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성열 Nov 06. 2019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직장인의 소망, 경영자의 로망

'가족 같은 회사'라는 것이 있다. 사장은 부하직원을 자식처럼, 동생처럼 아끼고 직원은 임원을 부모 대하듯 경외하고 따른다. 화기애애하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경영자는 직원들이 기업의 목표 달성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감사해하고 직원은 끝까지 자신을 보살펴주고 지원하려는 경영자의 노력에 감동한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다. 그래서 가족 같은 회사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망이며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오래된 소망이다.


실제로 가족 같은 회사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 다닌다는 직장인을 만나기도 어렵고 가족 같은 회사를 운영한다는 경영인을 직접 대면하기는 더 힘들다. 그저 구인구직 사이트에 '가족 같은 기업 문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실 분' 같은 말이 떠돌며, 가족 같은 회사를 경영한다는 경영자의 칼럼과 인터뷰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소망하고 기대하게 된다. 어딘가에는 분명 가족 같은 회사가 있어서 누군가는 행복이 넘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다.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을수록 바람은 더 간절해진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부러움은 더욱 커지고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약육강식의 룰이 만개한 아프리카 초원인 듯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소망과 기대가 만들어낸 가족 같은 회사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현실은 환상 앞에서 더 너절해질 뿐이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환상의 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상이 그렇듯이 가족 같은 회사도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허구의 산물이다.


가족과 회사의 근본적 차이

일반적으로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을 통해 구성된다. 가족이 다른 사회 집단과 구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조건을 회사라는 집단에 적용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가족이라는 단어로 꾸미기가 어렵다. 간혹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는 있지만 그것은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가족 회사'이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은 비록 구성 조건이 본래의 가족과 다를지라도 여러모로 가족의 속성을 담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일종의 레토릭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가족과 회사는 근본적인 차이가 너무 크다.


먼저, 존재 목적에 차이가 있다. 가족에는 목적이 없다. 가족은 가족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무런 목적이 없다. 무엇을 하기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가족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반면에 회사는 목적이 있다. 목적이 없이 만들어지는 회사는 없다. 하다못해 이름만 있는 페이퍼 컴퍼니나 유령회사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집단이 목적을 갖는다면 그 구성원들 역시 집단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회사의 직원은 회사의 목적을 위해서 선발되고 배치된다. 회사의 목적 달성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직원이다. 이와 달리 애당초 목적이 없이 존재하는 가족의 경우 그 구성원인 아내, 남편, 엄마, 아빠, 아들, 딸은 그냥 구성원으로만 있을 뿐이다. 


집단의 존재 목적의 차이는 구성원의 자격 여부를 가른다. 아무리 가족 같은 회사라고 해서 아무나 가족이 될 수는 없다. 직원은 회사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적합한 자격을 갖추어야 구성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에게는 목적에 부합하는 자격 따위가 처음부터 없다. 엄마가 되는 것은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결합을 통해 후손을 낳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그 아이가 자식으로서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교감한 결과일 뿐이다. 엄마의 자격, 아버지의 자격 같은 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말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품성과 의무를 강조한 수사일 뿐이지 목적에 부합하는 자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집단과 구성원과의 관계가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되느냐도 차이가 있다. 직원과 회사는 계약으로 규정된다. 관계의 밀접함이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고 해도, 그 관계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직원이 노동을 제공하면 회사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한다는 계약에 있다. 그리고 직원은 회사와의 계약에 준하여 (회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행위를 하고 회사 역시 계약에 따라 직원을 처우한다. 이처럼 회사가 그 구성원인 직원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회사가 법적 인격체인 법인(法人)의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그 범위나 구성원의 관계가 법률로 규정되기는 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집단이 구성원들과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명확하게 말하면 계약을 맺을 수가 없다. 가족은 특정 형태의 집단을 일컫는 말일뿐이지 그 자체로서 어떤 인격이나 지위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가족과 가족 구성원 간의 계약은 애초부터 성립이 되지 않는다. 비록 가족 구성원이 명목상의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이행하는 기준은 계약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 도리일 뿐이다.


회사와 가족은 내부의 위계질서에도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운영된다. 이는 회사의 목적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직원들은 수직적 위계질서 안에서 지위를 부여받고 각자의 지위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또, 필요한 경우 위계질서 안에서의 직원들의 위치는 변경될 수 있으며, 호칭이나 위계의 형태도 바뀔 수 있다. 반면에 가족의 위계질서는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평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하지만 그 권위와 의무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위계질서의 속성도 유동적이어서 과거 가부장적 전통에서는 서열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했지만, 근래에는 수평적인 위계질서로 변화되고 있다.


가족을 찾아대는 이유

가족과 회사의 이런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가족과 회사는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 말고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서로 다른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같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거나 그런 회사가 되고자 하는 곳들이 많다. 근본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끝끝내 양립할 수밖에 없는 두 개념을 뒤섞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직원의 입장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소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좀 더 마음 편한 분위기에서, 회사에 정을 붙여 가며 일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하지만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은 회사의 편의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다.


가족 같은 회사에는 회사가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고, 직원들끼리 가족처럼 돈독하게 지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거기까지만이라면 아주 훌륭하다. 그렇게만 한다면 정말 가족 같은 회사라고 내세울만하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은 회사가 직원을 옥죄이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가족이라는 말을 앞세워 회사에 대해 충성심을 갖도록 몰아세우는가 하면, 희생을 강요하고, 회사가 책임져야 할 손해를 가족끼리의 고통분담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직원의 양보와 희생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만들 때 가족이라는 단어가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다.


가족 같은 회사를 이런 식으로 써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가족이라는 말을 앞세워 회사에 충성심을 갖도록 몰아세우는 것은 동기부여의 요소가 부족하거나 동기부여를 위한 투자가 아까워서다. 동기부여를 유도할 수 있는 요인이 적절하게 구비되어 있으면 가족 같은 수사는 부수적이다. 직원의 충성심이나 애사심에 대해 회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약속해주면 그만이다. 그런 것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동기부여에 여력을 쓰고 싶지 않으니 입으로 때우려 드는 것이다. 만약 충분한 동기부여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 타령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있는 재료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무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가족이라는 말을 앞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좀 더 노골적이다. 일은 더 시키고 싶지만 대가는 더 주고 싶지 않거나 더 줄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직원이 일을 하면 회사는 그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일을 더 많이 하면 더 많은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 직원에게 대가 없이 일을 하도록 희생을 부추기는 것은 회사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배우면서 일하실 분'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속여서 '열정 페이'를 지급하는 부류와 그 사악함에 있어서는 동급이다.


회사의 손해를 고통분담하자며 가족 같은 관계를 들먹이는 것은 회사의 무능과 사악함, 또는 엉망인 회사의 상태를 보여준다. 회사가 일을 방향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직원이 일을 했으면 그에 맞게 대가를 지급하면 그만이다. 회사와 직원은 그렇게 계약을 맺은 관계다. 회사의 결정에 의해 손해가 생겼다면 그것은 회사의 무능 때문이다. 그런 손해를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말 한마디로 직원에게 공동부담시키는 것은 회사의 사악함이다. 직원에게 손해를 전가하는 사악함을 가지지 않아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때는 회사 상태가 엉망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가족을 위한 회사

한솥밥을 먹는 사이인 '식구(食口)'라는 의미에서 회사는 가족과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함께 밥을 먹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삶을 이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일을 하는 목적에 세 끼 밥을 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행위를 함께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도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다. 직장인들은 그 의미를 잘 안다. 그래서 함부로 가족 같은 회사를 운운하면 가 '족' 같은 회사라고 비아냥대는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의 조직문화를 정리한 'Culture Deck'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팀이다, 가족이 아니다.(We're a team, not a family.)" 조직은 만들어진 목적에 맞는 생김새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목적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목적을 위해서 적당한 운용 기법이나 스킬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런 것들이 조직에 고유의 성향을 부여하거나 색깔을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이 변하지 않는 이상 조직의 본성이 바뀔 수는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일을 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가족이 될 수는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슷한 구석을 찾아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농구를 야구처럼 한다거나 바둑을 장기처럼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굳이 가족 같은 회사가 될 필요 없다. 직장인들은 자신이 왜 회사에서 일하는지 잘 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가족 같은 회사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가족을 엮는 긍정적인 요소인 정(情)과 신뢰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들이 원하는 회사는 가족과 같은 회사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회사다. 건강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우를 하며 가족들과 함께 할 충분한 시간을 위해 눈치 보지 않고 컴퓨터의 전원을 끌 수 있는 그런 회사 말이다. 가족 같은 회사는 회사의 지나친 욕심이다. 그리고, 세상 그 어떤 가족도 자녀를, 아빠를, 엄마를 해고하지는 않는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가족이라는 말로 회사를 꾸미려 들지 않아야 한다.

이전 13화 무능한 사람이 승진하고 승진한 사람은 무능해지는 이유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생각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