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재희>,《대도시의 사랑법》리뷰
�연관곡: 핑클, <영원한 사랑>
원래는 A라는 목적을 갖고 어떤 장소에 갔다가 우연히 그 옆에 있는 B를 발견하고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다. 내가 박상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서점의 북토크에서였다. 사실 나는 그 자리에 박상영 작가를 보러 간 것이 아니고, 그 몇 달 전에 <쇼코의 미소>를 무척 감명 깊게 읽은 터라 박 작가와 토크에 동석한 최은영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서 갔다. 처음 내 눈에 박상영 작가는 그저 최은영 작가님 옆에 앉은, 덩치와 인상이 좋은, 초면의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박 작가님은 덩치와 인상만큼이나 입담도 좋아서, 자칫 진지하기만 할 수도 있었던 그날의 북토크에 잔잔한 웃음을 주었다. 그의 말은 웃음이 나는 동시에 어딘가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는데, 토크 중에 무심히 던진 ‘저는 사랑이 굉장히 과대평가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은 그 자리가 끝난 후 며칠이 지나서도 어쩐지 기억에 남았다. ‘저런 생각을 가진 소설가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어떨까’하고 처음으로 그의 소설에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은 소설을 읽다가 작가가 궁금해지는데, 작가를 만나고 나서 그가 쓴 소설이 궁금해진, 특이한 케이스다.
<재희>는 흔히 말하는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사랑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이 만나 지지고 볶고 사랑하는 이야기보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사랑스러웠고, 뒷맛은 헛헛했다. 여성에게 정조관념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걸레’ 소리를 듣는 재희와 동성애자인 영은 공통점이 많다. 둘다 남자를 좋아하고, 자주 바꾸며, 남자 보는 눈은 더럽게 없어서 ‘가당찮은’ 남자들만 골라 만났다가 상처를 받고, 때로는 아주 잔인하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규범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둘은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는 서로의 비밀을 고이 간직한 채, 동병상련 내지는 동지애 같은 것으로 끈끈하게 엮이어 있다. 이렇게 사회가 ‘정상’으로 용인하는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운명을 타고난 듯한 두 존재가 만나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하나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여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둘의 관계가 영원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은 하늘 아래 같은 색조가 없는 법이다. 처음엔 나와 색깔이 비슷한 줄 알고 가까워진 상대도 지나보면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하고, 같은 운명처럼 보였는데 각자 갈 길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영 평범한 삶을 살 것 같지 않던 재희는 술을 줄이고, 남들처럼 스펙이란 것을 쌓아 대기업에 취업하더니, 드디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안정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급기야는 영이 그녀를 위해 언제나 냉동실에 넣어두던 말보로 담배까지 뚝 끊어버리고, 3년을 꼬박 연애한 남자와 결혼을 하는, 몹시도 ‘정상적인’ 선택을 한다. 결혼식 사회자 선정까지도 관례를 충실히 따르면서. 어쩌면 재희는 영과 처음부터 처지가 꽤 다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겉보기엔 답 없는 별종같았지만, 사실 재희는 서울 시내에 신혼집을 떡 마련할 만큼 잘사는 집 딸내미로 추정되며, 뭐든 평균 이상으로 곧잘 해내는 능력도 있어서,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사회가 원하는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대로 성정체성을 바꿀 수도 없고, 결혼을 할 수도 없는 영과 그녀는 애초부터 다른 운명이었다.
슬프게도 그런 깨달음은 꼭 뒤늦게 찾아온다. 오랫동안 나와 같은 부류라고 믿었던 사람이 나와는 다른 세계로 떠나버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앞으로 그와 내가 다른 종류의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직감하며 서글퍼진다. 대학 4년간 지극히 이상주의적이고도 사변적인 이야기들을 소주를 마시며 밤새 참 심각하게도 나누었던 친구가 어느날 매우 현실적인 진로를 선택했을 때,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결혼이나 연봉, 재테크 따위의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마치 우리 엄마처럼 말하기 시작했을 때. 뭐, 나도 지금에 와서는 만만찮게 때가 탔고,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에는 현실적인 판단하에 직업을 선택했으며, 적당히 속물이 되긴 했지만, 그 애가 퍽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 애는 그저 나보다 몇 년 더 일찍 현실주의자가 되었을 뿐이었지만, 당시 나는 예전에 내가 알던 - 안다고 생각했던 - 그 사람이 저 멀리 다른 세계로 건너간 버린 듯했다. 우리는 싸구려 안주를 집어 먹으며 돈 안 되는 얘기에 눈을 반짝거리던 그 시절의 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십대의 비밀과 고통을 온통 함께한 재희가 떠나고, 빈집에 혼자 남은 영은 그때의 나와는 비할 수 없는 크기의 상실감을 느꼈으리라.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정말 과대평가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자주 사랑은 아름답고 순수하고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사랑은 집착과도 다르지 않고, 유치하고 이기적일 때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언젠가 끝이 난다. 천진함이 죄가 될 수도 있는 나이에 접어 들었다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사랑은 원래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재희>가 좋았던 건 그 지점에서다. 두 명의 아웃사이더가 만나 서로 보듬는 이야기는 사랑스럽지만, 친구든 연인이든 영원히 함께하는 관계는 현실에서 흔히 찾기 어렵다. 언제까지나 꼴통일 것 같던 재희가 결국엔 평범한 어른의 세계로 건너가 버리고, 영이 그녀의 결혼식에서 콧물을 흘리며 <영원한 사랑>을 부를 때, 나는 이 소설이 정말로 현실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현실의 사랑과 닮은, 영원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소설을 읽으며, 이 이야기는 과연 소설일까, 혹은 수필에 가까울까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했다. 주인공 ‘영’은 ‘상영’일까, 재희의 본명은 뭘까. 영이 지은이가 되고 재희가 재호가 된 것처럼, 지희나 재은이쯤 될까. 잠깐 생각하다가 소설 도입부에서 ‘동창들이 내 소설을 읽었다고 하면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야지’라고 속엣말을 하던 영을 떠올린다. 어떤 호기심은 그냥 덮어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이 소설에 픽션이 몇 퍼센트고 논픽션이 몇 퍼센트든, 재희라는 여자가 실존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그리 중요할까. 오랜 동지를 떠나보내고 빈방에서 홀로 냉동 블루베리 봉지를 뒤집던 영이, 지난 사랑을 잘 갈무리하기를, 다시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아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