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출산은 다 200점짜리다.
누가 봐도 완연한 임신부의 형체를 갖추고 난 후에는 낯선 이들로부터의 인사가 조금씩 늘어갔다. 만삭의 몸으로 연차소진을 위한 휴가기간에 병원을 간다고 나섰는데, 날도 너무 덥고 몸은 한없이 늘어져서 슬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어귀에서 장사하시던 할머니가 대뜸 "축하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요즘은 아이를 가진 사람이 참 귀해서. 너무 축하해요. 아유 보기 좋네.
덕담이다. 그런 인사가 무색하지 않은 몸이고. 소소한 검진을 위해 동네 산부인과에 들어서니 당연히 병력과 임신력 등을 체크하는 질문이 오고 갔고, 경산이라는 말에 의사 선생님은 큰아이와 곧 태어날 둘째의 성별을 묻는다.
큰아이는 딸이고요. 배속에 이 아이는 아들입니다.
어머. 축하드려요. 정말 200점이네! 200점!
병원에서 나와 들른 약국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굳이 꼭 약을 먹어야 하냐는 할머니 약사선생님의 걱정 어린 시선과 함께, 아들이냐 딸이냐, 아유 200점이네 200점. 최고다라는 말이 쏟아졌다. 회사, 큰 아이의 어린이집, 병원, 약국, 산후조리원, 오다가다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큰 아이가 딸, 둘째가 아들이라고 하면 모두가 200점짜리 엄마라고 말한다. 정말 모두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아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부른 배를 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스몰토크가 가능한 모두가 말이다.
그 기저에는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고, 키우기 쉽다는 편견이 있다. 첫 딸을 낳았다는 슬픔을 달래는 씁쓸함과 큰 딸이 본인의 희생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대한민국 장녀에 대한 필요가 만든 말이 “큰딸은 살림밑천”이다. 거기에 그래도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믿음에 부합하는 두 번째 출산.
질문은 하지만 특별한 의미 부여하지 않고 대응하신 유일한 분이 둘째 분만을 위해 다니던 담당 의사 선생님 한 분뿐이었다. 20주가 채 되지 않은 어느 검진날. 초음파를 보시면서 무심하게 던지셨다.
아기 성별 말씀 드렸던가요? 성별 봐드릴까요?
여기. 뭐 있는 거 보이시죠?
그게 다였다. 물론 큰아이 성별을 묻긴 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칭찬받아 마땅한 모범엄마라는 뉘앙스를 던지시지 않았다. 그저 큰 아이 성별은? 아. 딸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 그게 다였다. 그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임신도 성별도 내 의지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를 품에 안는 것도 하늘의 뜻이고, 성별 또한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난 나의 의지로 움직였고, 행동의 결과로 난 아이를 품에 안았고, 그 조합(?)이 뜻하지 않게 모두가 좋게 생각하는 조합으로 완성된 것뿐. 미국에서는 인공수정의 과정에서 성별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도 듣기는 했지만..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만큼은 그건 신의 영역이다. 그리고 아들이건 딸이건 그저 감사하고 귀한 아가이고, 그 아가가 건강하게 태어나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까지의 모든 순간은 다 어렵고 소중하다.
아들이 생겼다고 우는 집도 보았고, 딸이 생겼다고 괄시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딸-아들 조합인 것은 감사한 일일 수 있으되,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여태껏 우리 엄마와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집을 '옥진이네', 내지는 '옥진엄마, 옥진아빠'로 불렀다. 그리고 이제껏 우리 딸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나를 '호연 엄마'라고 불렀다. 그것이 당연했다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나를 두고 우리 시아버지는 '현보 엄마'라고 불렀다. 둘째 아이가 딸이었다면 시부는 나를 뭐라고 불렀을까? 여전히 큰 아이 이름을 붙여 불렀을까? 새로 태어난 둘째 아이의 이름을 붙여 불렀을까? 몹시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