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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May 30. 2019

슬픔에는 이유가 없지

모내기를 하다가

이팝나무꽃 지고 해지는 저녁 아까시꽃 진다. 지는 꽃이야 질만해서 지지. 지는 꽃더러 진다고 우는 건 내 일. 하기야 꽃이 무슨 죄일까. 층층나무꽃이어도 슬프고 팥배나무꽃이어도 슬프지.

슬픔에는 이유가 없지. 꽃이 피어 슬프고 잎이 푸르러 슬프지. 모 뜬 자리에 허리를 구부려 모를 꽂으면 이게 그래도 먹고 살자고 심는 모인데 죽자고 심어도 끝이 없어서 슬프고 모내기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뻐꾹뻐꾹 뻐꾸기 울어 슬프지.

산들은 저 혼자 푸르고 나무들은 저마다 왁자지껄 청밀밭은 온 몸을 구부려 바람을 비껴서는데

가끔은 나도 비껴서있고 싶었지. 비껴서서 멀리 가는 것들을 보고 싶었는데

꼭대기 너머 구름
구름을 보다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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