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 승진을 한다고?
직장인에게 '승진'만큼 달콤한 말도 없다. 승진은 조직 안에서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진을 빌미로 사람을 혹사를 시키기도 하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승진의 떡밥을 던져 묶어놓기도 한다. 인간의 명예욕은 의외로 강해서 승진은 직장인 최고의 덕목인 연봉에 비길 정도의 동기 부여를 하기도 한다. 특히 부하직원을 거느리는 '장'의 자리에 앉는 것은 단순히 직급이 오르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같은 과장이라도 실무를 하는 과장과 팀이나 부서를 맡은 과장은 호칭이 다르다. 앞의 과장은 '과장'으로 불리지만 뒤의 과장은 '팀장님'으로 불린다. 이런 은근한 차이가 직장인들에게는 승진에 대한 욕심과 바람을 부른다.
하지만 모든 승진이 모든 사람에게 마뜩하지는 않다. 승진한 당사자는 더없이 기분 좋겠지만 주변의 시선과 생각이 의문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나마 평가 시스템이나 승진 체계가 명확하다면 의구심은 덜해진다. 마음에 들던 그렇지 않던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의구심 대신 불만을 가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지를 않아 답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의문이 생기는 때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두 가지 의문은 이러하다. "어떻게 저 무능한 사람이 승진을 하지?"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승진을 했지?"다.
첫 번째 질문은 더 높은 직책이나 직위를 맡을 정도의 능력이 없어 보이는데도 승진하는 사람에 대해 갖는 의문이다. 사장의 친인척이라던가, 정치 싸움에 능해서라던가, 줄을 잘 섰다던가 하는 이유가 있다면 동의는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은 '적자생존'의 원칙이 지배하기 때문에 능력이 아닌 그 조직에 적합하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때에 따라서는 대내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명목상의 승진을 시키는 일도 적지 않다. 대외 활동을 주로 하는 영업 파트의 '직급 뻥튀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전혀 없는 데다가 능력조차 딸린다는 평판을 받는 사람이 승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딜버트의 법칙(Dilbert Principle)'이다. '딜버트'는 1989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만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샐러리맨 출신의 만화가인 스콧 아담스(Scott Raymond Adams)는 자신의 경험과 독자들과의 소재 공유를 통해 딜버트에 직장생활의 이면과 애환을 그려냈다. 이 만화는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65개국에 연재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스콧 아담스는 독자들과 소통을 통해 직장인들이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이 경영진으로 승진하는 모습에 가장 많이 화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분석을 시작한 스콧 아담스는 1995년 월스트리트저널에 딜버트의 법칙을 처음 소개했으며 그 내용을 보강해 1996년 책으로 출판을 하기에 이른다.
스콧 아담스는 기업에서는 영리하고 똑똑한 직원보다 무능하고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직원이 성공하기 쉽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성공'이란 조직에서 생명을 길게 유지하며 결국은 경영에 관여하는 직책으로 승진하는 것을 말한다. 스콧 아담스의 분석에 따르면 무능한 직원일수록 조직에 해를 입힐 확률이 낮다. 무능한 직원은 중요한 일을 맡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직 내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고 승진도 손쉽게 하게 된다. 그리고 별다른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고 (실제 성과가 나오는 일은 유능한 실무자들의 몫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피해가 적은 경영관리 분야에 배치되어 경영진이 되는 것이다.
딜버트의 법칙은 연공서열이 승진의 요소로 작용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조직 시스템에 잘 어울린다. 무능한 사람이 크고 중요한 일을 맡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런 일들은 실패했을 때 피해가 크기 때문에 주로 유능한 사람들에게 맡겨진다. 달리 말하면 무능한 사람은 큰 실패나 큰 위험을 감수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출중한 능력도 필요 없는 일을 해가면서 무난한 평가를 쌓고 연공서열에 따라 지위를 올려가면 그만이다. 조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능하지는 않지만 조직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요하거나 리스크가 큰 일을 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굳이 도태시킬 필요는 없거니와 해고나 좌천의 부담감을 줄 정도의 마땅한 구실도 없다. 그렇게 실패의 위험이 적은 일들을 해가며 연공서열과 맞물린 평가를 받다 보면 무능한 사람도 직위가 오르고 관리 직책을 맡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별 다른 능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과장이 되고 팀장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할 정도로 유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승진이 유능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능한 사람이 조직에서 걸러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는 그런 원칙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많다. 유능하지 않은 사람은 굳이 유능함이 필요 없는, 실패를 하더라도 조직에 피해가 적은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 정도면 조직은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큰 이익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큰 손해도 끼치지 않았으니 좋게 넘어가면 그만이다. 딜버트의 법칙은 직장이라는 조직이 실패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며, 실패의 결과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준다. 도전 정신과 열정을 외치면서도 결국 실패하지 않는 것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대부분의 직장이 갖는 이중성이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승진을 했을까?
두 번째 의문인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승진을 했지?"는 승진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어긋날 때 생긴다. 승진을 할 이유와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상 새로운 직위, 직책에 오르고 나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직장생활에서 이런 일은 의외로 많이 접할 수 있다. 실무에서는 유능함을 마음껏 뽐내던 사람이 부서나 팀을 맡고 나서는 관리와 실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소규모의 조직을 처음으로 이끌어보는 사람에게 시행착오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극복을 하지 못하고 무능력만 보여주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교육학 교수를 지낸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이러한 현상을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으로 설명했다. 피터의 법칙을 한마디로 하면 이렇다. "위계질서를 가진 조직의 구성원은 자신의 무능력이 증명되는 지위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단순한 이야기다. 어느 직책이나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승진을 하게 된다. 지금 있는 지위에서 무능을 보이면 더 이상 승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렌스 피터 교수는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무자가 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팀장에서 그 위의 부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팀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부서장에서 임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서장으로서 능력 발휘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서 엇박자가 생긴다. 각 지위에서 필요한 능력을 평가받아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이전 지위에서 보여주었던 능력에 의해 승진을 하는 것이다. 실무 기획 능력이 팀을 관리하는 능력을 보장할까? 부서 관리 능력이 임원으로서의 경영 능력을 담보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전 지위에서의 유능함은 새로운 지위에서 필요한 유능함의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기대하도록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전 지위에서의 능력이 새로운 지위에서 필요한 유능함을 전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렇다 보니 승진을 한 사람에게 새로운 지위에 맞는 능력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무능력에 당사자와 주변인 모두가 당황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무능력이 드러났다면 조직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조직 입장에서는 이미 승진시킨 사람을 이전 지위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을 했다가는 조직의 신뢰성에 금이 가버린다. 이런 상황은 무능한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든다. 무능이 드러난 당사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위에 걸맞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끝내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면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승진을 통해 공식적으로 능력과 가치를 인정했던 조직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난처해진다. 다행히 무능의 수준이 크지 않으면 리스크가 적고 중요하지 않은 지위로 재배치를 하는 정도로 타협을 보는 쪽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무능이 예상보다 클 경우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무능이 내보인 당사자가 자신의 진퇴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 난다.
로렌스 피터 교수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직책이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직원에 의해 점유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계질서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성과를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조직에서는 '무능력한 윗분'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피터의 법칙은 50년 전인 1969년에 등장한 이론이다. 피터의 법칙이 등장한 이후에도 수많은 경영기법과 조직관리기법이 나왔겠지만 로렌스 피터 교수가 파악한 경향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2018년 미네소타대학교의 앨런 벤슨(Alan Benson) 교수가 미국의 2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 사원의 성과 및 승진 관행을 분석한 결과, 이전 직책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승진을 시키는 경향이 여전했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 자리에 맞는 의식과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이전에 있던 지위에서 취하던 태도를 고수하게 되면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런 무능력한 우두머리들이 득시글 거리는 조직은 어떻게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무너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아직 무능이 증명되지 않은 단계에 있는 유능한 직원들이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상사가 말도 안 되는 기획을 들고 와서 닦달을 하거나 자신이 꼰대인 줄도 모르는 상사가 부하직원들을 사사건건 들볶고 괴롭혀도 어쨌든 일을 처리하는 유능한 직원들이 있으면 조직은 굴러간다. 로렌스 피터 교수 역시 "당연하게도, 아직 무능 레벨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이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몇 해 전 강백수라는 작가가 『사축일기』라는 소설을 냈는데, 그 내용 중에 '우리 회사의 7대 불가사의'라는 것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었다. 월급이 적을수록 업무량이 많다. 일을 빨리하면 퇴근이 늦어진다. 일을 못하면 회사 생활이 편하다. 일을 너무 잘하면 욕을 먹는다.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쟤가 입사를 했다. 그리고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불가사의는 '저 인간이 팀장이고', '저 인간이 부장이다'였다.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승진을 하는지, 저토록 무능력한 사람이 어떻게 상사랍시고 자리를 꿰차고 있는지는 직장인들의 영원한 의문이였던 것이다.
답을 내자면 이렇다. 저 인간이 팀장인 이유는 적당히 무능했기 때문이다. 저 인간이 부장인 이유는 그 자리를 지키기에는 너무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직이 돌아가는 것은 그나마 유능한 당신이 있어서다. 다만, 당신의 유능함을 위안을 삼는 데만 쓰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언젠가 지금의 능력을 담보로 더 큰 책임을 맡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저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유능을 지속하는 일에 대해 꾸준히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어떤 능력이 부족한지는 충분히 살펴두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막상 윗자리에 올라갔을 때 당황하는 수가 생긴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자주 떠올리자. 그것도 작은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