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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Sep 12. 2023

첫 번째 운전 연수 이야기

운전과 지능의 관계





나는 운전 '미'시작자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다가 면허를 따고 한 십 년쯤 지나서야 운전에 대한 필요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이 없을 때 그런 순간들이 더러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불편하기는 했지만 난감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참을만한 불편함 속에 나는 무사고로 (운전을 전혀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면허 갱신을 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그때 약간 충격을 받았다. 운전을 하지 않은 상태로 10년이 지났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사실 운전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10년이 지나면 재시험이라도 쳐서 자격증을 갱신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우려와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과 디자인만 살짝 바뀐 운전면허증이 너무 순순하게 다시 내 손에 쥐어졌다. 이래도 되나?



운전을 하지 않은 채로 강산이 변할 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자각이 들자, 나는 다시 '슬슬' 운전을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여 약간의 여유가 생겼던 참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슬슬’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어쩌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급할 것 없다고, 천천히 시작하면 된다고 느긋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지역에서 유명한 운전 연수 선생님을 알아본 뒤 첫 운전 연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수 시간을 다 마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희망과 설렘이 가득 찬 상태였다. 그런 부푼 마음을 안고 연수 10시간을 다행히 무사하게 마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연수 강사님의 조심스러운 완곡 화법에 의하면 나는 ‘조금 걱정되는 학생’이었다.

비록 연수는 끝났지만 반드시 남편과 연습을 충분히 하라는 강사님의 당부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정 안되면 다시 연락해서 수업을 더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도 하셨다.

나는 이때 막연하게 알았다. 내 희망이 차문을 박차고 가출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보통 운전 연수를 몇 시간이나 받나요?"라는 질문을 수업 중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강사님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시며, 운전은 어느 정도 지능과 관련 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더러 머리가 좋아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 사람들은 운전 연수도 짧게 끝나곤 한다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능이 높은 사람이 운전을 잘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지능이 낮은 사람은 운전을 못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럼 '조금 걱정되는 학생'이었던 나는 뒷면에 속하는 사람일까? 물론 그 말은 강사님이 나를 비난하기 위해 하신 말이 아니라, 어떤 학생들을 칭찬하며 하신 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강사님은 훌륭하신 분이었으며, 우리의 관계 또한 좋았음을 서둘러 덧붙여본다.



그래서 나는 그 말에 속상하거나 상처받진 않았다. 다만, 괜히 내가 조금 찔렸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변명해 보자면 학창 시절 내 성적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나는 공부를 그럭저럭 하는 편에 속했기에 내 지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건 안다.



그럼 나는 왜 찔렸지? 잠시 고민해 본 나는 지능을 측정하는 부분도 여러 항목으로 나뉘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그중 특정 부분이 조금 낮을 수는 있겠다고 추측해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간지각능력 같은 부분에서 좀 부족한 게 아닐까? 운동에는 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것과 관련된 걸 수도?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아니니까, 운전을 잘하기 위한 특정 지능은 조금 낮을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나는 겸허하게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뭔가 부족하다면, 그리고 그게 '운전 지능'이라면 부족한 건 운전에 관한 배움으로 향상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냈다.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운전 연수를 더 받을 생각이었다. 뭐든지 반복 학습이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원래 운전 연수는 한 번으로 충분한 거라면서 단호하게 연수는 그만 받으라고 말했다. 대신, 이제 자신이 도와주겠노라고. 원래 그런 거라고? 대부분이 그렇다고?

나는 잔뜩 미심쩍은 상태로 '원래'와 '대부분'의 말을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쨌든 남편이 알려준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첫 번째 운전 연수가 끝나고 강사님의 자리는 남편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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