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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비극 2

2.

15년이 지나 돌이켜 보면 그때의 일들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며 몸서리를 쳤다. 처음에는 모두 그 일의 원인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해괴한 소문만 퍼져나갔다. 사실 비극의 근원들은 우리의 일터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기에.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 역시 처음 그 일을 겪고 귀신의 장난인가 싶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굿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J 의료원에서는 귀신이 했다고 하기에는 똑같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임신 중인 간호사에게 차례차례. 가장 마지막에 아이를 출산했던 나를 끝으로.


2010년 1월에 임신한 유진 선생님을 시작으로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검은 그림자는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0년 J 의료원에서 임신 중이던 10명의 간호사 중 3명은 정상 아이를 출산했지만 4명은 유산했다. 나머지 3명인 미연 선생님, 경미 선생님, 그리고 나는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미연 선생님은 2010년 8월쯤 유산 증후를 겪었다. 갑작스러운 배 통증과 하혈로 산부인과를 방문했고, 의사는 미연 선생님에게 유산 가능성이 있으니 안정을 취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2010년 당시 병원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근로 환경 악화로 전체 간호사 인력 30%가 퇴사했다. J 의료원 간호사들은 2010년과 2011년 사이 일반 병원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환자 수의 30%가 넘는 환자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인력이 부족했기에 미연 선생님은 주간근무(7:00~15:00)와 저녁근무(15:00~23:00)를 계속 이어가야 했다. 그녀는 2010년 10월 20일 ‘폐동맥판막 폐쇄, 심방중격결손’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둘째를 임신했던 경미 선생님은 유산증후를 겪지는 않았다. 임신 중인 간호사들은 모성보호를 위한 조치로 출산휴가를 떠나기 전까지 야간 조 근무는 면제받았으나 주간 조 및 저녁조의 교대 근무는 계속해야 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공표한 ‘교대 작업자의 보건 관리지침’에 따를 때 야간 조 근무를 모두 마친 후 아침 조 근무에 들어가기 전 최소한 24시간 이상 휴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J 의료원에서는 인력 부족이 점점 악화하면서 교대 방향이 일정하게 순환하지 않고 사정에 따라 불규칙하게 근무조가 편성되었다. 경미 선생님 역시 휴식은 생각도 못 했다. 인수인계를 위해 1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고, 30분 늦게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점심시간은 10분이었다. 그녀는 2011년 4월 11일 심신 중격결손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첫 번째 임신이었던 나는 임신 4주 차에 유산증후를 겪었다. J 의료원에 입원한 중증 환자 중 병이 너무 중해서 알약을 씹어 먹지 못하는 경우, 치매 환자로 알약을 뱉어내는 경우, 너무 노쇠해 알약을 삼킬 수 없는 환자가 60%에 달했다. 병동에는 알약 분쇄기가 있었으나, 소음 문제로 인해 간호사들이 직접 알약을 막자를 이용해 분쇄작업을 해야 했다. 환자들의 경우 보통 1일 3~6회 약을 복용하였다. 때문에 간호사들은 1일 2~3회, 1회당 200정 정도의 알약을 분쇄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나, 우리가 빻았던 200 정의 알약에는 인체와 동물 모두에게 기형을 발현시킬 수 있다고 입증된 증명된 약물인 X등급 약물이 17종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다음 해 2011년 8월에 시후를 출산하였다. 시후는‘동맥관’이 정상적으로 폐쇄되지 않았고, 결국 ‘동맥관 개방’이라는 진단받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선천성 심장질환이란 환경적 요인 혹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태아의 심혈관에 질환이 발생해 출생 시 이미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는 상태라 한다. 심장은 임신 1개월에서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시후 같은 경우는 이 시간 동안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덜 만들어지거나 아예 만들어지지 않거나 연결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했다. 그 원인은 유전적 요인 혹은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하다고 했다.

이 일이 나를 덮쳤을 때 할 말을 잃었다. 아기의 병명을 듣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돌봐야 했다. 내 팔뚝보다 작은 아이의 몸에는 온갖 주사와 선들이 연결되었다.

“어머님, 수술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아이는 생후 7개월이 되었을 무렵 결손 부위를 막기 위한 ‘경피적 동맥관 폐쇄술’을 받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와 함께 고통과 같은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몰아쳐 올 때는 몰랐다. 눈앞에 다가오는 문제들을 정신없이 쳐내고 견디고 나면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작은 먼지들이 소리 없이 모여 커다란 먼지덩어리를 이루듯. 그 시간을 모두 지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끝없는 동굴을 지나왔음을.


당시 나와 남편의 눈과 귀는 오로지 시후에게 향해 있었다. 이 작은 아이를 다시 살게 하는 것. 오직 그것만 생각했다. 당연히 J 의료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유진 선생님. 나 미연이에요. 아기는 괜찮아요?”


당시 전화를 건 미연 선생님 아기도 출산 후 병원에서 입원했고, 수술을 마치고 치료 중이라 했다. 미연 선생님은 J 의료원 소식을 전했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3명 간호사가 유산했고, 미연 선생님과 경미 선생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3명 간호사가 선천성 신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이 노사 간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을 찾고 있으며 모두 열악한 근로 여건과 작업환경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 금요일 J 의료원이 S대학교에 간호사의 근무 여건과 작업환경이 태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을 전해왔다.


“선생님, 역학조사 결과 나오면 다른 선생님들도 소송할 거래요. 선생님은 어떻게 대처할 거예요?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런데 쉽지 않은 것이 소송 기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소송 비용도 만만하지 않더라고요. 며칠 전 공단 쪽에 문의해 보니 임신 중 건강 손상을 입은 태아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승소 가능성도 불확실한 상황이에요. 관련해서 문자 남겨 놓을 테니 보고 연락해 주세요.”



* 실제 판례 내용을 기반으로 각색한 산재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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