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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Sep 09. 2023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초보 운전자는 아니다.

장롱면허의 희망




흔히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장롱면허인 상태로 운전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운전 초보자라고 봐야 할까? 나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흔한 패턴은 이렇다. 수능을 막 마친 10대의 청년들 또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사람들이 시간이 조금 남는 때에, ‘이럴 때 면허나 따둬라’라는 부모님이나 주위의 권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큰 생각 없이 운전면허를 따는 경우이다. 물론 나도 이런 패턴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사실 운전 초보자라기보다는 운전 ‘미’ 시작자가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운전면허를 땄다는 건 이제 진짜로 운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회적 허용일 뿐이지, 운전을 제대로 시작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정말 운전 초보자라는 느낌은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라리 장롱면허인 상태에서는 내가 초보자라는 느낌이 덜하기도 하다.

그저 운전을 안 하고 있는 것뿐이지, 못한다는 느낌은 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면허를 따는 과정에서도 운전 초보자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당연하다. 운전면허는 쉽게 딴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운전면허를 너무도 쉽게 땄다. 그 부분부터 벌써 잘못된 게 아닐까? 세상이 나에게 왜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일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운전면허는 쉽게 땄을지언정 내가 운전 초보자가 될 것이라는 단서는 이미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드러났었다. 도로 주행 연습을 몇 번 시켜주시던 강사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하셨다. 주행 연습을 하다 신호에 걸려 잠깐 차가 멈춰있을 때였다.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있어 미처 몰랐는데, 고개를 살짝만 옆으로 돌리자 주황빛 코스모스가 들판에 가득 펴서 한들거리는 화창한 가을날이 차창 너머로 눈부시게 나타나 있었다. 바로 지척에 내가 놓쳐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던 세상이 펼쳐져 있어서 순간 꿈인가 싶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는 그때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이 강사님이 말하시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러니까, 아가씨 같은 경우는 말이죠, 말하자면 평소에 누가 운전할 때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누가 태워주는 차를 뒷자리에서 편하게 타고 다녔던 사람이지.”라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신호가 바뀌어 다시 급히 출발해야 했던 나는 당연히 그 말에 대해 아무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운전면허증을 막 받아 뿌듯한 마음에 가득 차 면허증을 지갑 안에 고이 넣어놓던 그 순간에서야 이 말이 다시 불현듯 떠올랐다.

어떤 계시처럼. 어쩐지 찜찜했지만 나는 그 말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시간이 지나 제대로 운전에 대해 도전하는 때가 되어서야 그 말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강사님이 하신 말의 뜻을 분석해 보면 이렇다. 아마도 내가 조수석에 앉아 말 그대로 운전자의 조수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운전에 관한 기능과 교통 흐름 및 신호체계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고 배운 바가 전혀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음, 너무 맞는 말이어서 지금에 와서도 전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매우 전문가다운 예리한 지적이었다.



운전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운전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운전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나는 운전 초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나에게 차라는 것은 누군가가 태워주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빠가 태워주시는 차를 탈 때 나는 뒷자리에 앉아 그저 멍하니 창밖 풍경을 응시하며 딴생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편하게 잠을 자기도 했으니 차는 나에게 크게는 출발과 멈춤만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나 운전에 대해 이렇게 완전히 무지한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것과, 어느 정도라도 아는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배경지식이라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나에게는 운전이라는 것은 완전히 신세계였고, 나는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여권만 손에 쥔 상태로 아직 그곳을 제대로 탐험해보지 않은 자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운전에 대해 무지한 것이 납득되는 고작 스물 초반의 어린 나이였다.

바로 차를 사서 운전을 할 것도 아니고 주위에는 운전을 못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모르면 필요할 때 제대로 배우면 되지 않을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히려 운전면허증을 땄기에 막연히 언젠가는 운전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희망을 안고 오래오래 장롱면허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적어도 대충 한 10여 년 동안은 말이다.

장롱 안에 면허증을 넣고 문을 꽉 닫은 채로. ‘나니아 연대기’에서처럼 옷장을 열면 펼쳐지는 새로운 모험의 세계는 뒤로 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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