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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목 Mar 12. 2019

올레길에서 조금씩 바뀌는 것

규슈올레  이즈미 코스

   화창한 봄 날입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하늘은 깨끗합니다. 바람도 차갑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고글 아래쪽 코와 빰에 선크림을 바르고 두꺼운 점퍼는 선반 위에 둡니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던 비옷 대신 생수 한 병을 추가로 가방에 담습니다. 규슈올레 이즈미 코스 출발 지점은 이쓰쿠시마 신사입니다. 신사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기념 배지를 받아 배낭에 달면서 어깨끈 길이도 맞춥니다. 물 몇 모금 마시는 것은 걷기 시작을 알리는 내 나름의 신호입니다. 몸에 신호를 보냅니다.



   유채꽃 서너 줄기가 한 무더기로 피어난 길가에 멈춰 서서 쭈그리고 앉습니다. 꽃이 따뜻한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것과 전봇대와 함께 언덕 위로 쭉 이어지는 길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걷는 사람이 사진 한 장에 담기도록 카메라를 이 각도 저 각도로 맞춰봅니다. 고메노쓰가와 강의 작은 지류가 옆으로 흐르는 조그마한  소학교를 지납니다.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둑길에서는 걷는 사람 대부분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사진기나 핸드폰을 꺼내 풍경을 찍습니다. 찍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규슈올레의 아름다운 풍광 몇 곳을 고른다면 이곳도 후보지입니다. 저도 여기를 지나면서 몇 번이나 셔터를 눌러댔는지 모릅니다. 고가와 댐 호수 끝자락에 매화꽃이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가까이 가면서 사진을 찍는데 묵답에 높게 자란 매화나무 아래에서는 아예 사진기를 놓고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기도 내려놓고 좀 쉬어가야 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 자리입니다.

   


   이즈미 코스는 두 번째 걷는 길입니다. 걷다 보면 다시 보는 곳도 있고 첫 번째 왔을 때 보지 못한 풍경들도 있습니다. 눈에 익은 모습은 반갑고 처음 만나는 곳은 새롭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올레길을 오래오래 걷고 싶은데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서 좀 무리가 되었는지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마음은 세상 사방을 돌아다니는데 몸은 올레길 한 코스에 헐떡거리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에 여러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여러 가치를 부여할 것입니다. 딸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올레길을 걷는 가장 큰 의미는 딸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라고 씁니다. 올레길에 올 때 여권을 먼저 챙기고 그다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카메라와 관련된 것과 편지를 쓰고 보내는 문구류입니다. 걷고, 찍고, 쓰는 것에 중요한 것부터 순서를 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걷는 것이 전제되어야 찍거나 쓸 수 있는 것이기에 걷는 것이 가장 앞선 순위입니다. 그다음은 짐 챙기는 비중과 같습니다. 예전에는 카메라 챙기는 것에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편지 쪽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촬영을 하기도 하고 아예 사진기를 꺼내지 못해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편지도 쓰기도 하고 못쓸 때도 있습니다. 아쉬움은 후자가 더 큽니다. 올레길에서 걷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진 찍기에서 편지 쓰기로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변화입니다.  길을 걸을 수 있고 걷는 그 길 위에서 사진을 찍고 편지를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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