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은데 좀 많이 바빴다.
첫 아이와 둘째 아이의 임신기간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컨디션이었다. 피부가 상태가 좋지 않고, 더러 후두염때문에 기침으로 힘들었긴 했지만, 일상 자체가 무너질정도의 힘듦은 아니었다. 큰아이때는 임신으로 인한 업무조정은 전혀 없었다. 엄밀하게는 팀 내에 나의 업무를 조정받을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업무였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해 말에 임신 사실을 알았던 덕분에 연초에 업무조정 가능한 시기에 임신기간과 휴직기간, 그리고 복직 이후의 상황까지 고려한 업무 조정을 할 수 있었다. 나는 6월까지 중요한 일들을 모두 마치고, 7월에는 인수인계의 시간으로 가져가자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일을 진행했다.
우리 회사는 다 해봐야 20명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고, 팀도 3개뿐이다. 외부에서 미팅하다가 회사 규모에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20명밖에 안되는 회사라는 사실에 다들 매우 놀랜다. 움직이는 반경으로 봐서는 그거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매우 작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모두가 매우 바쁘고, 누구 하나 노는 사람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조직이다. 그러니 임신과 동시에 육아휴직에 대한 고민을 할때 업무 재배정에 대한 부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할수 박에 없었다.
3개월을 쉬고 나오냐, 아니면 아예 1년을 쉬고 나오냐의 차이인데 3개월을 쉰다는건 사실 옵션에 없을 수 밖에 없었다. 3개월간 나의 업무를 누군가가 대신한다는 것은 너무 큰 민폐인데다가, 결국 집에서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년을 쉰다면 1년 계약직으로라도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연초에 팀장님과 업무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왔는데, 팀장님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이건 그 뜻을 따르겠다고 해주셨다. 하지만 어디가서 '선임(과장급)'에 준하는 사람을 1년만 뽑아서 쓰는 것은 쉽지 않다보니, 업무강도나 업무의 밀도를 고려하면 혹시라도 3개월만 일하고 나올수도 있는지도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우리 집은 그래도 남편이 프리랜서고, 일정의 조율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점이 3개월 출산 휴직에 고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신 덕분이었다. 모든 것은 남편이 전적으로 육아를 담당할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상반기에 일정이 한가한 시즌에 태어난 큰아이와 다르게, 해외 출장과 지방 출장 등이 빈번히 벌어지는 하반기에 태어나는 아이다보니 남편의 절대적인 육아 투입이 불가능했다.
하반기는 남편이 바쁜 시즌이라... 역시 안되겠어요.
그렇군요. 그럼 안되요. 3개월은 잊어요.
팀장님은 아이가 최우선일 수 밖에 없는 나와 나의 가족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셨다. 이 회사의 유일한 워킹맘이었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고충, 나의 미래는 팀장님이 이미 걸어온 길이었다.
아주 임신 초기라 회사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기 좀 어려운 시점 부터 나의 업무를 어떻게 쪼개고 다시 받을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해왔고, 그러기에 적절한 대상이 누군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다. 그건 팀장님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인수인계 시간을 충분히 가져가고 상반기 안에 끝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그 일들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달려야 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이 숨이 차도록 달려야 했다. 지난해 런칭한 신규사업들은 걸음 걸음 지뢰밭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업무를 임신을 이유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절대 하고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미주신경선 실신으로 쓰러질까 걱정한 남편은 매일 아침저녁을 회사까지 데려다 주고 데리고오고를 반복했다.
일이 쌓이고 또 쌓이니 야근할일이 점점 많아 졋고, 지금 처내지 않으면 목표한 시점까지 업무를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야근을 해야했고, 단 한시간이라도 야근을 하면 큰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이후의 시간은 남편 혼자 온전히 보내야만 한다. 아무리 상반기에 상대적으로 일이 적다고는 하지만 자기 일도 하고, 집안 일도 하고있는 남편이 육아까지 전담하다 시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다.
나는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 했고, 저녁에 집으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2번의 출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야근을 한다는 것은 2번쨰 출근에 지각 한다는 뜻이고, 이제는 눈이 밝아지고 보는 것이 많아진 아이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한다는 뜻이다.
6시에 칼퇴를 해도 어린이집 들러 아이를 픽업하고 집에 돌아오면 7시다. 그것도 차가 안밀릴떄 이야기고 말이다. 그럼 같이 (남편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동화책을 읽어주고나면 순식간에 9시가 다되버린다. 그럼 씻기고 재우면 끝. 그러니 내가 야근을 2시간 하면 그 짧은 순간을 남편 혼자 감당해야함은 물론이고, 아이가 나를 못보고 잠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우리집이 회사와 가까워 저정도...
4월만 지나면 괜찮을꺼야. 5월만 지나면 괜찮을꺼야라며 입에 발린 소리로 2달을 보내고 6월이 되었다.
어느날 오늘도 야근이냐고 묻는 남편의 말에
미안해. 6월만 지나면 괜찮아 질꺼야
라고 답했고. 남편은 세상 불쌍한 목소리로
지난달에도 그랬잖아. 5월 행사 끝나며 야근 안할거라고 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일었다. 4월에도 5월에도 그렇게 말했고 6월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휴직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해결할 시간 자체가 눈앞에서 순삭되는 것이 보이니 야근을 안할래야 안할 수 가 없었다. 난 그렇게 매번 2번째 출근에 한참 지각하는 불성실한 엄마이자 아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아이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2명을 키우는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