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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9. 2023

메기를 상대한다고 메기가 될 수는 없잖아.




아침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말씀하신 금액 입금했는데 아직 처리가 안 돼서요."


"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런 젠장!'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올 뻔했다. 모니터에 찍혀 있는 입금 시간이 3분 전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3분 전에 입금하셨네요.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한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공연히 힘 빼기 싫어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예. 상황이 급하니까 빨리 처리해 줘요."

빌런은 끝까지 빌런 다운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순간 참았던 짜증이 화로 바뀌어 튀어올라 정수리를 때리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일어나 심호흡을 했다. 난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어차피 해줘야 할 업무일 뿐인데. 기대했던 상황과는 너무 다른 결과가 준 충격과 실망 탓이 분명했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이런 정도의 말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죄송합니다. 입금이 늦었네요. 방금 입금했으니 바쁘시겠지만 빠른 처리 부탁드립니다."

그가 이 정도로 말했다면  아마 나도 이 정도의 대답을 기분 좋게 했을 것이었다.

"아! 예. 바로 확인하고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처리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근 SNS나 언론을 통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차마 입에 올리기도 무서운 사건들이 거의  한주 단위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지하철과 길에서 만나는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느라 서로에게 미소를 건네기는커녕  적으로 간주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대낮에 상가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처참하게 죽고 지하철 역에서 묻지마 폭행 사건이 터져 많은 사람이 다쳐도 세상에는 여전히 선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그런 악한 일을 하는 이들은 연못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몇몇 메기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그 메기들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들이 같은 메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악마를 상대해야 한다고 반드시 같은 악마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컴컴한 터널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어둠을 향하는 대신 빛을 향해 걸어야 한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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