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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Jun 04. 2018

4. 나, 아빠 엄마 딸 맞아?

“엄마는?...”

수영이는 식탁에 앉자마자, 

짜증을 부리며 엄마 눈을 피했다. 

“공주님 왜 그러지?”

엄마와 내 눈싸움을 알아채지 못한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뻔할 뻔자죠 뭐?”

오빠 민우가 나 대신 대답했다.


‘조게 오빠라구?’

끼어든 오빠가 얄미웠다. 

아버지 눈길이 내게서 민우에게로 옮겨가며 

아버지가 재차 물었다.

“뻔할 뻔자라니?”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진지나 잡수세요. 

찌개 식겠어요.”

엄마는 찌개 냄비를 아버지 밥그릇 가까이 붙여 놓았다.

내 대신에 오빠 민우가, 민우 대답 대신 엄마가 말을 꺼내 

정작 대답해야 할 나는 말을 할 제 자리를 빼앗겼다.


수영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오빠의 말을 피해 밥을 

한술 입안에 넣었지만, 밥이 아니라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참고 먹어야지.’

나는 꼭 참고, 밥을 먹으려는데 먹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눈물이 고이는가 했는데, 참을 사이도 없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쳐 닦았으나, 오빠가 보았다.

“엄마, 수영이 좀 봐요. 또 밥상 앞에서 눈물 콧물 짜요.”

엄마와 아버지는 내 눈물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는데, 

오빠가 또 깨방을 놓았다.

“.......”


엄마는 민우 말을 그냥 넘기려는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보,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긴요?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시구려.”

“민우야, 무슨 일이니?”

아버지는 수영이에게 물으려다가 

수영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민우에게 물었다.

“반찬 땜에 그래요.”

오빠 말에 나는 오빠보다도 아빠가 더 미워졌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유일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모르다니···

“반찬이 어때서 그래. 수영아, 반찬 투정을 하면 못 쓴다.”

아버지는 수영이를 나무랐다.

‘얼씨구, 아버지는...? 수영이가 좀 좋아하는 반참 좀 해 주지.’

아버지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 밖의 말이 나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밥숟가락을 놓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고 자리에 누웠겠지만, 오늘은 이상스레 오기가 생겼다. 

수영이는 꾹 버티고 앉아 꼬약꼬약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런 수영이 모습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지켜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수영이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으며 

인사를 하고는 식탁에서 물러나 방으로 갔다.

아버지는 수영이를 찬찬히 보다가 엄마를 보았다.


“여보, 내 쟤, 도대체 반찬이 어떻다는 거야?”

수영이 반찬에 대한 궁금함을 꾹 참고 밥 

한 그릇을 비운 아버지는 궁금함을 물었다.

“왜, 어제 목살과 삼겹살이 싸서 좀 많이 샀다고 했잖아요.”

엄마는 언짢아하는 얼굴로 말했다.

“어저께 축협에서 샀다는 거 말야?”

“그래요.”

엄마는 시쿤둥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물었다.


“아무리 냉장고에 보관한다 해도, 육류 그것도 

기름기가 많은 돼지고기는 믿을 수가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래서 어제 오늘 내리 돼지고기 반찬만 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게 어때서 그러지?”

아버지는 퍽 당연한데 수영이가 왜 그러냐는 식이었다.

“수영이는 비계 있는 돼지고기를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싫어하면 했지···.”

엄마는 말끝을 흐리자,

“어서 속 시원하게 말해 보구려.”

아버지는 재촉했다.


“글쎄, 엄마는 오빠 좋아하는 것만 해 준다고 

심통을 부리는 거예요.”

말을 마친 엄마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오늘 저녁 반찬 이야기는 제 2라운드였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할 때였다. 

고추장을 풀어 돼지고기 요리를 하는 것을 본 수영이는

“엄마, 또 돼지야?”

하고 볼멘소리로 물었다.

“그래. 사다 놓은 거 먹어 치워야지.”

엄마는 좋게 대답하고는 수영이가 시무룩해 있자,

“네가 좋아하는 북어찜도 해 놨어.”

하고 수영이를 달랬다.


“내가 뭐 북어찜을 좋아해. 아빠가 더 좋아하지.”

나는 까탈을 부렸다.

“너도 좋아하잖아.”

“아니란 말야. 엄마는 맨 날,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

수영이는 삐쳐 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미 1라운드를 치뤘던 것이었다. 

행여 엄마는 수영이가 좋아하는 

다른 음식을 장만할 줄 알았는데, 반찬이 그대로여서 

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아하- 그랬었구나.”

아버지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서야 

뭔가 느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그걸 내가 알아듣도록 설명을 했어야 되잖아.”

아버지는 엄마가 조금은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도 참, 난 민우 좋아하는 것만 한다고 생트집을 잡는데, 

어떻게 하냔 말예요. 보세요. 

수영이가 좋아하는 북어찜도 있잖아요.”

엄마의 말이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 듣게 잘 달랬어야지. 걘 애잖아.”

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민우 너두, 오빠가 되어 가지고 동생한테 그게 뭐니? 

오빠가 모든 걸 참고 이해해 주어야지.”

엄마 얼굴이 일그러지자,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못마땅함을 민우에게로 넘겼다.

“걔가 뭐 오빠면 오빠 대우를 해 주나요? 

덩치가 좀 크다고 지가 꼭 누나처럼 설쳐 대는대요. 

그리고 오늘 일, 뭐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민우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동생이잖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두 참, 그러니까 애 버릇이 없단 말예요. 

도대체 엄마 말을 말같이 들어먹어 먹는 줄 아세요.”

아버지 말에 엄마도 못 마땅해 했다. 

아버지도 엄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애 하나를 

모자가 공격하면 걔는 어떻하란 말이야?”

아버지도 좀처럼 분을 삭히지 못하는 듯 했다.


“당신두 참, 나와 애가 뭐 어쨌단 말예요. 

쟤는 가뜩이나 하늘에서 저 혼자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식구들 편을 가르는 금을 긋지 마세요.”

엄마도 그 동안 삭혔던 분을 터뜨렸다.

“아빠는 몰라서 그래요. 

쟤가 엄마 속을 얼마나 썩이는 대요?”

민우가 엄마를 두둔하며 나섰다.

“민우는 엄마 아빠가 할 얘기가 있으니, 네 방으로 가라.”


“내가 데려온 자식이라도 된단 말이야? 

도대체 왜 당신은 수영이를 미워하는 거야?”

민우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아버지는 화가 났는지 원색적인 말을 했다.

“......”

아버지 말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는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왜? 말을 못해. 말 좀 해 봐요.”

아버지가 다그치자, 얼굴을 식탁에 묻은 

엄마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보, 나오면 다 말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어요?”


엄마 말 한마디 마디에 방울방울 눈물이 묻어 있었다. 

엄마 말을 들은 아버지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누그러졌다.

“생각해 봐. 당신이 날 그렇게 말하도록 했잖아-.”

“좋도록 생각하세요. 걔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애예요? 

당신과 내 아이 아녜요. 걔 잘되라고 하는 참견이지, 

내가 걜 왜 미워하겠어요?”

엄마는 양팔 위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식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즈음, 

수영이는 수영이대로, 민우는 민우대로 

숨을 죽이고 바깥 동정을 주시했다.


“여보, 그만 하구려. 내 당신 마음 모르는 게 아냐. 

그렇지만 애들에 대해서는 당신이 나보다 잘 알잖아. 

그런데 말야, 내가 보기에는 요즘 들어 당신은 

민우한테는 관대하면서도 수영이 한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버지는 엄마만 겨우 들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귀 가까이 대고 했다. 

혹시나 방에서 아이들이 엿들을까봐 그랬던 것이다. 

“이젠, 내게 수영이가 벅차단 말예요. 

저 혼자 어떻게 못하겠어요. 

그리고 걔는 제게서 자꾸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엄마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어허, 별 소릴 다하네. 내가 늘 이렇게 가까이 있잖아. 

내가 당신 말구 누가 또 있단 말야.”

아버지는 엄마 옆자리로 옮겨가, 

엄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에겐 수영이가 있잖아요?”

엄마는 가슴에 묻어 둔 이야기를 꺼내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애들이 듣겠소.”

엄마는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가 덜 풀린 모양이다.

“자-자아-, 그만 합시다. 당신 화장실에 좀 다녀와요.”


아버지 말에 엄마는 얼른 화장실로 갔다. 

아이들에게 눈물을 흘려 부스스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를 화장실로 보낸 아버지는 과일을 깎았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향커피도 끓였다.

조금 전 식탁 분위기와는 달리 식탁 가운데 과일을 놓고 있는 

지금은 그야말로 한마음 한가족 그런 분위기였다. 

식탁 위 과일도 과일이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해서, 

그리고 오빠와 나는 엄마와 아버지 분위기 때문에 

또 엄마와 나는 눈물을 흘려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정말이지 눈물은 온 마음에 걸쭉한 것들을 다 닦아나는 

세척수인 모양이다. 그러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지.

“여보, 커피 맛이 어때?”

아버지는 머그잔 가득 향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향커피 향이 은은한 달빛처럼 식탁에서 마음으로 번져왔다.

엄마는 커피를 입에 대다 말고는,

“당신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엄마의 그윽한 눈빛이 

수영이 마음을 싸아 하게 만들었다.


“아빠, 나도 커피 좀 줘요.”

나는 어린이가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엄마만을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괜한 마음이 들어 

허튼 말이 툭 튀어나왔다. 

왜 그런지 모른다. 아버지가 엄마를 가까이 하면, 

또 엄마가 아버지를 가깝게 대하면 나는 심통이 났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이 툭툭- 튀어나온 것이다. 

“야! 니 꼴을 알아라.”

엄마 아버지 대신에 오빠가 또 참견이었다.

“아빠, 향기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조금만 주세요.”

나는 향커피를 달라고 했다.


“커피 마시면 안돼.”

아버지 대신 엄마가 말했다.

‘역시 엄마는 날 미워 해.’

풀어졌던 내 마음이 다시 싸매어지기 시작했다.

“맛만 보는데 어때요? 

미국 아이들은 잘만 마시잖아요?”

“여기가 미국이니, 네가 미국 아이이니?”

오빠가 또 끼어 들었다.


수영이가 아버지에게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즉시 아버지가 적절한 얘기를 했더라면 수영이 마음이 

싸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아버지 대답 대신 오빠와 엄마가 하는 바람에 

수영이 마음은 다시 쭴매지기 시작했다.

“커피가 묽기는 하지만 너희들에게는 안 좋아. 

그리고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고,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잖아.”

아버지는 나를 타일렀다.


“향이 좋지? 많이 마시지 말고 한 모금만 마셔 봐.”

수영이는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아버지는 수영이 생각과는 딴 판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아려지더니, 눈물주머니를 끄르려 했다. 

수영이는 애써 눈물주머니를 조여 맸다. 

그리고는 바나나를 집어 껍질을 벗겼다. 

속옷을 벗는 것처럼 주루루 바나나 

껍질이 까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엄마와 아버지는 아주 아주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커피를 마시는 게 마치 아버지의 

사랑을 모두 마셔 버리는 것 같았다. 

수영이는 바나나를 먹지 않고, 자꾸 바나나 옷만 벗겼다.

“왜 먹지 않고 까기만 하니?”

“엄마, 아버지 잡수시라구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래?”

아버지는 발가벗은 바나나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야! 맛이 그만인데. 우리 공주님이 까서 그런 게 아닌가?”


아버지는 언짢아 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녜요. 엄마가 좋은 걸로 사서 그래요. 

엄마가 과일 고르는 데는 귀신이잖아요.”

수영이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빗장을 걸며 말했다.

“그야 그렇지. 좋은 물건에 좋은 솜씨가 서로 만났을 때, 

그 맛이 더하는 법이잖아.”

아버지는 연실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아버지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너도 먹어라. 왜 안 먹니?”


아버지는 수영이가 벗겨놓은 바나나를 주었다. 

수영이는 받지 않으려다가 마음을 돌이키고 받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또 엄마 아버지 마음을 

건드려 놓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어서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이제 들어가요.”

나는 아버지가 준 바나나를 들고 일어섰다.

“저두요.”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빠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나는 방으로 들어 와 거울을 보았다. 

아버지를 빼어 쐈다는 눈매, 엄마를 닮았다는 코와 입, 

아무리 보아도 아버지와 엄마를 닮은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진짜로 엄마와 아빠 딸일까?’

나는 거울 속에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생각에 잠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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