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로운 윤슬 Sep 06. 2018

꿈이 밥 먹여주더라

첫번째 조각; 웹디자이너 입문기



초등학생 때부터 포토샵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친구와 노는 것보다 혼자서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고 배너를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다.

하교해서는 교복도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컴퓨터를 켜고 포토샵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나서는 '나 뭐 되려고 이렇게 헛짓거리하는지 몰라'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래도 독학으로 포토샵 공부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는 수학이 싫었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 쯤 한 대학의 학과소개 책자를 보게되었다.

그 때 보이던 '경영정보학과'.

난생처음보는 단어 조합이 신기해서 학과 설명을 읽어가는데 번쩍이는 느낌이 들었다.

경영과 컴퓨터를 함께 접목시켜 공부할 수 있는 과였다.


어릴 때 프로그래머나 해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컴퓨터를 뚝딱뚝딱 잘 고치는 남자들도 참 멋있어보였다.

문과를 들어오면서 컴퓨터를 전공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경영과 컴퓨터를 함께 배우는 학과라니! 이건 환상의 조합이었다.


'여기 떨어지면 재수해야되는데'라며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합격발표가 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캠퍼스의 낭만 따위


지루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끝내고 대학에 가서 캠퍼스의 낭만을 누려야지 기대가 잔뜩 부풀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 따위는 없었다.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몇 개 골라듣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예쁜 캠퍼스를 거니는 기분은 좋았지만

학기 초반에 아웃사이더 무리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과 생활은 전혀하지 않게 되었고,

회계수업에 치를 떨었으며 난생처음 들어보는 데이터베이스 수업에 멘붕이 와서 전과를 해야하나 끊임없는 고민을 했었다.


수업에 흥미를 잃다보니 지각할 것 같으면(지각해서 쭈뼛쭈뼛 들어가는 게 싫었다) 등교길에 방향을 돌려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다른 학교 구경을 가서 친구가 듣는 수업을 도강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생활하니 학점이 제대로 나올리가 있나


1학년 2학기 때 학점은 4.5만점에 2.2 였다.

학사경고 받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2학년 때부터 쌔가 빠져라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족했던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방학 때마다 계절학기는 필수였다. 


듣는 강의마다 필기 빼곡히 해가면서 혹시 놓치는 게 있을새라 강의 녹음을 하고,

강의 끝나면 수업 내용 잊기 전에 열람실로 달려가 녹음파일 들으면서 수업 내용을 정리했다.


매일 꾸준히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공부해놓으니까 막상 시험기간이 되면 바쁘지 않았다.

시험 기간일 때면 꽉 찬 열람실을 뒤로 하고

마음 맞는 친구와 카페에서 토론식 공부를 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 채워가면서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싫던 공부가 대학교와서 자율적으로 하게 되니 조금씩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열심히하다보니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결국 4학년 1학기에는 4.25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집안에서, 아버지 회사에서 장학금이 들어왔다. 

공부 머리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장학금을 받으니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은 따라가기 버거웠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과수업으로 html을 배웠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어려웠지만 비교적 쉬운 html소스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재미있었다.

포토샵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고퀄리티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고, 수업시간에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처음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도 있고, 인정도 받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웹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혜롭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고 싶었고, 훗날에 나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재택근무를 꿈꿔왔던 내게 웹디자이너는 아주 적합한 직업이었다.


여태 인생에 있어서 큰 목표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는데 웹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열정이 타올랐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컴퓨터학원을 등록해서 자격증 취득에 여념없었다.

친구들은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여행가기 바빴는데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루빨리 자격증을 따고, 웹디자인 공부를 해서 취업을 해야했다.


'정말 획기적이고 사용 편한 홈페이지를 만드는 유능한 웹디자이너가 되어야지'하고 다짐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오래된 관공서 홈페이지를 볼 때면 나중에 관공서 홈페이지를 멋지게 디자인해야지하고 마음 먹곤 했다.

(훗날 나의 꿈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내가 꿨던 꿈들 뒷편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는 걸 저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