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유를 모르는 죽음 6


계절은 유난스러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기저기 나무에 매달려 이제는 생의 마지막인 순간인 것처럼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태양 열기를 극한으로 부채질하고 있는 듯했다.


집 앞 슈퍼 평상에 걸터앉은 상구는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 까만 화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팥 아이스크림이 햇살에 막 흘러내릴 듯 아이스크림 끝자락에 매달린 채, 먹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야! 박상구! 그 자식에게 전화해서 단단히 일러두라고. 겁 없이 오지랖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이신고 사장은 현석이 민수 죽음을 밝히는 소송을 돕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현석에게 말하듯 상구를 향해 소리쳤다. 이미 사장에게 반짝이는 것을 받은 상구에게 딱히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석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 말을 전하고 끊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상구는 현석에게 전화하기가 주저되었다. 그 마음이 무엇 때문인지 그 실체를 알지는 못했다. 사장의 신임을 받는 ‘특수 부품’일지라도, 결국 자신 역시 공장의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박상구! 네가 전화를…. 무슨 일이냐?”


상구는 이런 찝찝한 말 그냥 빨리 끝내버리자는 생각에 밀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순간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통화음이 세 번 정도 울렸을까, 현석은 마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 전화까지 해야겠냐? 3년 전에 우리 깨끗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던 거 아냐?”


상구는 대뜸 화가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일을 만들어 이신고 사장 뒤치다꺼리를 늘려놓은 현석에게 짜증이 올라왔다.


“박상구, 말은 똑바로 하라고. 그건 3년 전이고, 민수가 죽기 전 이야기지. 사람이 죽기 전 이야기라고!!”

다소 경쾌해 보이던 현석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민수가 죽은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갑자기 네가 나타나냐고!! 민수가 네 형이냐? 네 가족이냐? 전혀 상관도 없는데 왜 네가 돕고 나서는 거야? 도대체 이해가 안 가. 혹시 이번 소송에서 민수네로부터 얼마 받기로 약속이라도 한 거냐?”


상구는 오지랖을 부리는 현석이 이해되지 않았다. 민수네 쪽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보장받지 않고서 저렇게까지 도우려 한다는 것은 상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민수네가 소송에서 이겨서 현석에게 돌아가는 것이 무엇이기에. 어쩌면 상구는 현석에게 이 질문을 가장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필시 현석은 민수네 쪽에서 상당한 대가를 보장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상구에게는 있었다.


“뭐?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너 정말 이게 너랑 나랑 그리고 우리 모두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거야? 넌 지금도 그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이건 민수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결국 우리의 문제라는 걸 왜 너는 모르는데? 이번에는 민수였지만 그다음은 상구, 네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그걸 왜 모르는데!!!”

현석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흥분한 현석과 달리, 상구는 정의의 사도인 척하는 현석이 우습기만 했다.


“뭐? 너 무슨 약이라도 먹었냐? 민수 다음에 나라고? 무슨 호러 영화 찍냐고. 왜 그다음이 난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민수가 죽은 게 왜 반도체 공장 때문이냐고. 공장에 작업환경측정 결과도 나왔고, 아무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니까? 그리고 너도 멀쩡하고, 나도 멀쩡해. 민수 그 새끼가 몸 관리를 잘못했거나 재수 없이 이상한 병에 걸린 걸 가지고 왜 산재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치냐고!!! 너야말로 그쪽에서 소송 도와주면 돈 받기로 한 거 아니야?”


민수의 죽음은 그저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상구의 말을 듣자, 현석은 울화가 치밀었다.


“아니,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지. 반도체 공장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어. 지금이야 너나 나나 괜찮을지 모르지. 숨 쉬고 밥 먹고, 가족 만나고, 아이들 부둥켜안고 행복해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모르는 거야. 공장에 있는 시간 동안 나쁜 약품들이, 해로운 것들이 우리 몸을 파먹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시간 동안 우리 몸은 죽어가고 있었다고. 그 대가로 반도체 공장은 점점 커졌고, 사장이 타는 차는 반짝이는 외제 차로 바뀌었고, 얼굴에는 기름이 흘렀지. 어찌 보면 이신고 사장이 얻은 돈은 우리의 피로 쌓아 올린 황금성과 다르지 않아.”


현석은 줄곧 생각했다. 이신고 사장은 그때 왜 더 안전설비를 확충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했을까. 아마 그가 벌어들인 돈을 쓰며 갖춰야 하는 안전설비는 그에게 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장난감들처럼 넘쳐났고, 장난감들의 건강과 이신고 사장의 이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망가져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새로 사면 되는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야! 웃기는 소리 그만해. 긴말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전화한 건 이신고 사장 말 전하려고. 너 이 새끼 계속 까불면 3년 전에 있었던 공장 침입 사건 경찰에 신고한다더라. 그만 까불고 조용히 빵 공장 다니는 게 너나 너희 가족들한테 좋을 거라 전하래. 아무튼 난 할 말 전했으니 끊는다.”


상구는 해야 할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석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는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3년 전, 공장에서 몰래 열었던 민수 생일 파티 사진을 응시했다.


사진 속에는 현석과 민수, 그리고 상구, 다른 두 명의 직원이 보였다. 그들은 아주 얇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입은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 해맑게 웃고 있는 듯했다. 그들 뒤에는 낡은 환풍기, 빨간 고무장갑, 아무렇게나 방치된 누가 봐도 해로운 명칭들이 새겨진 약병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배경이 되고 있었다.


현석은 전화가 끊기고 노트북 앞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숨이 ‘후’하고 빠져나왔다. 전화가 오기 전 박 변호사에게 보내려던 메일을 괜히 썼다 지웠다 하기를 몇 번. 전화는 끊어졌지만, 상구가 남기고 간 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조금이라도 까불면 3년 전 그때 일…… 알지?”


그때 현석의 등 뒤에서 달그락 소리와 우당탕 소리가 나는 바람에 뒤를 힐끗 보았다. 방 건너편 주방에서 아내가 주말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다섯 살 아들 웅이는 쌓아놓은 블록이 무너져 내려 울음을 터뜨릴지 말지 고민하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족들이 소담스럽게 일상을 보내는 그날 하루의 소리가 현석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바로 그 시간, 도시의 다른 쪽에선 여덟 살 된 한 아이는 하얀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그리고, 칠하고 있었다.


주리는 여름이 오고, 참을 수 없는 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물가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아빠 민수가 생각났다. 주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러니까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아빠 민수는 백혈병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주리가 아빠와 이별했던 때가 100년 만의 불볕더위로 온 나라가 더위에 떨고 있을 때여서였을까. 주리는 여름이 절정에 달하는 8월이 되면 유난히 아빠 생각이 간절해졌다. 아빠 생각이 날 때, 아홉 살이 된 주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 그리움이 조금은 사그라들어 편안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텅 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대는 것뿐이었다.


“박 주리 어린이, 앞으로 나와 주세요. 주리 어린이는 전국 어린이 안전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주리는 그날도 아빠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이 말했다.


“어디에서나 안전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안전을 지키려면 이를 지켜줄 장비를 갖추어야 하고, 거기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또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이런 과정들은 참으로 번거롭습니다. 다 생략하고 빨리 해치우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빠르게 빠르게만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던 주리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손을 번쩍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번쩍 든 주리를 바라보며 선생님이 빙그레 웃어 말했다.


“주리야, 대답은 오늘 그린 그림으로 들려주면 좋겠구나. 여러분,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는 날이에요. 여러분이 평소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안전한 세상이 될 수 있을지 그림으로 그려봅시다.”

주리는 크레파스를 들고 그리기 시작했다. 주리에게 그림은 아린 곳을 보듬어 주는 손길이자, 주리가 버티고 있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어릴 적 아빠가 일했던 공장 앞에서 봤던 매캐한 연기와 냄새, 일을 마치고 나오며 웃던 아빠, 일이 끝나면 어김없이 아빠 옷에 배어 있던 약품 냄새, 그리고 해맑게 웃던 아빠가 하얗게 질려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 아빠가 일했던 공장 사장이 호쾌하게 웃는 모습과 그 옆에 놓인 커다란 황금 덩어리까지. 그리고 대각선에는 해맑게 웃는 어린이와 가족, 혼자 남겨진 주리의 모습까지 그려 넣었다.


그날 그렸던 그림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선을 그리고 그 안에 색을 거듭 칠했다. 그림은 완성되자 주리는 그동안 뭉쳐왔던 마음이 스케치북으로 빠져나가 답답함이 가시기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 호명에 주리는 단상에 올랐다. 받아 든 상장과 번쩍이는 메달을 손에 들었다. 그저 자신이 겪었고 지켜보았던 모습을 그림에 담았을 뿐인데 대상이라니. 주리는 얼떨떨했다. 집에 가면 엄마와 할머니가 참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이제 아홉 살이 된 주리는, 아빠를 떠나보내며 또래보다 조금은 더 생각이 많은 아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엄마 곁을 지키며 아빠를 보내드려야 했던 그날을 주리는 기억 한다. 새카만 한복을 입고 엄마 곁을 지켰던 나날들. 많은 사람이 와서 울었고, 그들은 주리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리를 스쳐 간 1분 1초가 그대로 마음에 새겨지고 있었다.


상장과 메달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주리는 생각 했다. 아빠가 계셨었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거라고.

어릴 적 유난히 주리를 예뻐하던 아빠. 주리는 아빠를 참 좋아했다. 뭐랄까, 아빠와 주리는 통하는 면이 많았다. 주리가 무엇을 하든 아빠는 응원해 주었고, 주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늘 말해주었다.


아이가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직 아홉 살이던 주리는 아빠의 사랑이 아주 필요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빠 민수의 죽음으로, 주리가 아빠로부터 온전히 받아야 했던 사랑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어린 주리에게 남은 것은 아빠의 빈자리가 주는 그리움과 아빠의 죽음에 대한 의문, 그뿐이었다. 그 어떤 잘못도 없는 어린 주리에게, 이유를 모르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번거롭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 예방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재해였다. 잘 대비했다면 아빠 민수는 주리와 함께 이 세상을 잘 살아갔을 것이다. 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행복한 시간을 함께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리는 지금까지도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일까. 아빠처럼 이유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그런 곳에서 일해서는 안 되는 걸까. 학교에서는 가끔 안전교육을 하는데, 아빠가 다녔던 직장에서는 그런 교육이 없었던 걸까. 아빠는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아빠는 그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어찌 보면 산재로 잃게 되는 것은 사람의 목숨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고로 죽은 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까지 송두리째 앗아간다. 운이 좋아 산재가 인정되어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게 되더라도, 그의 가족들이 잃어버린 그 시간과 행복을 누릴 수 있던 순간까지 보상될 수 있을까.


정말 돈으로 보상이 되는 것일까. 돈이라면 최고라는 세상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와 함께 누려야 했던 그 시간까지 우리가 치켜세우는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노랑나비 한 마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주리 머리 위를 하염없이 맴돌고 있었다.


메인화면: pinterst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6화이유를 모르는 죽음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