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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Apr 27. 2019

마음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

때로는 보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아 안녕?


 오늘은 그냥 이름 모를 제주의 골목을 누비면서 다녔지. 올레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들도 가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돌 던지기 놀이를 계속 바라보면서 문득 돌담이 눈에 들어왔어.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집 자체가 낮고 돌담을 쳐 놓은 곳이 많은데 그 돌담이 왜 그리 허술해 보이는지... 구멍이 숭숭. 곧 무너질 것 같은데도 사람이 휘청거릴만한 바람에도 꿈쩍도 않더라고.


 마음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너무 붙잡고만 있지 않았나 하는. 너를 인지하지 않고 살았던 시간도 후회스럽지만 마음이 너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내 안에 지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감정도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 내가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었기에 오는 분노, 불안, 슬픔이 자꾸 나를 한 발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마음이 너와 내가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음... 우리가 돌담처럼 살면 어떨까? 막아서서 지켜야 할 감정들을 지키고 너무 부정적이고 무조건적인 비판들은 때론 넘기고 가도록 서로를 지켜주는 거야. 아무리 허술하게 보이는 돌담도 빠르게 지어진 것은 아닐 거야. 돌을 쌓아보면 알겠지만 그 돌담을 쌓으면서 몇 번이고 무너지고 또 쌓고 했을 거야. 쉽지 않았겠지. 우리도 쉽진 않겠지만 서로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를 인지하고 또 대화하고 할 수 있다는 게 엄청 큰 발전이었다면 나는 너와 이제는 조금 성숙해지고자 해. 마음아, 우리 힘들겠지만 함께 나가보자. 우리가 서로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큰 만큼 우리가 더 잘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우리도 서툴지만 세상과 우리 사이에 지킬 것은 지킬 수 있는 돌담을 쌓아보자.


 고마워.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이제 돌아봐 달라고 소리 내어주었던 그 순간이. 이제는 또 다른 순간으로 나아가 보자. 우린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보기 시작했으니까.



 제주에 4주째 살면서 경이롭게 느껴진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돌담이다. 짧은 여행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


  전 여행에서 돌담은 무서운 것이었다. 운전을 하다 돌담이 보이면 나는 좁은 골목에 있었고 그 돌담 길에서 차를 긁지 않기 위해 내 정신은 거기에 팔려 돌담을 볼 여유가 없었다.


 제주에 유행처럼 들어온 한 달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한 달 살기는 나에게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회를 주었다.


 돌담에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돌담은 구멍이 뽕뽕 나 있다. 모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답답할까 뚫어놓은 숨구멍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돌담이 구멍이 있다고 쉽게 쌓인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이 매서운 바람을 이기려면 이 구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며칠 살아보니 알 수 있었다. 제주 바람은 매섭다.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고 태풍 이런 것도 아닌데 진짜 몸이 밀리는  바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쇠문, 나무 문으로 막아 놓은 곳은 오히려 쓰러져 있는 곳이 많다. 바람을 오롯이 막다 보니 그 힘을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바람을 스치게 두면 바람의 힘이 작아지고 그 안의 작물이나 집은 지킬 수 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니 내 마음엔 철판문, 나무문만 있었던 것 같다. 공격을 받으면 무조건 방어하고자 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묶어두고 막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제주의 여유 앞에서 문득 이 감정들이 폭발할 때도 있었고 오히려 사람이 없기에 내 감정의 폭발을 스쳐 지나가게 두었다. 막으려고 할 때는 안 막아지던 감정들이 그냥 두니까 오히려 조금 덜 힘들어짐을 느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허술하고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제주에서  돌담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감정이 스치고 지나갈만한 구멍들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강해야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걸어오는 싸움에 미친 듯 싸웠는데 이 싸움 끝에 강함보다는 약함이 승리보다는 상처만 남았다. 이제는 조금 더 허술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돌담을 통해 또 하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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