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식의 현실
직장인들에게 ‘주인의식’은 몸담은 직장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많은 경영자와 상사들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의 함양을 주문한다. 그들이 말하는 주인의식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하고, 회사 경비를 내 돈처럼 아껴 쓰고, 회사의 물건을 나의 물건처럼 소중히 여기고, 사무실을 내 집처럼 청결하게 쓰라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하면 남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의 근성이 아니라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의식과 태도가 직장에서의 주인의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바람 같지 않다. 사무실 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 하나 없고, 업무용 차량은 지저분하기가 짝이 없으며, 창가의 화분은 말라죽어가는데 물 한번 길어 나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쯤 되면 주인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질책이 터져 나온다. 자기 집 같으면, 자기 차 같으면, 자기 화분 같으면 저렇게 그냥 둘 리 없고 자기 일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원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하는 경영자와 상사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오죽 답답하면 그랬을까. 하지만 그 답답함은 자신들의 논리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직장인에게 주인의식을 찾기 힘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사무실은 나의 집이 아니라서, 회사 차는 나의 차가 아니라서, 사무실 이전할 때 축하 선물로 들어온 항아리만 한 화분은 나의 화분이 아니라서다. 사무실, 회사 차, 대표이사 앞으로 온 화분의 주인은 회사이지 직원이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직원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주인도 아닌 사람에게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완전한 주인의식이 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책임은 있지만 권한이 없는 '반쪽짜리’ 주인의식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은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는 구조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지는 것이다. 권한은 당연히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부여한다. 누군가가 마음대로 자신의 권한을 정할 수 없다. 이 말은 곧 주인의식을 갖고 알아서 일을 한다고 해서 권한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의식의 여부와 관계 없이 직장에서 하는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결국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나서서 일을 하려 들면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떤 직원이 권한도 없이 책임을 떠맡으려 하겠는가?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려는 태도에는 애꿎은 손실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 권한이 없더라도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떠안는 태도는 때로 멋들어져 보인다. 직장생활에 관한 숱한 강의와 책들에서 나오는 얘기다. 스스로 일을 찾고 만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직장인이 되라고. 그리고 이런 자세가 윗분들이 생각하는 주인의식의 표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주인의식에는 책임이 따르며, 직원의 입장에서 그 책임은 '손실의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사무실 이전 때 선물로 들어온 행운목 화분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에 주인의식이 발동해서 열심히 가꿨다. 그런데 어느 날 잎이 갈색으로 마르기 시작하더니 죽어버렸다. 가만히 뒀으면 누구의 책임도 아니거나(직원들의 생각) 모든 사람의 책임이겠지만(윗분들의 생각), 누군가 손을 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손을 댄 사람의 책임이 된다. 게다가 행운목이 잎을 풍성하게 늘려가고 줄기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는다고 해서 가꾼 사람이 얻는 이득도 별로 없다. 정기적으로 잎을 잘라내고 가지를 쳐줘야 하는 귀찮은 일만 늘어날 뿐이다. 시쳇말로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되면 독박을 쓰는 것이다. 주인의식을 가졌다가 괜한 손실을 입을 바에야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방법
이런 씁쓸한 사실들을 통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을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직원에게 주인의 권한을 주는 것이다. 주인의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주인의 일이고 노예의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노예의 일이다. 이 말은 곧 직원들이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면 주인의식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얘기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윗분들과 동등한 수준의 결정권, 인사권, 발언권, 그리고 그에 맞는 연봉을 주면 주인의식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 좋다는 주인의식 고취를 위해 모든 직원들을 주인으로 대접하려는 경영자가 존재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두 번째 방법은 주인의식을 갖고 하는 일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행운목 화분 가꾸기든, 사내 소통 활성화 프로젝트든, 고객 서비스 절차 개선이든 상관없다.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나서서 하는 일에는 결코 손실이 따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주인의식을 갖는 데 부담이 없어진다. 한 발 더 나아가,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넘어 이익을 보장한다면 금상첨화다. 일이 잘못되어도 질책당하지 않고 일이 잘 되면 응분의 보상을 받는다면 주인의식을 갖는 데 주저할 직원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시스템을 흔쾌히 받아들일 윗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걸림돌일 뿐이다.
주인의식은 독려나 설득, 결심이나 작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칼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주인의식이 나를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위치에 있어야 주인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피라미드 형태의 지위 구조에서 넓은 아래 부분을 차지한다. 맨 꼭대기, 혹은 그 근처에 있는 '주인' 혹은 '주인급' 사람들과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을 시킬 때는 노예처럼 고분고분하길 바라면서 일을 할 때는 주인의식을 찾는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주인도 아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주인의식 가지라는 주문은 근로계약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부당함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결론이 나온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 진짜 이유는 주인의식을 갖으라는 그 요구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차마 부당하다고 대놓고 얘기를 안할, 못할 뿐이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잘못인지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이 잘못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차라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 솔선수범 하자고 하는 게 낫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주인도 솔선수범해야 함은 당연하다. 주인의식 같은 그럴싸한 말로 직원들에게 부당한 요구 하지 말자. 계약 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