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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Sep 06. 2018

문과생의 코딩 동아리 생존기

세번째 조각; 인생은 사람을 남기는 것

일생일대의 고민


평소에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방학 때 java 프로그래밍 교육을 들어보라고 추천하셨다.

고민하던 나는 프로그래밍을 좀 안다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웹디자인하는데 자바가 필요할까?"

"잘 모르겠는데 웹디자이너들 자바스크립트도 알면 좋다던데.. 근데 자바랑 자바스크립트가 같은건지는 모르겠어"

친구의 말을 듣고는 눈에 불이 번쩍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자바와 자바스크립트는 전혀 다른 언어였다)


디자인 비전공이라 웹디자이너로서 입지를 다지기에 불리한 여건이었는데,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웹디자이너라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

고민할 것도 없이 자바 특강을 신청해 방학 동안 교육을 들으러갔다.

지금도 난 for문을 써가면서 별 찍는게 제일 싫은데 그 때는 오죽 싫었으랴.

(지금껏 많은 선생님들께 코딩 수업을 들었는데, 왜 항상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로직을 이해하게 좀.. 가르쳐주면 안 되나..)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짰다.

스크래치로 게임도 만들어보면서 흥미를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사님께서 멘토로 계시는 코딩 동아리를 알게 되었다.

그 동아리는 방학 때면 오전10시부터 오후9시까지 하루종일 코딩공부만 하는 곳이었다.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동아리에 가는 걸 출퇴근이라고 말했었다) 그냥 졸업할 때까지 코딩에 푹 빠져있다가 취업해나가는 그런 커리큘럼이었다.

그 동아리는 학점도, 스킬도 없는 학생들을 모아서 코딩 교육을 하고 취업을 하는 것이 목표인 동아리였다.


그 당시 나는 취미로 드럼을 배우고 있었는데 밴드에 들어가니마니 얘기가 나오고 있던 시점이라 심히 고민이 되었다.

동아리에 들어가는 즉시 세상과의 유희는 잠시 멀어져야만 했다.

심지어 남자친구를 볼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헤어질 각오까지 하고 들어와야한다면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코딩 공부를 해야하는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학과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언니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그 언니는 나의 고민을 정성껏들어주었고, 집에 가는 길에 장문의 카톡을 내게 보내왔다.






언니도 휴학을 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경험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인생에서 큰 자산으로 남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동아리에 들어가면 평생 기술을 남길 수 있고 그 시간만큼의 경쟁력이 생길 거라는 말을 해주셨다.

언니의 카톡에 마음을 결정하고 동아리에 합류를 결심했다.



담당 교수님의 관리 하에 만들어진 동아리였기 때문에 들어갈 때도 면접이 필요했다.

잔뜩 긴장에서 들어갔더니 꿈이 뭐냐고 물었던가..

그래서 나는 10년 후를 생각했을 때 웹디자이너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그러기엔 여기서의 코딩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대답했었다.

그랬더니 면접관으로 있던 선배언니는 이 동아리에는 10년 후를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고 너무 훌륭해서 안 되겠다고 그랬고, 교수님께서는 내 학점을 보고 왜 이렇게 높냐고 거기에는 3.0 이하만 들어올 수 있다는 농담을 하셨다.

공부에 자신감이 없을 때였는데,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왔구나싶어서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그렇게 면접에 합격하고 동아리 생활이 시작됐다.









Hello World!


교육 첫 날 동아리 사무실로 갔다.

10명 남짓되는 선배들이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IT회사 분위기 같았다. 좀 밝은 PC방 같기도 하고.


신입생은 겨울방학 2달동안 웹 기획에서부터 개발 구현까지 다 끝내는 커리큘럼을 이수해야한다고 간단히 설명 듣고 시작했다.


스프링프레임워크 설치하고, DB설치하는데 뭔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설치하고 환경설정하는 일만해도 엄청나게 복잡했다.

선배가 주는 매뉴얼을 보고 따라하는데도 어려워서 옆에서 선배들이 도와줬다.

'나는 디자이너가 될거고, 개발은 내 취미야'라고 생각했던 탓에 열의도 없었다.

모니터를 보기보다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눈알 굴려가며 선배들을 구경했다.


추웠던 겨울이라 난로에 불 지피기 위해 기름통 들고 근처 주유소에가서 기름을 사와야했다.

기름 사기 위해서 선배 및 동기들이랑 내기하는게 재미있었다.

과 생활을 해보지 않았던터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만해도 신이 났다.


그러니 개발실력이 늘 턱이 있나.

게시판을 만들기 퀘스트를 깨야했는데 값을 넘기는 파라미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모르겠다는 말만 하니 옆에서 멘토선배가 거의 다 짜줬다.

외계어도 이런 외계어가 없다.

MVC를 한다고 선배가 종이에 'controller > service > dao > xml'을 쓰며 값이 흘러가는 순서를 아무리 설명을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맨날 모른다만 외치는 날보던 멘토 선배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새벽 2시까지 날 붙잡아놓고 화이트보드에 손코딩을 해가면서 공부시켰다.

뭐 이제 쪼오끔 알 것 같다.

쪼오끔.


HTML, CSS, javascript, mySQL, java 등을 배우면서 개발 영역을 알아갔다.

하지만 개발에 흥미가 없었던 나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환경미화에 더 신경을 많이 썼고,

동아리 홍보에 필요한 파워포인트 제작, 포스터 제작을 더 재미있어했다. 


매일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궁리만 하고 있는데 문득 멘토 선배가 쓰는 기계식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10만원이 넘는다는 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다. 무슨 그런 키보드가 있냐고.

선배가 이런 거 있다며 검색해서 다양한 기계식 키보드를 보여준다.

그런데 순간 무지개색 기계식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예뻤지만 살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무슨 키보드에 돈을 그래 바르나 싶어서..

그런데 키보드를 사라는 계시인지, 얼마 후에 장학금을 여기 저기서 받게 되고 수중에 돈이 들어왔다.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에 들어왔으니 뭔가 기념이 될만한 물건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장학금 일부를 떼어서 무지개키보드를 사버렸다!

겁나 이쁘다.

타자치는 느낌도 좋고, 개발을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키캡을 뽑아서 정성스레 닦아가면서 썼다.



무지개색 기계식 키보드. 개발을 못해서 선배들에게 멍청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렇게 동아리에 적응할 무렵 남자친구와 서로 연락이 뜸해지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자연스럽게 헤어졌다지만 4년동안 옆에 있었던 남자친구가 없어지니 많이 힘들었다.

정말 몇주간 정신을 놓고 지냈다.

선배들이 힘내라며 마련한 몇 번의 술자리 갖게 되면서 술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술을 잘 몰랐는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둘셋 모이는 술자리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보다가

늦은 밤 술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니 술 자리가 좋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갔다.

그렇게 점점 술을 좋아하는 개발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크리티컬 매스


개발하기 싫다며 매일 한 숨으로 보낸지 6개월쯤 지났을까. 여름방학이 다가왔고 우리는 인턴으로 신문사 관련 '공모전 시스템'을 구축해야했다.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애착을 가지고 지원했던 공모전을 포기하고, 기획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다 보니 멤버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적은 인원으로 개발을 끝내야했다.

게시판 하나 제대로 짜본 적 없던 나도 개발을 해야만하는 상황이었다.


신문사에 갔더니 옥탑방 같은 곳을 보여주고 여기서 두달동안 프로그래밍을 해야한다고 했다.

모두가 너무 하기 싫어했지만 어차피 하기로 한 거 잘 해보자는 마음에 남은 선후배 4명이서 그 공간을 쓸고 닦고 필요없는 물건을 버리고 책상을 재배치했더니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탄생했다.

깔끔해진 사무실 안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건물의 제일 구석진 곳에서 하루종일 개발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동아리 사무실 다니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답답함이었다.

서로 일에 치이다보니 동아리 회장과 다툴 일도 많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고, 그러다 화해하고 밤늦게까지 프로그램 짜면서 방학이 끝날 날만 기다렸다.


일정 지연없이 개발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집중하였더니 평생 늘 것 같지 않던 코딩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옆에 있던 후배는 "언니 포텐터졌다"면서 놀랐다.

내게는 프로그래밍 할 머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문사 맨 위층에 있는 골방 사무실





수은불망은 제게 선물입니다

인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개강을 하니 동아리에 크게 메여있을 일이 없었다.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아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학원을 등록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스터디를 하다보니 하루종일 영어공부를 해야만했고, 동아리는 뒷전이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우연히 웹 퍼블리셔 언니를 알게 되었고 그 언니에게 웹디자인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점점 해야할 것이 많아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담당 교수님과 멘토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고, 동아리 회장 선배에게 개발 공부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웹디자인 길로 다시 걸어가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계획이 뚜렷했기에 서로의 앞 날을 기원하면서 나올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직업적 전문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지만 더 좋았던 건 사람을 얻은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선후배들과 가끔씩 연락을 하거나 만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코딩 공부를 한다며 동고동락했던 사이라서 유대감이 아주 끈끈하다.

한 번씩 동아리 모임에 참석해서 선후배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간 쌓았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서울에 취업을 해서 외로워하고 있을 때

선배들이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외로움도 달래주고 업계 동향이라던지 사회생활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면서 큰 위안을 줬었다.

일을 그만두고 이직을 못해서 허덕이고 있을 때도 선배의 도움으로 취업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취업도 할 수 있었다.

기수가 달라서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회식자리에서 안면 트게 된 과 동기와 연락을 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고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니 이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담당 교수님을 찾아뵐 때면 교수님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한테 뭐 줄 생각하지말고 그럴 여유있으면 후배들 빵 하나 더 사주라고..

참된 제자 사랑을 보여주시는 교수님.



-

동아리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아리 전체 회식이 있었다.

졸업한 선배들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회식이 끝나고 동아리 사무실에 다들 앉았는데 그 때 교수님이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내게 수은불망은 oo다.라고 한 명씩 대답해봐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굉장히 업된 상태에서 "수은불망은 제게 선물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동아리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선물이냐고 다들 웃고 넘겼는데, 정말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선물이지 않나싶다.

직업적 스킬도 배울 수 있어서 밥벌이에 큰 도움이 되고 있고, 무엇보다 정말 끈끈한 인맥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선후배들과 코딩 공부를 하고, 저녁에 함께 술 마시며 쌓였던 이야기를 하고, 겨우 생긴 꿀 같은 휴일에는 선후배들과 산이며 바다에 놀러가고, 일하다가 투닥거렸던 순간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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