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지속된다를 읽고 시간과 슬픔을 주제로 글을 씁니다.
나는 어릴 때 강한 성격과 달리 자주 아팠다.
세 자매인 우리 집은 아프면 그제야 오롯이 나를 향한 눈길이 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된다. 형제자매가 많으면 마치 연인이 다른 정인을 만나는 것과 같은 질투심을 느낀다는 글귀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이제서 생각해보면 어린 나는 그 글귀처럼 자매들에게 질투를 하며 그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내가 아프면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로 나는 부모님의 하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내가 통조림에 손을 베어 꿰매었을 때, 자전거와 부딪혀 눈썹 위를 크게 꿰매었을 때 기억이 이젠 그 흉터처럼 조금 희미하지만 그 관심과 사랑이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독감에 걸렸는지 열이 많이 났다. 열이 나서 집에 누워 나가지도 못하고 집 안 천장의 얼룩의 모양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아파서였을까 나는 엄마, 아빠의 관심과 손길이 더욱 간절했다.
언니와 동생은 나를 두고 밖으로 놀러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속상했다. 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나는 물건에 화풀이를 했고 내가 던진 물건에 우리 집 유리창이 깨어졌다. 오히려 유리창이 깨어져 가장 놀란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거짓말로 그 사건의 간극을 채워나갔다.
어려운 환경에 그 깨진 유리창은 달력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유리창을 깬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은 지출 속상한 어머니의 힘든 노동으로 그 유리창은 채워졌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범인은 자수를 하지 못 했다. 아마 그때의 미안함을 사과할 용기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이 오랜 시간 속에서도 그 상처를 딛지 못한 범인이 언젠가는 자수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사람은 안타깝게도 이 유리창과 다르다. 잠시 달력의 힘으로 상처를 막고 또 새것으로 갈음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 상처를 완벽히 치료하기란 어렵다. 사람은 기억을 하기에 그 기억이 가슴 한편에 끝까지 꺼내놓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빠르고 나는 너무 느리다. 성숙하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도 가득하다.
언젠가 힘든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기억들을 지우러 갈까? 찬찬히 고민해보았지만 나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이 느린 내가 이 아픔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배운 것과 느낀 것이 너무도 많기에... 때론 이 느린 내가 너무도 좋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