전 반도체 공장에서 함께 일한 민수가 생각났다. 민수는 조용하고 과묵한 직원이었다. 목석같은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민수는 술도 마시지도 않고, 말도 없었기 때문에 민수와 석현이 업무 시간 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말이 많고 불평이 많았던 석현이 한 마디씩 하면 민수는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쳐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참 말이 없었지만,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였다.


한 조였던 그들은 야간과 주간을 넘나들며 함께 일해왔다. 민수는 공장에서 주는 마스크가 너무 얇다고 불평하는 석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툼한 마스크를 건네기도 했었다.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기에 몇 년 후 갑작스러운 민수의 죽음은 석현에게도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민수의 사인이 희귀한 백혈병이라고 들었다. 건강했던 민수가 희귀 백혈병에 걸렸다니. 영화에서나 나오는 병명에 석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 운명이 이런 것인가 하며 허무한 마음이 온몸을 감쌌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며 석현은 민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분명 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취급했던 약품들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었다. 물론 누구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했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화학약품 옆에서 일했지만, 공장에서 주는 것은 빨간 고무장갑과 얇디얇은 마스크가 전부였다. 안전하냐는 반발에 공장주는 공정 중에 해로운 물질은 없으니 안심하고 일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물론 석현에게 그 어떤 증거는 없었다. 누군가 증거를 대라고 이야기한다면 자신이 공장에서 일하는 기간이 더해갈수록 쇠약해졌던 몸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석현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가는 몸의 상태를 관찰하며, 민수의 죽음이 반도체 공장에서 취급한 약품들 때문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며칠 전 석현은 민수가 죽고 형수씨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 가느라 많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태민에게 듣게 되었다. 석현은 생계를 꾸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거기에 소송까지 하는 민수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석현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지금 여기에 나와 앉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 공장에서 디클로로메탄을 취급했다고 들었습니다.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일하실 때, 보호장비는 착용하셨었나요?”


박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은 석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하면서 받았던 것은 미세먼지도 차단할 수 없을 것 같은 일회용 종이 재질의 마스크였기 때문이었다. 장갑도 급식실에서나 착용할 법한 고무장갑이 전부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일하셨던 곳에는 화학약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환기설비가 중요해요. 법에도 명시되어 있고요. 환기설비는 어떻게 되어 있었나요?”


박 변호사가 다시 묻자 과거 일을 생각하던 석현이 입을 열었다. 박 변호사에게 화낼 일은 아니었지만, 석현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소 격양되고 있었다.

“변호사님, 뭐 화학약품 취급하는 곳에 거창한 것들이 있을지 아십니까? 아닙니다. 티브이 광고에서 나오는 반도체 공장 사람들이 입었던 그런 보호구는 전혀 없었어요. 그런 건 큰 기업에서나 줄까 모르겠네요. 그냥 우리는 고무장갑을 끼고 약품에 반도체 세정했어요. 마스크도 지금 변호사님이 끼고 계신 마스크가 더 좋아 보이네요. 환기 시설은 말해 뭐 합니까. 선풍기도 제대로 없는 곳인데 환기 시설이라니요. 저기 보이십니까?”


현석이는 저 멀리 공장을 가리켰다. 카페 옆에 있는 공장 지붕 쪽에 작은 파란색 선풍기가 돌 돌돌 돌아가고 있었다.


“저거 말입니다. 저런 거 하나 달아 놓고, 공장 문 활짝 열어 놓고 일하는 겁니다. 그리고 클린룸이 있기는 있지요. 전에 일했던 공장에 1개 있었는데요. 그건 가끔 조사 나올 때 평가용으로 전시용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에그, 우리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곳이에요.”


현석의 이야기를 들은 박 변호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한 전문 조사 결과를 살펴봤을 때 반도체 공장에 일하는 근로자에게 노출되는 유해 물질은 디클로로메탄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사 결과지에 따를 때 반도체 공장 기계에서 내뿜는 극저주파자기장, 그리고 질산, 황산, 염산, 세정제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을 뒤덮고 있었었다. 다만 그 결과치가 위험 기준을 뛰어넘지 못했을 뿐, 이미 여러 가지 유해 물질 들이 이미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선생님, 혹시 그때 일했던 공장 사진이 있을까요?”


박 변호사는 혹시나 해 반도체 공장 사진이 있는지 물었다.


“에이, 공장에서 일하지, 누가 사진을 찍나요. 허 참.”


현석은 갑작스레 반도체 공장 사진을 찾는 박 변호사가 당황스러웠다. 그때 마침 현석의 머릿속에 그날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조장이었던 민수 생일날 석현을 비롯한 팀원들은 깜짝 파티를 준비했고, 그때 공장 안에서 팀장 몰래 찍었던 사진과 짧은 동영상. 운이 좋다면 그날 남긴 사진과 영상 안에는 공장에서 그들이 일하며 썼던 마스크, 고무장갑, 그리고 낡은 환풍 팬과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나와 있는 약품 병까지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변호사님, 잠시만요. 저희가 3년 전에 공장 안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년 전이라 지금 핸드폰 안에는 없고요. 집에 가서 컴퓨터에 옮겨 놓은 사진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현석은 대충 박 변호사를 만나고 가려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사건을 도와주고 있었다. 현석의 말을 들은 박 변호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미 법원에 반도체 공장에 대한 증거확보를 위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현석 씨가 말한 공장 내부 사진이 있다면 사건 진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혹시 사건이 진행되면서 당시 공장에서 일했을 때 공장 환경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해 줄 수 있으실까요? 그때 같이 일했던 다른 팀원들도 있다면 그분들 것도 함께요.”


현석은 박 변호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더듬는 듯했다.


“저야 반도체 공장을 나왔기 때문에 작성이야 가능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연락이 되는 팀원은 1명뿐인데 그 팀원은 아직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현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때 박 변호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네? 아직 일하고 있는 직원이 있다고요?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메인 출처: pinterest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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